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조심하세요

 

오래전에 서산에서 집회를 할 때 부흥회 인사차 다니러 온 어떤 목사님이 어떤 유명한 다른 목사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일을 본적이 있다. 그래서 , 이 목사님도 잘못되고 이 분이 자랑하는 그 목사도 잘못됐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그가 말하는 사실은 다 사람을 자랑하는 것이지 주님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라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의 종이라고 하면서도 그 주인을 자랑하지 않는 우를 범하면서도 자기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쩌다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누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목사는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그 사람은 요즈음 설교로 뜨는데 그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이는 선교로 어떤 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으로 또 어떤 이는 검소하고 무소유로 산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인기를 많이 얻고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주님을 따르기 위함이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유명한 사람들은 대중적인 사람들이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세상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며 당연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대중적인 인기를 경계하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6:26)

 

오히려 주님은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기 전에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6:21-23)

 

주님 때문에 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나 때문에 그리스도가 확대되어(Magnify Jesus Christ) 나타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그들은 주님의 제자인가 아니면 주님으로 인하여 이득을 보고 주님으로 인하여 주님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영광을 받는 자들인가?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부요한 자들이며 이 땅에서 위로를 이미 받은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6:24-25)

 

어리석은 사람들은 주님과 사람을 잘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으로 인하여 주님이 나타나고 영광을 받는 것과 주님으로 인하여 그 사람이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고 부를 누리는 것을 잘 분간하지 못한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주님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주심으로 죄인을 섬기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는데 주의 종이라고 자처하며 주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그 직분과 하는 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은 거꾸로 되어도 한참이나 거꾸로 된 것이며 그들은 주님의 제자가 아닐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8-10)

 

그리스도의 제자는 영광도 있고 욕됨도 같이 있는 것이다. 악한 이름으로 칭함을 받고 또 아름다운 이름으로도 칭함을 받는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유명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명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악하고 죄인들의 눈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가 있어서 욕을 먹는 사람들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20)

 

그런 사람들이 주님과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7:16-18)

 

사람이 영광을 받는 것은 그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주님이 영광을 받는 것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교훈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고 엄히 명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전 3:21-23)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자기들을 죽이기로 작정한자와 같이 미말에 두셨다고 말하면서 세계의 구경거리가 되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고전 4:8-13)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그들은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거기에 맞춰서 말과 행동과 일을 하는 것이다. 어느 미국의 목사가 말하기를 미국의 목사들은 일주일 내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인들을 만족시킬까를 생각한다라고 현실을 꼬집어 말한 적이 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의 외모를 자랑하기를 좋아 한다. 그래서 인기를 구가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이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것들 곧 외형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끌어 모은다. 대형교회를 하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일 것이다. 설교를 잘하고 말을 잘하여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전도를 하고 선교를 자랑하는 사람들도 대중적인 인기를 구하는 사람들이다. 또 그럴싸한 교육프로그램을 자랑하는 사람들도 인기가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의 안에서 내면세계에 권능으로 역사하여 사람을 고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가 증거되지 않고,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외모를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변화된 자기의 마음을 자랑할 것이 없고 외모만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고후 5:12)

 

은사를 행한다고 하면서 병으로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는다고 하면서 그것을 주님의 권능이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주님의 권능이 아니라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다. 주님은 오히려 표적을 구하는 자들을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시면서 선지자 요나의 표적인 성령을 받는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12:38-39)

 

주님이 나사렛에 가셨을 때에도 사람들이 기적을 보여 달라고 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원아 너를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증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의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4:23)

그러나 주님은 거기서 아무 권능도 행하실수 없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6:5-6)

 

믿지 않는 구경꾼들을 위해서 주님은 아무 표적도 행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은사를 행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대중의 인기를 구하기 위하여 거짓 표적을 행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것을 방송으로 선전하는 이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을 따르는 것은 그들이 육체를 자랑하는 자랑에 속아서 그들의 육체를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3:3)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은 육체로 봉사하는 일과 프로그램과 행위를 자랑한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을 높이고 사람을 칭찬하고 사람을 자랑한다. 그러나 성령으로 봉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것이다.

