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길을 가는 사람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하란의 아들로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데라와 삼촌 아브라함의 돌봄을 받고 살았다. 어느날 할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아마도 할아버지가 죽은 자기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여 그의 이름을 따라 불렀던 하란이라는 곳에 머무르다 할아버지가 죽은 후에 삼촌을 따라 믿음의 험한 순례자의 길을 나서게 된다.  
정착할 곳이 없는 나그네의 삶을 삼촌과 함께 살면서 롯은 모든 외로움과 서러움 그리고 박대를 받는 일에 익숙해질 정도로 고생을 하면서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살기가 힘이 들어서 점점 남방으로 내려가다가 먹을 것이 없어서 애굽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숙모를 바로에게 빼앗기는 일을 겪으면서 연약하고 힘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는 나그네의 아픔을 삼촌과 같이 겪으면서 같이 울고 같이 기뻐하며 같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나그네의 길을 함께한다.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 왔을 때에는 재산이 많아져서 삼촌과 함께 거할 수가 없어서 삼촌이 말하기를 네가 우하면 내가 좌라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는 말을 듣고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아름다워 보이는 소알 뜰을 향하여 떠남으로 소돔의 삶이 시작이 된다. 거기서 롯은 보고 듣는 것을 인하여 그 심령이 상하는 삶을 살며 의인이지만 의인이 살수 없는 육적인 환경 때문에 결국은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가 그돌라오멜왕과 연합한 왕들에게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삼촌이 그를 그들의 손에서 건져오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그 성을 엎으시는 중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건져주시는 은혜를 입기도 하나 그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그는 술에 취하여 자기의 두 딸이 들어오고 나감을 알지 못할 정도로 인사불성이 된 삶으로 타락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두 딸 사이에서 난 족속이 오늘날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압과 암몬족속인 것이다.

그는 의인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의인은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을 말한다. 곧 하나님앞에 죄사함을 얻어 죄없이 함을 받음으로 소위 구원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길리움을 받지 못한 육적인 사람이었다. 하나님앞에 개인적으로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결국 육신 때문에 먹고사는 것 때문에 삼촌이 가는 순례자의 길, 믿음의 길을 중도에 떠난 사람이 되었고 자기가 좋아하고 의지했던 안락하고 부요한 삶의 환경이 자기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남에게 붙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결국에는 그 도시가 망하는 가운데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리고 자기가 그리도 소중히 여겼던 재산을 양새끼 한 마리도 건지지 못하고 유황불의 잿더미가운데 다 타버리는 비극을 맞게 된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구원함을 받았으나 하나님께 믿음을 배우지 못하고 말씀으로 양육을 받지 못한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하고 믿음의 길, 곧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을 떠나 육신적인 이익을 추구함으로 약속의 말씀을 뒤로하고 세상길로 가는 교인들이 그와 같은 사람들이다. 결국에 가서는 돌이켜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할 헛된 것에 빠져서 믿음을 배반하는 사람들이다. 롯의 삶을 통해 이와 같은 모습이 각각 자기의 모습이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게 될 것이다.

1. 롯은 의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구속함을 믿는 사람이요 그의 피를 믿음으로 속죄함의 도를 믿는 의인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았으며 소돔의 악한 사람들과는 달리 천사를 알아볼 줄도 아는 믿음이 있었고 그 천사를 대접할 수 있는 믿음도 있는 사람이었다.

2. 그러나 그는 육신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수십 년을 같은 여정을 걸으며 고생도 아픔도 같이 나눈 삼촌과는 달리 믿음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가 소돔으로 간 것도 전혀 육신적인 이유에서 내린 결정이었으며 자기의 눈앞에 보이는 정욕을 쫒아 간 것이었다. 그로인해서 자기를 친자식처럼 평생토록 사랑해주고 돌보아 준 삼촌에게 어느 정도의 배신감으로 아픔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같이 롯을 만나지도 나타나지도 않아주셨다. 곧 은혜를 주시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를 받을만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믿음의 그릇이 되어 있는 이에게 은혜를 주시지 육신에 눈이 멀어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 적이 없다.

