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다 책임을 지셨어요

 

오래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에 권사님 한분이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이며 그의 남편은 초등학교 교감인가 교장인가였다. 1970년대 말이니 둘이 벌어서 생활에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며, 세상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그 가치를 존중하던 목사님으로서는 그 권사님을 강단에서 한참 띄움으로 상대적으로 장로들을 견제하고 때로는 장로들의 심사를 비참하게 만들기까지도 하였다. 그러니 그 권사님으로서는 교회에서 한없이 교만한 사람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담임목사를 위한다하며 자기일이 아닌 남의 일에도 간섭을 하여 교회의 화목을 깨뜨리고 담임목사의 칭찬을 받는 다는 사실로 특권의식을 가지고 많은 교인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는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나는 그 때에 고등부 교사를 하면서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설교를 내가 처음으로 했을 때 교사들이 은혜를 받아서 즉시 나에게 와서 자기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일이 있었다. 그 후에는 청년부 리더들에게 성경공부를 가르치게 되었고 담임목사님은 부목사도 아닌 나에게 청년부 전체를 맡기는 일이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청년부를 맡아서 1부는 예배 2부는 성경공부를 하고 3부 오락시간은 가만히 관찰해 보니 예배 때와 성경공부시간에 받은 은혜를 다 쏟아버리기 때문에 폐지하기로 청년들과 합의를 했다.

그 때에 나는 청년들에게 주님이 제자들과 오락을 하신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을 했으며, 나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주님이 하신 것도 다 못하는 것이 인생인데 주님이 아니 하신 것까지 하면서 어떻게 주님을 따라가겠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그들은 즉시 오락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후로 청년부 안에서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힘을 얻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웃격인 청년들보다 나이가 많은 청장년회 회장이 그들 모임에서도 불쑥 오락을 없앴다가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나를 불러서 청장년 회원들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그 교회는 감리교회이지만 내가 혼자서 순복음 감리교회라고 말을 할 정도로 은사주의에 치중을 했던 교회이었고 말씀은 전혀 없는 교회이었다. 한번은 내가 가까이 지내던 어느 목사님을 강사로 소개를 해서 교회에서 특별 사경회를 하였는데 교인들이 난리가 났다.

 

우리도 이제는 말씀을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은사 집회 말고 말씀 사경회를 해야 합니다.”

 

장로들부터 들고 일어나서 그런 말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교회에서는 말씀 사경회는 전무하였고 그 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마도 목사님은 은사 집회 일변도로 교회를 끌고 가다가 교인들에게 말씀도 필요하다는 현실 앞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고민에 빠졌을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러자 어느 날 교회사무실에서 예의 그 권사가 나에게 아주 기분 나쁘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 때까지는 일면식도 없었고 단 한마디의 대화도 없었던 터라 나는 상당히 당황을 했다. 이마도 그로서는 담임목사를 위한 충정에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을 하고 무모한 일을 했을 것이다. 그가 나에게 입을 열었다.

 

교회는 말씀 중심도 좋지만 주님 중심이어야지요.”

 

그 권사의 말은 나에게 어이없이 받아들여졌다. 이 사람이 무슨 정신으로 이런 말을 하는가 싶어서 적이 당황하기도 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을 해 주었다.

 

그럼요. 그래야지요. 주님이 곧 말씀이시니까요.”

 

그러자 곧 그의 말문이 닫히고 더 이상의 대화도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이 여자분이 대단히 시건방지고 교만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은 사람이었고 사회적으로도 자리를 잡은 사람이고, 나는 그때에 사회초년병과 다를 바가 없었고 가정도 신혼이었지만 그가 그런 식으로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때 상당히 언짢아서 기분이 상하여 며칠을 보낸 것 밖에는 더 이상 기억이 없다.

그리고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서 그의 교만이 교회 안에서 사건으로 터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는 교회 안에 교인들 가운데 조성된 자기를 향한 담임목사의 신임을 등에 업고 불의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것은 담임목사님도 모르게 교인들에게 사채를 얻어서 쓴 일이 발단된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나 그의 남편이나 교회에서조차도 접촉이 없어서 그들의 사생활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채를 얻어 비싼 이자를 지불하면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었나 보다. 그러다가 이자를 돌려막기를 하다가 한계에 도달하자 자기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에게 크게 다가온 것은 돈의 문제보다도 담임목사로 말미암아 자존감이 한없이 높아지고 교회 안에서 교만이 하늘을 찌르도록 높아졌기 때문에 자신이 당할 수치와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 없었다고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는 아무도 없을 때에 집에서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다가 때 마침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발각되어 실패를 하고 목숨을 가까스로 건지게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소문은 순식간에 온 교회에 퍼져 나갔다. 담임목사님이 하도 그를 강단에서 높여 놨기 때문에 상대적인 상실감에 아파하던 교인들은 각자의 스트레스를 풀 듯이 그의 말을 빠르게 전파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난 다음 날인가 나는 교회 사무실에서 토요일 청년부 예배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었다. 그때 어느 진실한 장로님이 교회 사무실에 들어와서 내가 앉아 있는 소파에 같이 앉게 되었다. 그분은 한국전쟁 때에 그의 형과 함께 이북에서 인민군으로 징집이 되어 내려왔다가 포로로 잡혀 거제도 수용소에서 석방된 분이었는데 그 두 형제는 교회 안에서 남다르게 믿음이 좋은 진실한 분들이었다. 그의 형은 직업이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는 대기업에 속한 인천의 큰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하는 분이었다. 교회 안에서는 장로이지만 사회적으로 비교적 낮은 신분 때문에 목사님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예의 그 권사로 인하여 오랫동안 상처를 많이 받았던 분이었다. 그는 나에게 자기의 말이 통할 것 같다고 생각을 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숨도 돌이지 않고 나를 아주 잘 만났다는 기세로 이렇게 말을 꺼냈다.

 

집사님 이일은요 담임목사님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습니까?”

……

담임목사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어요.”

……

 

그렇게 그동안 당한 모멸감으로 분하여함으로 흥분한 그 장로님을 나는 그냥 잔잔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집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이일이 일어난 것은 전적으로 담임목사 책임입니다.”

 

나는 비로소 침묵을 깨고 그에게 입을 열었다.

 

장로님,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책임을 지셨는데 누가 책임을 질 일이 남아 있나요?”

 

그것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었다. 내안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말이었다. 그는 나의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 순간 그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 채 그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의 줄기가 흘러 내렸다.

 

집사님 잘못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우리 둘은 그렇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 때문에 목 놓아 울다가 헤어졌다. 지금도 가끔 그분의 믿음이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은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기가 너무나 힘든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까? 그분은 연세가 많으셔서 아마도 지금쯤은 주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실 것 같다. 나는 이제라도 서둘러 가서 그분을 만나고 한 치의 다름도 없이 똑같은 믿음과 사랑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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