혹이 말하기를 그 사람들이 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의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목회는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목사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주님이 직접 일하시는 것이다. 전도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의 주체는 주님이시다. 전도를 사람이 하는 것처럼 사람의 열심과 사람의 행위가 드러나고 칭찬을 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가리우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이 가로채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사람에게 주신 적이 없다.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48:11)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 속에 그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 나타나셔야 한다. 사람이 드러나면 아니 되는 것이다. 찬양도 주일학교 교사도 교회 안의 모든 일의 결국은 전적으로 주님이 일하시는 것이며, 그 결과 주님만이 나타나시고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중국의 불타는 전도자 존성이 막 말씀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 어느 날 밤에 주님이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왜 내가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고 교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만을 말하느냐?”라는 책망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 기독교 학교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교사들에게 여러분들이 학생들에게 영적인 말씀을 주지 않으면서 영어 수학만 가르친다면 돼지들에게 쥐엄 열매만 주는 것이다라고 전했을 때에 어느 교사가 교장선생님에게 저가 학생들을 돼지 취급을 한다고 그만 강단에서 내려오게 하여야 한다고 건의를 했다. 교장선생님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여자 분이었는데 그와 같은 건의를 묵살하고 끝날 때 즈음해서 강단으로 쪽지를 올려 보냈다. 말씀이 다 끝난 후에 자기에게 시간을 좀 달라는 내용의 쪽지이었다. 말씀이 다 끝나고 교장선생님이 등단하여 회개하기 시작을 했다. “주님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연봉은 얼마를 받아야하며 집은 얼마만큼 큰집에서 살아야 하는가만을 생각했던 돼지 같은 사람입니다. 학생들이 돼지가 아니라 교장인 제가 돼지같이 쥐엄 열매를 즐기며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했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1981년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주님과 계산할 것이 없음을 깨닫고 매주일 전도를 하면서 소문을 들은 교회에서 나를 초청해서 전도 간증을 듣고자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어느 날 골방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너는 집사인데 목사라면 목사기 때문에 강단에 서지만 집사인 너는 내가 세우지 않으면 강단에 설수 없단다. 그런데 너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교인들에게 해야지 왜 교인들이 듣기 좋고 재미있는 전도 간증만을 하느냐?”

그다음 주일 저녁예배는 직장에서 나를 통해 예수를 믿어 거듭난 장로님의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기로 되어 있었다. 한 주간 동안 준비 기도를 단단히 하고 갔다. 그리고 간증을 하다가 회중에게 질문을 했다. “여러분들 중에 이 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은 사람 손을 들어 보시오했더니 한 삼십 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그 교회는 육백여 명의 교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강단 뒤에 앉아 있는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주님 앞에 가시면 혼나시겠습니다. 이렇게 교인들이 많은데 대부분이 다른데서 온 교인이라니요? 전도를 열심히 하지 않으시면 주님 앞에 가서 혼나십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다 은혜를 받았다. 목사님 방에 먼저 가서 앉아 있었는데 그 장로님과 담임목사님이 같이 방으로 들어왔다. 나를 아는 그 장로님이 민망해서인지 아니 이유빈 씨 그렇게 교인들 앞에서 목사님을 망신을 주면 어떻게 해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큰소리로 아니요 맞는 말인데요. 은혜받았습니다. 다음에도 자주 오셔야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로 연락받은 적이 없다. 아마도 꽤나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아마도 그 말을 듣고 책망을 받은 것이 교인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을 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라는 생각은 아니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 앞에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듣는 것이다.

인천의 어느 교회에서도 다 전도를 나가는데 담임목사님이 전도를 아니 나간 것을 책망하면서 주님도 하신 전도를 목사가 안한다면 주님보다 더 높으신 분이냐고 했더니, 그는 그 후로 나를 무척이나 미워하고 뒤에서 욕을 하고 다녔다. 그분들은 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살아 계신지 아니 계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냥 주님 앞에 갔다면 별 재미를 보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설교를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설교를 잘하지만 믿음도 인격도 형편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어느 장로님은 지금은 당신의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나간 목사님이 설교는 엄청나게 잘하는데 생활과 인격은 너무나도 형편이 없었다는 말을 하면서 아픔을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설교를 듣고 말씀을 듣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성경공부를 하고 무슨 훈련 무슨 훈련을 받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부산에 갔을 때 어떤 교인들이 자기들끼리 정죄하면서 저놈은 제자훈련을 받고 또 무슨 훈련도 받았는데 아직도 술, 담배를 못 끊고 있다고 하는가 하면 저놈은 아직도 계집질하고 있습니다라고 나에게 고자질을 하듯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의 담임목사는 제자훈련에 능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무슨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교회 일을 하는 것이 믿음인가? 교회에서 차량주차 안내를 하고 있는 어느 집사에게 이것 보시오. 주차봉 들고 차량 안내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에요. 그것은 안 믿는 사람도 할 수 있어요라고 했더니 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 사람이 육신으로 교회 안에서 돋보이려고 하는 교만은 언제 고칠는지는 막막해 보였다. 그는 전도를 하면서 전도를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하고 있는 자기를 높이는 사람들의 칭찬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선교한다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있어야 선교를 할 수 있다. 나는 한 삼십여 년 전에 인도의 어느 선교사가 보낸 선교편지를 본적이 있다. 그편지의 내용 속에 빈대가 많으니 빈대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말에 아연실색을 한 적이 있다. 인도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는 아니하고 빈대가 기도제목이 되는 선교사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 끔찍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즈음의 선교현실들을 보고 있으면 믿음이 없는 선교사는 선교를 가는데 돈이 없이는 선교를 못가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오래전에 전도훈련을 받고 있던 어느 아프리카선교사가 말씀을 듣고는 나는 선교사가 아닙니다. 나는 영혼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선교복덕방 노릇을 하면서 본국에서 선교비로 받은 돈으로 현지인들 위에 군림하고 왕노릇을 했습니다라고 울부짖으며 회개하는 것을 본적도 있다.

