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상품화

어렸을 때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중에 맹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전교생을 훈시할 때마다 그분은 지금도 흉내를 낼 수 있을 듯한 어조로 교문 앞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사먹지 말 것을 강조하셨다. 그 말씀을 하실 때마다 단골로 들먹이시던 것은 “여러분이 불량식품을 사먹으니까 학교 앞에 팔러 오는 거예요 여러분이 불량식품을 사먹지 않으면 저 장사치들이 다 사라질 거예요.”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그분의 말씀이 그때보다도 지금 더 새롭게 들리는 것은 어찌된 영문일까?

한국천주교의 수장 격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죽은 지 일 년이 되었다고 매스컴이 떠들썩한지가 며칠이 되었다. 온 국민들이 그의 훌륭한 인격과 살아생전의 선행을 기리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분은 죽기 전에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추기경 김수환은 바보다.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것을 잘 알고 말하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그런가하면 그는 무소유의 사표라 칭함을 받기도 하며 칫솔과 20년 된 시계, 옷가지 몇 점등 검소했던 생활 그리고 임종 시에 자신의 안구를 기증한 일들을 지칭하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오늘날과 같은 탐욕과 정욕의 시대에 너무나 귀한 일이요 뭇사람들에게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할 일인 것 같다.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고 남을 위해서 살은 그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무소유의 삶과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남을 위해서 살았던 모든 인격과 성품과 그의 생활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교회와 유사한 천주교의 수장으로서 영적인 면에서 볼 때에 직시해야할 사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름이 아닌 어떤 사람의 선함과 착함이 목회의 본질이 아닐 수가 있다는 말이다. 욕심 없이 살고 자기 것이 없는 가난과 무소유의 삶을 살고 안구를 기증하고 세상에 남긴 것이 없이 살은 한사람의 선한 행위가 사적으로는 부분적으로 아름다운 덕목일 수는 있으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교회의 지도자로서의 전체적인 덕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분이 주님이 기뻐하실만한 진정한 목회를 했는지는 주님만이 판단하실 일이다. 그러나 목회의 본질은 주님을 닮은 성품과 인격을 본을 보여주고 본받게 하는 것이지만 검소함과 베풂과 자기희생만이 목회의 본질은 아니라는 말이다.

할 수만 있으면 전도하여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인도하고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고 날마다 때마다 그 영혼에게 영의 양식을 먹임으로 그 영혼을 자라게 하고 그 주님의 양을 잘 먹이고 침으로 그 영혼이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서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닮게 함으로 그로 하여금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영혼을 살려내는 생명의 열매를 맺는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목회의 본질인 것이다.  

더군다나 그분이 한말을 곰곰이 새겨보면 그분은 하나님이 크시고 사랑이시며 진리이신분인지는 머리로는 알면서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생을 마감했는데 이와 같은 일들은 바울에게서나 믿음의 선진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일이다. 이는 영적으로 미숙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받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전권적인 역사로 알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활로 사는 것이 믿음이다. 그 사랑을 머리로만 알고 입으로 말하고 또 마음으로 깊이 깨닫는다하여도 그 사랑이 나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도 선행은 할 수가 있다. 욕심 없이 사는 일이나 과욕을 부리지 않고 사심 없이 사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도 부지기수로 찾아 볼 수 있는 덕목이며 그와 같은 것들로 인해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이생을 앞서간 사람들 중에 수없이 많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그리고 야고보 장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말씀은 사랑으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며 공허한 것이며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다. 참 믿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동일한 믿음으로 그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영혼을 기르는 목회를 하고 그렇게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영혼을 가진 육체를 돌아보는 사랑으로 나오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야고보 장로가 믿음에는 행함이 있어야한다는 말씀이다. 어리석은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말씀한 행함을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으로 알지 못하고 단지 선을 행하는 행위로 오해를 하기 때문에 행위를 강조하는 도덕률 정도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믿음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이 목회의 본질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본질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개신교회안에도 이와 같은 바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보를 상품화하여 교인들에게 인기를 얻기 원하는 얄팍한 상술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은 진실한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해치는 일들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장로님이 있었는데 본 교회에서 영적인 충족이 되지를 않으니까 인터넷과 방송에서 많은 교회를 접촉하고 다녔다. 일종의 종교적인 외도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분이 어느 날 한 말씀이 “서울의 어느 교회는 재정상황을 인터넷 교회 홈페이지에 그때그때 띄웁니다.”이었다. 짐짓 그와 같은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교회재정이 불투명한 교회도 많고 교회 돈을 떼어먹고 강탈해가기도 하는 상황에서 참으로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본질도 목회의 본질도 아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본질이 아닌 것에 열광을 하고 매력을 느끼고 좋게 여기는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잠 1:22)

잠언기자가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한다고 탄식을 했다. 어리석음이 어디 그뿐인가?

