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행사를 하지 맙시다!


우리는 오늘날 진리에 있어서 잘못된 이단들이 크리스마스를 불신하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일리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잘못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말이나 이론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그들이 하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말만을 잘하는 잘못된 사람들을 책망했다.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19-20)


왜냐하면 말은 믿음이 아니고 지식 또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귀도 성경을 인용할만한 지식이 있는 자이지만 그것으로 거짓말을 지어내기 때문에 그가 악한 자인 것이다. 신학교 교수들까지도 잘못되어 다신론에 빠지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들은 사실 귀신만도 못한 자들인 것은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인 줄을 알고 믿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 2:19)


그러므로 바울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고 권면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은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며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이 고름 투성이의 더러움으로 교회를 더럽히는 자들이라고 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딤후 2:15-18)


이렇게 우리는 진리에 그릇된 자들과 그들의 그럴싸한 화려한 말들, 경건을 부인하는 말들을 잘 분별하여 진리를 옳게 분변하는 성도가 되고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이번에는 순수한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크리스마스를 지키고 그 행사를 해서는 안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주님은 다른 것들을 기념하지 말 것을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말씀에서 당신의 뜻을 분명히 하셨다. 교회는 주님과 그의 죽으심의 사랑만을 기념하는 것이다. 모든 절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끝이 났다. 유월절을 지키고 초막절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킨고로 크리스마스도 지켜야 한다고 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를 잃어버린 것들이기에 악한 것이다.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라는 명령을 받았다. 모이기를 힘써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인격들이 한마음으로 주님을 섬겨 예배하고 기도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무리들을 땅끝까지 모으는 것이 교회의 본분이요, 사명이다. 우리는 주님이 빠진 크리스마스 행사가 교회 안에서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예수 없는 부활절이라든가 예수 없는 감사절, 예수 없는 여러 가지 성회들이 주님이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이 깊이 체험되고 간직되는 교회가 되지 못한 것은 주님을 기념하기보다는 행사에 치우치는 크리스마스와 여러 가지 절기들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행사를 해서는 안되는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주님이 나신 날이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주님이 나신 날짜보다는 그 아들을 보내신 사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 날과 달과 절기를 지켰으나 인간을 위한 것들이 되었던 것이 하나님에게는 오랫동안 많은 아픔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다못해 바벨론의 칠십 년의 유배생활 동안에도 그들이 금식을 자기를 위해서 한 것임을 하나님은 책망하시고 계신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슥 7:5-6)


이 말씀은 평상시에 자기를 위해서 먹고 마시는 자는 금식도 자기를 위해서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와 같이 인간 중심의 금식이라면 다른 절기를 지키는 것들은 더하면 더했지 그보다 못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것은 악한 초등 학문인 율법주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십자가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교회를 위해서 수고한 것 곧 그리스도의 은혜를 끼친 것이 헛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 4:9-11)


주님은 살아 계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인 생일을 알려 주지도 않았고 생일을 기념하고 지킨 적도 없었음을 우리는 사복음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가 중요했지 그의 생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이기를 힘쓰고 날마다 모여서 떡을 떼며 말씀을 전하는 것과 기도하기에 전혀 힘쓰는 교회였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6-47)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 5:42)


20세기초의 영국의 저명한 학자인 알렉산더 히슬럽은 1916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The two Babylon"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그 후로도 3세기까지는 교회 안에 크리스마스의 축제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4세기까지도 최근까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그와 같은 것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로마교회(Romish church)가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 날(Christmas-day)로 정했을까? 이는 4세기 훨씬 전에, 기독교가 시작되기 오래전에 이방 나라 가운데서 지켜지던 바벨론의 하늘 황후의 아들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The two Babylon. 1916. Alexander Hislop. P.93)