무슨 단기선교라고 가는 것이 믿음인가? 그것도 믿음이 아니다. 단기선교 가서 전도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어떤 이들은 복음도 없이 봉사하고 집 짓고 머리를 깎아 주는 것도 단기선교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옛 사도들이 알면 경을 칠일일 것이다. 태국에 갔을 때에 어떤 한국의 장로교회에서 교인들이 와서 산지족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갔다는 말도 들었는데 사람들은 그것도 해외선교라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 주거나 나라에서 주거의 혜택을 주는 일도 있는데 그것도 선교라고 할 수 있는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어느 교회목사가 중고등부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에 단기선교를 갔다 왔다고 하기에 아니 여기서도 전도를 안 하는 아이들에게 선교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교만한 마음을 심어주려고 거기 갔습니까?”라고 책망한 적이 있다. 그들이 선교라고 해도 전도지 한 장을 주어도 그것은 부자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자기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그 열등감 때문에 마지못해서 그것을 받았다면 그것은 영혼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남아 단기선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우리나라가 그들보다 더 잘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가르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어떤 초등학교 아이가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비평한 글을 읽고 나는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 그들은 그 어린아이만도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가하면 어떤 목사는 선교지에 가서 복음은 아니 전하고 한국이 기독교를 받아 들여서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고 자랑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전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반역이며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는다면 우리나라 재벌들이 기독교인이라서 다 부자가 되었다는 말인가? 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의 말이다.

로스엔젤레스에 오래전에 훈련을 받은 마취과 의사 장로님이 있었다. 그는 오래전에 은혜를 받고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잠시 살았었는데 어떤 선교단체에서 그에게 접근을 해서 그들을 따라다니며 아프가니스탄이나 여기저기 선교지를 따라 다니다가 영적으로 다 고갈되어 거반 다 죽은 모습이 되어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동행을 했던 장로들이 다 부자들인데 설교를 하라면 손사래를 치고 못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들은 있는 돈으로 선교여행을 다님으로 자기 만족을 삼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한 사람들인 듯싶다. 그들은 선교를 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선교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 때 전도도 자랑꺼리가 된 적도 있었다. 예수전도협회에 와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했던 것은 전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줄로 착각을 한 것이다. 전도를 한다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그의 기뻐하시는 자를 도구로 쓰심으로 그 분의 일인 전도를 그분이 하시는 것이다. 그동안 전도를 앞세우고 그것을 자랑하다가 전도하는 사람을 주님보다 앞세우는 경우가 허다히 많이 있었다.

말을 잘하는 것도 믿음이 아니다. 바울은 그 당시에도 사람들이 천박하여서 말을 잘하는 사람을 쫓아가는 것을 보고 책망했다. 그런 사람들을 바울은 교만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말을 잘하지만 내주하시는 성령의 권능을 체험하지는 못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바울이 말하는 말을 잘하는 자들이란 설교를 잘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고전 4:18-19)

 

하나님의 나라는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의 권능으로 다스림을 잘 받아 변화된 생활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종말을 주의 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13:7)

 

오래전이지만 아주 유명한 목사님과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때에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네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야.”

주님, 이 사람은 큰 교회 목사이고 유명한 사람이고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돈도 많을 거예요.”

그런데 내가 이 사람이 불쌍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는 인격보다도 말을 더 잘하기 때문이야.”

 

그 분 말고도 또 다른 분과 식사를 할 때에도 주님은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것이 바울이 말한 말은 잘하나 자기의 인격을 다스리는 능력이 없는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 속에 역사하는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이나 사람의 헛된 영광을 구하는 어리석은 자리에 들어가서는 아니 된다.

 

요즘에는 이런 노래가 자꾸만 떠오른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사람 조심하세요 우물쭈물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저기 가는 저 목사도 조심해야 하고 저기 가는 저 장로도 조심해야 하고 저 집사도 조심해야할 것이다. 자전거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것들과 헛된 육체의 공력을 불태우는 주님의 진노의 심판이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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