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제를 상담하다 보면 특별히 교회안에서 두가지 마귀의 역사를 감지할수 있다.

하나는 '섭섭마귀'요 또 다른 하나는 '괘씸마귀'다

오래전에 서울의 제자훈련을 한다는 어느 큰교회의 장로님이 전도훈련을 받고 큰은혜를 받았다. 그의 부친은 순교자이셨는데 교회의 타락상을 보고 마음아파하면서 기도하고 전도와 선교에 힘을 쓰는 분이었다. 훈련을 받고 돌아가서 그즈음에 그큰 교회를 헐고 더큰 교회를 짓겠다고 담임목사님의 '장로들은 공중기도할 때마다 건축을 위한 기도를 빼놓지 말라'라는 명(?)이 떨어졌고 그장로님은 영적인 눈이 떠진 상태에서 서울의 몇몇교회목사들이 예배당을 크게 짓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이 분명하기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권사님 너무나 괴로워서 못살겠습니다. 공중기도에서 예배당건축을 위한 기도가 안나오는데 안하면 괘씸죄에 걸려서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통곡을 한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목사님은 '늙으니까 할수 있는것보다는 못하는 것이 더 많아서'라는 변을 내놓고는 조기은퇴를 하였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런가 하면 어느 장로님은 담임목사님으로부터의 사랑과 관심이 멀어지고 일관성을 상실한 목회에 분한 마음이 들어 흥분을 하면서 '내가 장로 그만두는 날이 목사도 그만두는 날입니다.'라고 아픈 마음을 쏟아 놓기에 그사정을 들어 보았더니 그는 목사님이 이전과 같이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고 대하는 것이 전과 같지 않음에 소위 '섭섭마귀'에 넘어간 것이었다. 그분의 목사님을 만나보니 그목사님은 그장로를 괘씸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헌금과 봉사, 새벽기도참석등을 등한히 하고 이전과같지 않은 나태한 영적생활과 아울러 그정도 위치면 담임목사를 도와서 알아서 해줘야 할것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위 '괘씸마귀'에 넘어가 있었다. 어떤 분들에게 말하기를 "그장로님은 섭섭마귀에 빠져 있었고 그목사님은 괘씸마귀에 빠져 있었습니다."라고 했더니 다웃으면서 "장로님 말씀이 맞습니다."라고 말을 하기도 했다.

나도 많은 경험을 하고 때로는 '섭섭마귀' 때로는 '괘씸마귀'에 빠져서 죄를 짓고 교회안에서 부적절하게 행한적이 적지 않이 많이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나의 연약함이요 마귀에게 속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섭섭마귀'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체로 믿음이 연약하고 낮은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데 그이유는 윗분이나 또는 믿음이 강한 사람들 가르치는 자나 지도하는 사람들에게 이전에 받던 사랑이나 돌봄을 더이상 받지 못한다고 생각이 될 때에 그것이 섭섭해서 때맞추어 역사하는 '섭섭마귀'의 역사에 넘어가는 것이다.

'괘씸마귀'의 역사는 대체로 강한자들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 믿음이 좋은 사람들과 지도자들 곧 사랑을 받기 보다는 주고 있거나 주어야할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교인들이나 아랫사람들이 그만큼 사랑을 받았으면 알아서 해야할 것들이 눈에 보이는데도 그것을 안하거나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괘씸한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렇게 사랑해주던 제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붙어서 여러가지로 고통을 당하게 하던 형제가 있었다. 너무나 괘씸한 생각에 분한마음으로 문득문득 그형제가 생각이 날 때마다 마귀는 나에게 괘씸한 생각을 신나게 불어 넣어 주었다. 심지어는 기도할려고 골방에 엎드렸는데도 그형제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괘씸한 생각이 자동적으로 내게서 올라왔다. 어느날 주님도 참기가 어려우셨는지 골방에서 기도하는데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셨다.

"얘 너 그형제가 밉지?"
"예 밉습니다" 이를 갈다시피 대답을 했다.
"그미워하는 이유가 너에게 잘못하기 때문이니 나에게 잘못하기 때문이니?"
"......."

대답대신 통곡이 터져나오면서 눈물이 시냇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얘 너는 그형제의 행위가 마땅하지 못해서 미워하지만 나는 그형제의 행위가 마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형제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야. 너에게도 같은 사랑을 주지 않았니?"

그형제는 나중에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었고 지금은 만날 때마다 시원한 간증거리를 가지고 만나는 주님이 요긴히 쓰시는 신실한 형제가 되었다.  

'괘씸마귀'는 사랑을 베풀고 지도하고 가르쳐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데 '저정도면 이렇게는 해야지'라는 기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섭섭마귀'는 사랑을 받던 사람들이 아직도 이전과 같은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어하는 영적으로 자라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남을 볼수 있는 것이다. 두가지 모두 받을려고 하는 자세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항상 깨어서 받을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주고 베푸는 삶을 통해서 마귀를 기쁘게 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형제들을 기쁘게 하며 가르치는 자들과 직분자들과 영적인 지도자들과 연약한 이들이 서로 불쌍히 여기며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피차 주안에서 기쁘게 함으로 '섭섭마귀'나 '괘씸마귀'가 교회안에 일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역사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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