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을 만드는 사람들

 

추석사경회 때에 오신 어느 장로님과 잠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 오랜만에 오셔서 나는 20년만 인줄 알고 착각을 했었는데, 7년 정도 전에도 사경회 때에 한번 오셨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쨌든 그 때는 대화를 할 시간도 없었으나 이번에는 사무실에서 몇 번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가정에 있었던 일들과 자녀들 이야기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모든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 주님이 지켜 주신 일들을 들으면서 나는 크게 은혜를 받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중에 그 장로님은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해외선교를 하는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을 했다.

내용인 즉은 교회적으로 인도네시아에 가서 선교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모슬렘 지역에 가서 선고를 하는데 여러 가지 물품과 선교비를 가지고 가서 사역을 하는 말을 하면서 거기 있는 선교사이야기를 했다.

그 분은 한국에서 파송된 현지 신학교 이사장인데요. 현지인들이 커피농장을 하고 있어서 그들이 커피를 출하할 때에 출하가를 높여주는 일을 해서 현지인들에게 큰 환심을 사신 분입니다. 그래서 농장주들이 다 모슬렘인데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자녀들은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해서 자녀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지요. 모슬렘 사람들의 자녀들이 교회를 다닌 것은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아쉬워서 이제나 저제나 그 이야기는 왜 안 나오나, 조금 있으면 나올까하면서 마음을 졸이면서 장로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끝내 어느 누가 선교지에서 거듭나서 회심하여 주님께 헌신한 영혼에 관한 말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그 장로님이나 또 동행한 선교팀이나 현지 선교사들에게는 지극히 놀라운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찜찜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고, 나는 점차 그들이 그렇게 흥분하는 것이 타당한 일들에 전혀 수긍을 할 수 없는 마음이 내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장로님의 말씀이 다 끝난 다음에 내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렸다.

 

장로님 그것은 종교 대 종교로는 놀라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모슬렘의 자녀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며 주님도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 장로님은 영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내말에 경청했다.

그것은 주님이 싫어하신다고 이미 말씀하셨던 종교인을 만드는 일에 불과한 일입니다.”

……

주님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23:15)

 

모슬렘의 자녀들인 그 아이들이 교회를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서 주님께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열매를 맺는 주님 안에 거하는 주의 제자가 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교인을 만드는 프로쎄스를 중시하고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 교회에 속한자,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가 아니라 교회 일에 열심하는 자를 만들어 내는 일에만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내가 하는 말에 대하여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고 잠자코 듣고만 계셨다. 내가 말씀을 전하면서 나 자신이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종교인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서 잘 훈련된 종교인이 되었지만,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고생하고 저주가운데서 살았던 간증을 여러 번 되풀이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충분히 알고 계셔서 그랬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교회와 교회의 일군들이 한 영혼을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기 보다는 교인 만드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세우는 일이 아니라 교회의 규격에 맞는 사람을 세우기에 힘을 쏟고 있다. 교회는 주님과 꼭 맞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에 맞는 사람, 주님의 일군이 아니라 교회의 일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고 있다.

비단 그 선교사만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들이 한 영혼이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 전혀 관심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내 교인을 만드는가에 혈안이 되어 있다시피 한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누가 기독교인이고 누가 교회를 다니느냐 이상의 관심은 필요가 없어진지가 오래 되었다.

 

1990년에 1차 목회자 훈련을 마치고 거기에 참석했던 통합측 장로교회 목사님이 지리산에 있는 그분의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다. 어느 날 낮집회를 마치고 지리산 중턱에서 송어회를 점심으로 먹고 내려오려고 차를 타려고 하니까 담임목사님과 여러 목사님들이 잠깐만 산 정상쪽으로 걸어 올라갔다가 돌아가자고 간청을 했다. 얼마를 올라갔는데 등산복차림의 아가씨들이 서너 명이 내려왔다. 다 훈련을 받은 목사님들이니까 전도를 해야 한다는 환경과 눈치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일행 중에 어느 분이 그 아가씨들에게 질문했다.

 

교회 다니세요?”

, 성당 다녀요.”

, 그러세요. 잘다니세요.”

 

그리고 그 아가씨들이 내 앞으로 내려 왔다.

내가 그들에게 질문을 했다.

 

예수 믿어요?”

.”

오늘 죽으면 천당갈 수 있어요?”

아니요.”

 

그리고 서울에서 단체관광을 온 그 아가씨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등산은 왜 오지요?”

……

회색 콘크리트 속에서 답답함으로 살다가 스트레스 해소하기 위해서 오지요?”

.”

그런데 오늘 밤이면 다시 그 콘크리트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하지요?”

.”

예수를 믿으면 내 속에서 생수가 넘치기 때문에 산으로 와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설명하면서 그들이 각기 두 손을 모으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했다.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그들은 환한 얼굴로 산을 내려갔는데 정작 전도훈련을 받은 목사님들은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렇게 엄한 훈련을 받고도 회개하고 각성을 하고도 정작 사람을 만나면 교회 다녀요?”라는 입술에 깊이 배어 있는 질문이 나오는 자기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내 앞에서도 순간 그렇게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면 항상 함께 계시는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워해야만 할 것인가?

국내에서나 국외에서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복음이 없는 목회와 선교를 하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간접선교라는 말로 본질을 피해가고자 한다. 그러나 복음을 간접으로 전하기에는 영혼의 일이 너무나 중하고 때가 급한 것이다.

응급실에 들어온 촌각을 다투는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게 식이요법이나 가르치고 심리요법이나 가르치고 약물치료만을 한다면 즉 간접치료만을 한다면 그것은 미친 짓일 것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신속히들 가고 있다.

 

아침에 등산을 하면서 앞서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어느 자기들의 친구가 사업을 하는데 수금이 잘 안되어서 직원들 급여도 지급하지 못하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인천대교를 운전해서 가다가 순간적인 충동에 차를 세우고 대교에서 뛰어 내려 숨을 거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도 영혼들은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듯이 지옥불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종교적인 욕구만 채우고 종교인들을 만드는 일에 스스로 자족해 하고 간접선교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자화자찬하며 큰교회 목회를 하고 큰교회를 다닌다고 사람끼리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면 도대체 주님이 달란트 받은 종들에게 맡기신 일을 회계하자고 하실 때에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런단 말인가?

 

모슬렘의 자녀들이 교회를 다니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의 적나라한 현실이야말로 주님 앞에서 놀랄만한 무서운 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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