있는 자와 떠난 자

 

그래도 살려면 돌아와야 하지 않아요?”

어느 집사가 협회를 떠나간 사람들을 말하다가 이런 말을 했다.

그것이 그럴 것 같지만 안 그런 거야.”

……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첫 번째는 하나님이 돌아오기를 원치 아니하시는 것이지.”

……

 

하나님이 돌아오기를 원치 않았던 사람 가운데 에서와 같은 사람이 있다. 에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교회의 복음의 축복을 받기에는 믿음이 함량미달이라서 하나님이 버린 것이기도 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야곱과 같은 동일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동일한 지체로서 교회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롯은 의인이지만 그와 함께 사는 그의 처가 악처기 때문에 의인의 믿음을 다 지워버려서 소돔으로 들어가서 믿음이 소용이 없는 생활을 살았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교회생활을 아브라함과 다시는 함께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가 살던 소돔이 멸망한 것도 그리 큰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것도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돌아오지 못할 이유는 아니었다.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의인으로 살던 믿음을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그 믿음으로 사는 생활이 없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교회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돌라오멜 왕과 연합한 바벨론의 네 왕들이 쳐들어와서 소돔의 거민들을 사로잡고 물건을 다 약탈해 갔을 때에 아브라함이 다메섹 호바까지 좇아가서 그를 구출해 내었을 때에 상식적으로 롯이 아브라함의 품에 다시 안길 수 있었으리라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때에 그는 이미 믿음을 버리고 교회생활보다는 세상인 소돔사람들의 생활에 적응이 되어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브라함에게 또는 교회로 또는 믿음으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는 의인으로서 구원받는 믿음은 여전히 가지고 있으나 믿음으로 사는 생활하는 믿음은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생활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생활을 전혀 할 수 없다. 사는 믿음이 없으면 교회 안에서도 성도의 교제를 하지 못하고 교회 밖에서는 더더욱 성도와 교제하는 생활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도 그런 사람을 다시 교회 안으로 돌아오게 하실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혹 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일은 그들은 이 영원한 복음의 교제를 떠나서도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 살기 때문이요, 그들은 떠나기 전에도 육신으로 산 종교인들이요, 떠나서도 육신으로 사는 육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도 교회생활이 기업이 되는 교회중심의 생활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요, 들은 바 말씀이 믿음이 합한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도 세상을 버리지 못하고 텔레비전과 세상의 노래와 소돔사람들과 어울려서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데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은혜를 받은 교회, 사랑하는 교회를 떠나고 진리를 떠나고 때로는 협회를 떠나서도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별반 차이가 없이 잘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이 복음 안에 있을 때에도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살지 않았던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말씀을 듣고 울기도 하고 은혜를 받으면서 그것이 일시적인 충격은 되었어도 그것이 하나라도 생활이 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감동 사항으로 여김으로 감동만 받고 울고 돌아가서는 감동을 주셨던 그 말씀에 순종함이 없이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은혜를 받고도 돌아가서는 육신으로 산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복음의 진리를 참고 사항으로 여긴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말씀을 생활사항이나 순종 사항으로 여기지 않은 사람들이다.

진리로 사는 생활이 없으면 머리로는 모든 말씀을 섭렵하지만 생활과 인격 속에는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생활이 하나라도 없는 영지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머리로 목회하고 머리로 설교를 하고 머리로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영지주의자란 한마디로 머리로는 주님도 알고 성경도 알지만 인격으로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주님을 지식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과 함께 교통하고 생활하는 생활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도 알고 성경도 알고 주님도 알지만 주님은 그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일방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서나 협회에서 교만하여 못된 짓을 하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떠나가기도 한 사람들이 그들이 처한 교회에서 여기도 예수가 있고 여기도 복음이 있네”, “여기도 십자가가 있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복음을 지식으로만 받아 들이는 영지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복음은 말이 아니고 지식이 아니다. 복음은 생활이요, 인격이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5)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가 자기들에게나 또 자기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도 생활과 인격이 아니고 단지 말에 지나지 않고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리가 만무하다. 그와 같은 영지주의자들은 반드시 율법주의에 빠져서 육체의 행위를 중시하는 교회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결국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들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2-23)

 

주님 앞에 부인을 당한 그 사람들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지만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안다고 찾아와서 주여 주여라고 불렀으나 정작 주님은 그 사람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마도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잘 알았으나 주님을 알지 못했던 자들이 분명하다. 또 권능을 행하고 병도 고치고 길거리에서 주의 이름으로 가르친 자들도 주님이 알 수 없는 자들이 많겠다고 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을지는 몰라도 주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차라리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주님에게 돌아오는 은혜를 받을 수 있으나 그들은 자기들이 주님 안에 있다고 착각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떠나든 아니 떠나든 주님 안에 거하는 생활을 사는 것이며, 한 말씀 한 말씀 순종하여 사는 생활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떠나왔던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생활을 살아야 한다. 협회에는 나타나든 아니 나타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협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여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대로 살지 않고 행치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협회에 오랫동안 아니 보여도 주님하고 잘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어떤 사람이 오늘도 주안에 거하며 주와 동행하는 생활을 살고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서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면 그 이상 바랄 것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떠나 있어도 같은 믿음과 사랑으로 사는 형제자매의 생활을 사는 것이다.

주 안에 있으면 비록 떠나 살아도 동일한 믿음 안에 함께 있는 것이지만 아무리 날마다 보는 사람이라도 주밖에 있고 세상에서 살고 영이 아니라 육으로 살면 그 사람은 함께 있지만 실상은 떠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거룩하신 주와 거룩한 성도와 하나가 절대로 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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