크리스마스는 본래 이방인의 축제일이었다. 이것은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연말의 그와 같은 축제는 이방 종교에서 지금도 행하여 지고 있는 것이 그 근원이 이방 종교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하늘 황후의 이집트 이름인 아이시스(Isis)의 아들이 이때인 동지 즈음에 태어났다. 크리스마스는 19세기 이전에는 로마캐토릭에서 '율데이(Yule-day)'로도 불렸는데 이는 이방 나라와 바벨론으로부터 온 것이다. '율'은 갈대아에서 '갓난 아이' 또는 '작은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복음이 들어오기 전인 아주 오래전부터 이 날을 '율데이(Yule day)' 또는 '어린아이의 날(Child's day)'이라고 했고 이전날은 '어머니의 날(Mother-night)'로 명명했다. 아라비아에서는 그들의 주라 칭하는 '달의 신(The Lord Moon)'이 탄생한 날이라고 12월 24일에 축제를 하고 있다. 색슨족은 12월 25일을 하늘의 주재가 탄신한 날이다 하여 축제로 보낸다. 동방에서는 달의 신을 비슷한 발음의 “므니(Meni)”라고 하는데 이 므니는 이사야서에 등장을 한다.


"오직 나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사 65:11)


여기서 '갓'은 '태양신'이고 '므니'는 '달의 신'이다. 제롬이 그의 시대인 4세기경에 그가 보았던 것은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이집트 전역에서 갓을 위하여 상을 차리고 므니에게 잔을 따르는 풍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해의 마지막 달의 하순에 고급스러운 호사스러운 음식들과 섞은 새 포도주를 따른 화려한 잔에 따라 바치고 한 해의 풍성함에 감사하고 징조를 보고 점을 치는 것을 보았다.(Hieronym, vol. 2. p.217)


바벨론은 바알이 오직 하나인 유일신이었다. '담무즈'는 '신의 화신'일 뿐만 아니라 또한 '태양의 화신으'로 숭배되었다. 인도에서는 '수리야(Surya)'라는 태양신의 축제로서 이날들이 지켜졌으며 로마에서는 '농경의 신에 축제'이라고 이날을 지켰으며 칼리굴라 황제가 닷새 동안 이 절기를 지키면서 바벨론의 '술 취하는 축제(Drunken Festival)'를 본따서 행사를 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축제는 이로부터 기인된 것으로 보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촛불을 켜는 것도 바벨론의 우상을 섬기는 풍습으로부터 온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로마와 이집트의 이방 종교로부터 온 것이다. 그것은 이집트는 종려나무로 로마에서는 무화과로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불의 신을 섬기는 조로아스터 교와도 연관이 있는데 화로에 나무를 태우는 것은 '아기 장작(Yul-Log)'인데 그  다음 날이 25일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다시 태어나 환생한다는 미신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는 것과 같이 크리스마스 트리는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믿는 이방의 종교신앙이다. 바알브릿의 사상이 그것이다. 바알브릿은 '다시 태어난 바알 하나님(the new-born God as Baal-berith)'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12월 25일을 승리의 신이 다시 땅에 나타난 날로 축제일로 지켜졌으며 그날을 일컬어 “Natalis invicti solis"(The birth of the unconquered Sun-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이라 불렀다. 그러므로 '아기 장작(Yul Log)'은 태양신으로 모시던 '님로드(Nimrod)'이지만 그의 원수에 의해 쪼개져 불에 들어가는 것이고 크리스마스 트리는 환생한 님로드가 되어 죽임을 당한 신이 다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The two Babylon. 1916.  Alexander Hislop. P.96-98 요약)


여기서 우리는 왜 기드온이 죽고 이스라엘이 일제히 바알브릿을 섬겼는지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얻을수 있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비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하였더라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사면 모든 대적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하며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의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서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삿 8:32-35)


바알 숭배자들은 바알을 쪼갠 기드온을 바알의 원수로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쪼개어진 바알이 불태워진 후에 다시 바알브릿으로 태어났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바알브릿(다시 태어난 바알 하나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섬기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베푸신 은혜와 그의 종인 기드온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 바알브릿이 다시 환생했다고 저들이 믿는 날이 12월 25일인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스마스 트리는 그의 상징이며 승리의 표인 것이다. 그것은 기드온의 원수요, 여호와 하나님의 원수인 것이다.


