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어느 큰교회 목사님이 어느호텔 로비에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 여인이 있어서 "실례지만 누구시지요?"라고 물었더니 목사님 저 우리교회 집사예요. 아무개 집삽니다."라고 대답을 했다는 일화는 한때 유명한 일화중의 하나였다. 또다른 강남의 교회의 어느 목사님이 엘리베이타를 탔는데 남자교인이 함게 타고 있어 그냥 올라가는 것이 민망해서 실례지만 어떻게 되시느냐고 물었더니 '저아무개 집삽니다'라고 대답을 하더란다. 일을 마치고 또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교인이 같이 탔다고 한다. 그목사님은 아까 같이 탔던 교인인줄을 알아 보지 못하고 또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집사가 젊잖게 하는 말이 "아까 물어보셨잖아요?"하는 바람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어쩔줄 몰라했다고 한다.

소위 설교를 잘한다는 큰교회의 실정이 다 이와 대동소이함을 우리는 안다. 그목사님들도 딱하지만 교인들이 더 불쌍한 것은 저들은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교회로부터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특히 담임목사님에게 목회적인 사랑과 관심밖에서 교회만을 다니고 있는 사람(church-goer)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종교적인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요 그것도 목회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교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을 말하며 인격적인 접촉을 의미하는 만남이다.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과 같이 주님의 사랑이 통용이 되는 곳이다. 사람의 관심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 종교적으로 사랑하는척하는 위선되고 위장된 사랑이 아니라 교인들을 통해서 목회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고 받아지며 그사랑의 힘으로 세상에 나가서 이기고 승리하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실제적인 사랑의 교통이 있는 곳이다. 예배도 사랑이 나누어지는 예배 기도회도 찬송도 교제도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누어지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앞서 말한 사람들은 그교인들도 불쌍한 사람들이지만 목회자도 불쌍한 사람들이 틀림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수 없는만큼 그들에게는 줄 하나님의 사랑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관심도 가질수 없는 종교적인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 받는 교회생활이 어찌 가능할수가 있겠는가?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교인의 이름도 모르는 목회자가 그교인의 형편과 처지도 모르는데 어찌 그영혼의 목마름을 알며 그들의 영적인 아픔과 문제를 해결해주는 목회를 할수 있겠는가? 사도요한이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요 사랑하는 교회는 사귐 곧 영적사귐이 있는 곳이요 사귐이 있기 위해서는 서로 서로 숨김이 없이 빛되신 하나님앞에서 빛가운데 거하는것 곧 서로의 형편을 잘아는데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만일 우리가 우리죄를 자백하면'이라고 한 말의 뜻이 우리가 서로 우리죄를 자백하면이라는 뜻으로 권면한 것이다. 이와같은 영적인 원리들이 철저히 무시된 가운데 목회를 하고 교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교인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설교만 잘하는 목사를 찾아 나서고 형편없고 짜임새도 없는 그래서 듣기 역한 설교를 듣는것보다는 세련되고 듣기에 편하고 좋은 설교를 듣는 것이 그들의 종교생활의 가장 큰 비중으로 여기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설교를 잘하는 목회자를 따라 교회를 옮기는 가슴아픈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목회자들은 설교를 잘하려고 애를 쓰다보니 상대적으로 자기도 변하지 않고 인격도 변하지 않았어도 설교만 잘하면 목회가 잘되는줄 아는 기현상들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말만 잘하는 말쟁이들이 판을 치는 일들이 일어나고 급기야는 교회 강단에 말만하고 행함이 없는 가증한  바리새인들이 득세를 하는 역겨운 일들이 일어난적이 이미 오래 되었다.

설교를 잘하는 목회자가 교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들의 영적인 형편과 처지와 아픔도 모르고 교인들과의 인격적인 교통도 없고 접촉도 없이 일주일에 몇번씩 설교를 하고 교인들은 그와같은 설교를 듣는 것 이상의 아무런 교회생활이 없다면 그것은 양계장주인이 닭에게 사료를 먹이듯이 하는 목회요 설교라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른바 양계장목회요 양계장신앙생활인 것이다.

어느 여집사님이 오래전에 한말이 기억이 난다. "장로님 주님이 저에게 교회를 다시 선택할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저는 설교를 잘하는 목사님을 택하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 목사님을 택하겠습니다."

수십년전의 이야기지만 한경직목사님이 전국의 목회자들앞에서 울면서 고백하시던 말씀을 우리는 곱씹어 보아야 한다.
"저는 목회자가 아닙니다. 저는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장로의 아들의 이름을 모르면서 하나님앞에서 무슨 목회를 한다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이상한 종교단체로 전락을 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사랑하는 목회 사랑하고 사랑받는 교회생활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서로 피차에 사귐이 있는 신앙생화 사귐이 있는 교회생활 사굄이 있는 설교와 예배 그리고 기도회가 회복되도록 몸부림을 치며 부르짖는 일들이 이제 일어나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직분을 어찌 사료나누어주는 기계로 전락을 시키며 하나님이 주신 귀한 영혼들에게 어찌 사료와같은 설교를 나누어줌으로 망하게 하겠는가? 교회는 사랑이 없는 설교를 주고 받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곳이 아닌가? 깊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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