3. 그는 축복의 순례자의 길을 벗어났다.
육신적인 이유 때문에 그는 시작부터 삼촌과 같이 해온 순례자의 길을 중도에 떠났다. 그는 믿음을 배우는 길에서 이탈해 간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유업을 받을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날도 진리의 길을 떠나는 이들이 많이 있다. 돈 때문에 롯의 길을 가는 목사들, 선교사들, 장로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과 짝하고 믿음의 길이 너무나 힘들어 육신의 안일한 길을 찾아 들어가는 심령들이 적지 아니하다. 핍박을 받는 길이 너무나 힘들다고 주님도 가신 그 길을 저버리고 핍박을 받지 않는 자리 곧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한 길에 서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의를 인하여 핍박을 받고 고생의 길에서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이들, 주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거스려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복음을 전하는 길을 떠나 교회를 성장의 길에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4. 그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기에 믿음도 없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승리의 삶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기에 인생의 위기에서만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동차의 스페어타이어 정도로 생각을 하고 산다는 말을 했다. 육신의 네 바퀴가 잘 굴러 갈 때에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산다. 육신의 일이 바쁠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고 사람을 찾아다니고 그들의 도움을 구하느라고 바쁠 때에 하나님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살다가 세상에 도움이 끊어지고 소망이 끊어지면 그때에 가서야 하나님이 생각이 나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새벽기도를 나가고 철야기도를 하는 위기 때에만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하는 말이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 외에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믿음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5. 그는 망하는 길을 갔다.
결과적으로 볼 때에 그는 망할 성읍에 자기발로 걸어서 간 것이었다. 그의 눈은 믿음의 눈이 아니요 육신적이었기 때문에 망하기 직전의 그 성이 자기에게는 아름다운 도성같이 보였다. 하나님이 불태울 그 땅이 여호와의 동산과 같이 여겼다. 오늘날 영안이 흐려진 사람들이 자기의 영혼을 죽일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따라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의 영혼들을 죽일 사이비 같은 사람들을 따라 다니고 거짓선생들을 따라 나서는 이들, 십년 이십년을 그들에게 말씀을 듣고 성경을 배우지만 의를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믿음의 진보고 없고 생활의 변화도 없는 무슨 훈련들을 배우면서 여전히 육적인 성향가운데 머물러 있는 이들이 소돔에 거하는 의인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기에게나 교인들에게도 유익이 없는 교회성장주의에 빠져서 자기도 경험해보지 못한 온갖 프로그램들로 교인들을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힘을 빼는 이들이야 말로 롯의 시력을 가진 영적인 소경들이다.

6. 그는 불신자에게도 신뢰를 받지 못한 인격이었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그는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했고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의 믿음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믿음이요 자기의 믿음이 자기를 변화시키고 거룩하게 하고 하나님을 닮게 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네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천사들을 해하려고 하였으며 그의 두 딸과 정혼한 사위들도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다는 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길 정도로 그는 신뢰받는 인격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그는 의인이지만 의인의 인격으로 변화되는 믿음을 배우지는 못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그와 같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의 믿음과 변화된 삶과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을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로 우글우글한 것이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7. 그는 건져주심에도 지체를 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는 중에 건져 주시려 함에도 그는 그 길을 지체하였다. 아직도 그는 육신에 대한 미련과 자기 재산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과 같이 그는 돈을 사랑함으로 자기의 생명을 구원하기를 어느 정도 미워한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눈이 멀어 자기의 생명을 경홀히 여긴 사람이었다. 자기의 사위들에게 이성이 망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말할 줄을 알면서도 자기가 말함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천사가 재촉함으로 그를 소돔에서 건져 내었다.

8. 그는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라 먹었다.
산으로 도망하여 네 생명을 보존하라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고 도망하라고 하신 말씀에 이렇게 말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라 먹었다.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 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창 19:18-20).

오늘날 적지 않은 이들이 자기들의 육신적인 형편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잘라 먹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힘이 들어 기도를 안 하고 전도를 중단하고 힘들어서 경건생활을 포기하고 힘이 들어 말씀을 보지 못하고 세상 것들을 즐기고 세상에 빠져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힘이 들어서 자기의 영혼을 보존하는 길을 가기를 포기하는 이들이다.

롯은 결국 자기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는 것을 보았다. 자기보다도 세상을 더 사랑해서 방금하신 ‘뒤를 돌아보지 말아서 멸망함을 면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뒤를 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된 아내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울면서 앞을 향해 가야만 했던 한 의인의 아픔이 우리 중에 누구의 아픔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그 땅과 자기의 재산과 자기의 아내를 잃어버리고 자기 생명하나 보존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글을 읽는 사람 중에 롯의 길을 가기를 원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롯도 처음에는 이런 길을 가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믿음 없음과 그리고 그의 육적인 성향과 세상 것을 사랑하는 것과 믿음이 적은 아내의 말을 하나님의 말보다 중히 여기고 삼촌의 믿음을 작게 여기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이지 아니하는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소중히 여김이 그의 삶의 결과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롯의 생애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그의 길을 가지 말고 어렵고 힘들고 외로워도 하나님의 위로를 구하는 아브라함의 반열에 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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