어느 목사님이 10년을 목회를 하고 후임에게 물려주고 떠나간다는 말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목회의 본질이 아니다. 바울의 말씀과 같이 목회의 본질은 한 영혼, 한 영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왜 알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 1:25)

또한 누구누구는 조기은퇴를 한다고 말들을 하고 자랑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목회의 본질은 아니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목회지를 옮기는 일이나 조기은퇴를 하는 이들이 어찌 보면 더 이상 영혼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떠나가면서 자기를 아름답게 꾸미는 상술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함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목사님이 유명하다든가 설교를 잘한다든가 어느 목사님은 부흥회 사례를 안 받는다든가 또는 교인들이 수 만 명이 모이는 교회라든가, 선교하는 교회라든가, 구제하는 교회, 교육이 잘되어 있는 교회, 시설이 좋은 교회, 프로그램이 좋은 교회, 교회성장을 힘쓰지 않고 개척을 많이 하는 교회, 또는 북한선교를 하는 교회, 사회봉사에 힘쓰는 교회라든가 예배당이 크다든가 세계 제일, 아시아에서 제일, 이러한 말들이 주님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주지 못하는 것은 그와 같은 것들은 그야말로 목회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교회성장도 필요하나 목회의 본질은 아니다. 목회의 본질을 뒤로하고 교회성장의 잔꾀를 부리는 것은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다. 예배당을 새로 짓는 것도 필요한 것이지만 목회의 본질이 아니다. 영혼을 병들게 하면서까지 예배당을 짓는 것은 주님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목회자가 설교를 잘하고 성경을 잘 가르치고 제자훈련을 잘하는 교회에도 변하지 않는 교인들이 수두룩하고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종을 이루는 교회의 현실이 우리 앞에 있지 아니한가?

목회는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다. 목회는 믿음으로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목회는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는 것이다. 아무리 날고뛰어도 교회 안에 있는 한 영혼이 목회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목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안의 한 영혼이 목회적인 공급을 교회로부터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목회도 아니고 교회라고 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담임목사로부터는 사랑을 혹시 받지 못해도 최소한 교인들로부터 관심조차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세상모임보다도 더 악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목회의 본질이 아닌 것을 행하는 사람이나 자랑하는 사람, 그런 것들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것을 좋게 여기는 사람들이 다 속는 자요 마귀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는 희생자들이다.

그런데 마귀가 참 교활하고 악한 것은 그와 같은 것들을 상품화시키는 일들이다. 그것으로 자기를 아름답게 꾸미고 다른 교회교인들을 자신의 교회로 끌어오는 상품으로 이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술에 넘어가는 교인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앞에 말한 나의 초등학교시절의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각별히 여겨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경쟁을 할 수가 없고 경쟁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적은 오직 마귀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교회끼리 경쟁하고 목회자들끼리 경쟁을 하고 교인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은 마귀가 역사하는 일들이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들에 포함된 이들이 그렇게도 불쌍한 것이요 그와 같은 것들을 자랑하고 말거리로 삼는 이들이 참으로 안타까운 형편이다. 그들은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두아디라교회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두아디라교회는 교회 안에 사업도 많고 사랑도 있고 섬김과 인내도 있으며 나중행위가 처음행위보다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안에 세상을 용납하였다. 하나님이 세운 선지자가 아니라 자칭선지자들을 용인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자기를 아름답게 꾸미고 아름답게 보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선지자로 믿게 하는 모든 속임수를 아름답게 선하게 여긴 것이 두아디라교회의 치명적인 오류였다. 그래서 먼저 주의 종들을 타락시켰다. 어떤 번역에 보면 ‘내 종들을 방황하게 하였다’로 번역을 하고 있기도 하다. 부도덕한 죄를 짓고 세상과 짝하고 쾌락을 즐기는 자리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그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도다.’라는 말은 이방신상을 섬기는 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자들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천주교가 이미 그렇게 되었지 않은가? 그래서 그들은 예수 외에 수많은 성자들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마리아숭배를 비롯해서 주님이 아닌 것들을 숭배하고 있지 아니한가 말이다. 그것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 가운데 처한 것이다. 오늘의 주님의 몸된 교회에 이것이 반면교사가 되고 타산지석이 되어야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그리스도 외에 무엇을 자랑할 것이 교회 안에 있으며 누구를 자랑하고 존경할 자가 교회 안에 있겠는가? 교회는 세상이 아니다. 사람 중에서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말씀을 잊었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

스스로 옳다고 하는 사람이나 사람들이 옳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나 주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니며 주님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님과 상관이 없이 사람에게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미움이 되지만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주님이 기뻐하시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8)

그것은 기뻐하심과 칭찬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인가 아니면 인간으로부터인가의 차이인 것이다. 그 차이는 근본적인 것이요 치명적인 차이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은 두아디라의 경고와 같은 경고를 이 땅의 교회들에게 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마음과 뜻을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주님이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실 날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땅의 교회들에게 아직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영적인 음행이나 육신적인 부도덕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그를 침상(병상-sickbed)에 던져 병들게 하시고 큰 환란가운데 던지고 그의 자녀들도 사망으로 죽이시겠다고 경고하시는 경고를 온 마음을 다해 들어야할 때이다.

이제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목회의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교회의 본질 신앙생활의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곧게 잡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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