당신도 무지한 가운데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기드온의 원수들과 동류가 되는 이 자리에 들어가고자 하는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


그 외에도 놀랍게도 로마 캐토릭은 3월 25일은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고하였다는 '성모 영보 대축일(The Lady Day)'을 지낸다. 그러나 성경은 그때가 언제인지를 때를 말한 적이 없다. 3월 25일은 그들이 마음대로 갖다 붙여 댄 것이다. 그리고 3월  25일과 12월 25일사이의 아홉 달의 임신 기간을 짜 맞춘 것이다. 이는 참으로 악한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이방 종교의 로마에게는 바벨론 메시야의 어머니인 땅의 여신 '키벨레(Cybele)'의 축제일인데 그것을 가져다 쓴 것이다.


그러므로 자세히 보면 크리스마스는 아주 순전한 바벨론의 축제요, 이방신의 축제일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탄생한 때에 관하여서도 아이작 뉴턴은 예수님이 태어난 때를 여름인 하지 부근의 어느 날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뉴턴만이 아니라 많은 주석가들이 일치를 보고 있는 이론이다. 반즈(Barmes), 도드릿지(Doddridge), 라이트풋(Lightfoot), 조셉 스칼리거(Joseph Scaliger) 외에도 제닝스(Jennings)는 그의 책인 '유대인의 고전(Jewish Antiquities)'에서 12월 25일은 우리 주님이 나신 날로서 맞지 않는다는 데에 이들 모두가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특히 죠셉 메데(Joseph Mede)는 12월이 한겨울로서 호적을 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없는 추운 겨울이라는 점을 들어 그때가 될 수 없음을 오랜 관찰과 다른 사람들과의 변론을 통해 결론을 짓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겨울인 그때가 목자들이 양과 함께 들에서 지내기에는 너무나 춥기 때문에 그것도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Mede's Works, 1672. Discourse ?ⅷ)


크리소스툼은 안디옥에서 AD380년경에 글을 쓰면서 크리스마스를 가리켜 이날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Gieseler, vol. ⅱ. p. 352)


그러므로 3세기까지 그리고 4세기 전반 이전까지는 교회 안에서 크리스마스와 같은 축제를 지킨 적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로마교회(Romish church)가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로 정했는가?


히슬럽은 그의 저서, '두 바벨론(The Two Babylon)'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늘 황후의 아들의 탄생일이라고 하는 그날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그때를 로마교회가 그것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여하여 크리스마스로 지키는 것은 이름만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짜 교인들의 수를 늘리기 위하여 이방을 회유하려는 방법으로 이용한 것으로 단정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The two Babylon, Alexander Hislop. P.93)


그러면서 그는 여기에 덧붙여서 이와 같은 기독교의 이교도화는 훨씬 이전부터 진척이 되고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


사실 내가 연구한 바로는 서로마를 장악하고 있던 교황청은 동로마가 우상에 같이 빠지기 전에는 자기들이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있었던 동로마의 주교로부터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견책을 받으면서 그들끼리는 “이것처럼 이교도들을 교인 만들기 쉬운 방법이 없는데 왜 저들이 반대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불평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가짜 교인들을 양산하기 위해서 이교도의 문화를 교회 안에 들여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타락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순진하게 주님이 태어나지도 않은 그날을 크리스마스라 하여 지키고 있는 것이다.


복음을 위한 것이 아닌 교회를 하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일을 만들어야 하고, 건축이나 교회일등으로 일이 많아지니 돈이 들게 되고 돈을 충당하기 위해서 교인 수를 늘려야 하는 이유로 세속을 교회 안으로 들여놓기에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물질주의에 빠져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바알 신앙으로 젖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교회 성장 주의는 이렇게 악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전도 방법을 구하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악한 것이다. 오랫동안 그와 같은 교회에 세상과의 타협이 오늘날의 교회도 로만캐토릭과 같은 이교도의 길, 곧 세속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이다. 전도는 성령의 권능으로 죄인들을 자기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 앞에 굴복시키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하심을 구하며 회개하게 하는 것이 복음이다. 바리세인들과 같이 교인 하나 만들기 위하여 바다로 육지로 다니다가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전도는 악한 것임을 주님은 미리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15)


그러면 오늘날은 교회가 왜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지키고 있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인가? 아니다. 사람들이 즐겁기 위해서이다. 본래 축제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페스티벌이란 단어는 하나님이 없는 이방 종교에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죄를 아파함으로 속죄하기 위해서 드리는 피의 제사와 예배가 있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주님이 태어나셨는가? 그것도 아니다. 크리스마스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 주님의 뜻인가? 그것 또한 아니다. 주님은 절기를 기념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그것으로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환심을 살 수 있다고 보는가? 그것도 이미 물 건너 간 현실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가짜들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행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교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 그와 같은 행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와 같은 것을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자기들이 이 땅에 오신 주님에게 “무엇?”을 했다고 거짓된 판단을 하여 스스로 교만해진다. 자기들이 교회의 정예 멤버인 줄로 착각을 하게 만드는 행사들이다. 이와 같은 것들을 하나님은 하나라도 받을 수 없는 것들이며 하나님께 악한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교회보다도 백화점이나 상점 죄를 짓는 술집이나 나이트클럽 그리고 모텔들에 오히려 더 매력 있는 시즌이 되고 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다. 아주 오래전부터 크리스마스는 사회 전반에 방종을 가져다주고 그날은 온 세상이 죄를 짓는 날로 여겨지던 때가 오래전부터 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크리스마스는 교회 안에서 폐지되어야 한다.

교회도 아닌 이교도화된 로만 캐토릭이 악함으로 들여온 이교도의 문화에 속한 이 절기와 축제를 교회에서 몰아내야 한다.

크리스마스 장식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므로 설치하지 말아야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고대 바벨론의 바알 신의 환생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교회에서 반드시 버려져야 할 것이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모든 프로그램이나 칸타타 같은 음악발표회를 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감동을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신앙과는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사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라나다시피 하였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가짜이었던 나에게는 크리스마스라는 것이 육신적인 즐거움 이상의 아무것도 주지 못하였다. 그리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어렸을 때에 연극을 준비하며 매일 교회에서 살다시피 할 때에 어느 장로님이 오징어를 한 축 사다 주어서 그것을 난로에 맛있게 구워 먹은 것, 그거 이상의 기억이 없다. 중학교를 지나서는 해마다 칸타타도 했지만, 그것이 나에게 주님을 만나게 하지도 못하였으며 오히려 나를 교회 안의 가짜로 지내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더욱더 교만해지는 데에만 일조를 했다고 생각을 한다.


그 후로 인생의 비참함 가운데서 하나님이 없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을 읽다가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입어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고 곧장 만났던 미국 선교사님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의 집에서 해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멋있게 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같은 것을 집에다가 하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이삼 년이 지나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너무나도 실감이 나는 나에게 주님은 그것이 주님과 나 사이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장식으로 쓰고 보관하던 것을 다 가져다가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그 후부터 나에게 일어난 현상은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주님이 이 땅에 강림하심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그 사랑을 찬송하고 살았다. 언젠가는 6월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을 집에서 큰 소리로 부르자 아내가 “아니 지금이 어느 땐데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는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이렇게 찬송을 부른다고 대답을 하면서 그 사랑에 감격을 해서 울면서 대답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 교회는 그리고 성도는 날마다 매일매일이 성탄절인 믿음, 그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하심이 번져 감으로 바벨론의 성탄절이 교회 안에 사라지고, 말세에 교회가 음녀 바벨론이 되어 심판의 대상이 되는 데에서 빨리 빠져 나와서 곧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서 주님이 반겨 맞을 수 있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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