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은 교회에서 일어난 일

지금 우리는 너나 할것 없이 모두 다 영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강단마다 복음의 생수가 마르고 교회안에 있는 영혼들은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겉모양으로 교회가 되는 교회나 안되는 교회나 영적으로 힘들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외면적으로는 무엇인가 되는것 같은 교회들도 내면적으로는 다 힘들어 합니다.
생명이 없는 교회나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아픔이 없이 지나가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생명을 받아 사는 교회와 성도들은 한가지로 어려움과 아픔으로 안고 있습니다.

교회성장이나 건축이나 선교와 같은 것들로 교인들을 자극하던 시대도 이제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전도로 교회를 부흥시키겠다고 열심을 내던 것은 말할 것도 없구 말입니다.
돌아보면 예수전도협회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부흥에 이용하기 위해서 몰려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얼떨결에 은혜를 받고나서 전도를 하는 것이 교회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구나 라는 사실을 알고 깨달았어도 영적인 현실은 그렇게 가까이 있지를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목회를 하고 교회를 하는 것보다 회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도 사람들의 눈이 무섭고 육신의 체면때문에 순종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는 말씀을 알면서도 육신과 세상과 타협하고자 하는 유혹도 쉽지 않았습니다.
용감하게 시작을 한 전도를 접는 것도 쉽지를 않았고 교인들에게 그와같은 사실을 납득시키는 것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거룩한 부흥이나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부흥과 전도들이 이제는 다 물건너간것같이 여겨지는 상황가운데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전세가 완연히 기울어진 전장에서 간간이 총성이 울리듯이 전도를 하는 사람이나 교회가 소수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악한 세력의 대세를 거스리는 것은 거의 힘들어 보이는 것도 무리한 생각은 아닐듯 싶습니다.
미국에 사는 어떤 장로님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장로님 우리가 옳다는 것으로 이렇게 끝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거기에 내가 대답할수 있는 재료가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권적인 권한에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장로님은 언제 우리가 기다린던 주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인가에 대한 초조감에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사실은 우리가 기다리고 소망을 하는 것이나 때로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같은 절망을 하는 것이나 다 하나님이 하실수 있는 것들이지 우리가 손을 댈수 있는 것들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때도 방법도 역사도 하나님의 권능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언제 주실지 어떻게 주실지 무엇을 주실지 아는 사람은 이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아십니다.
그일은 아버지만이 하실수 있는 일이요 아버지만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하심과 그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상 저도 많이 힘들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밖에서 오는 핍박이나 대적하는 자들이나 때문이 아니라 알고 있는 진리가 효과가 아니 나타나는 것같은 자괴감에 빠지는 것같은 아픔입니다.
월요성경학교에 꾸준히 오고 있는 목사님들도 힘들어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전도를 그만 두고도 전도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습니다.
전도를 하지만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분들도 있고 전도를 하지만 은혜가 따라주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몇 년전만 하더라도 관광버스를 전세 내어 전도여행을 왔는데 이제는 사모님도 교인들도 안오고 목사님 혼자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안의 신실한 집사가 간암으로 죽고 또 한가정은 죄로인하여 파괴되고하는 가운데 큰 타격과 충격에서 헤어나오고 있지를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지난 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당신 아들이 참 큰일났다고 전도훈련을 받기전보다도 더 타락을 했다고 주변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천국에 갔다는 말도 들려 옵니다.

단지 월요일날 와서 서로간에 영적인 교제를 할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이 살수 있고 영적인 숨통이 트이는 것으로 안도감을 가지는 분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모두를 조금씩은 괴롭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누구하나 안될 것이다 라는 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라는 사람이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을 가지고 저를 공격하는 일에 공격을 당한적도 있고 미국의 전도한다는 어느 권사님으로부터 집회때문에 식사대접을 받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나에게 폭언을 퍼붓는 수모도 당한 적이 있었으며 그분은 그후로 협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또 훈련을 받고 교회가 말로 다할수 없는 위기에서 건짐을 받은 어느 목사는 영적으로 충족이 되지를 아니한 나머지 내가 쓴 책과 강의한 테입들을 다 사가지고 가서 듣기도 했다는데 이상한 사람들과 어울려 전도하는 교인들을 강단에서 춤추게하는 일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도 아픔이 되었습니다. 또 적지 않은 이들이 예수전도협회와 협회의 목사님들을 금전적으로 이용해서 상처를 주기도 한일들이 적지 아니하게 있는 것도 작은 상처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어떤이들은 간증을 시켜 주지 않는다고 협회에 발길을 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던 이들은 전도여행때에 대장을 시켜 주지 않는다는 불만에 협회에 오기를 꺼려하는 분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혐회가 도움을 주던 도움을 주지 못하자 발길을 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던 이들이 칼로 무를 베듯이 무슨 이유에선가 아무 말도 없이 어느날부터 연락을 싹둑 끊어버리는 일은 그냥 일상적이며 허다한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이렇게 끝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마귀가 줄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우리의 소망이 되신 주님이 날마다 쥣는 은혜로 주님을 굳게 붙잡고 변함없이 하루중의 거의 대부분을 나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종일토록 주님을 만나고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영감을 받으면서 사는 것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답답한 상황속에서 최근에 작지만 한 빗줄기 같은 시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천안의 어느 작은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일은 아직도 하나님의 그분의 일을 하고 계심을 우리모두에게 알게하기에 충분한 일이 되었으며 우리 모두에게 잔잔한 충격과 기쁨으로 다가 왔습니다.

목사님은 전도훈련을 받고 십여년동안 월요성경학교를 꾸준히 참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도를 중단하고 영적으로도 갈급한가운데 최근에 건강을 우히ㅏ여 운동을 한다는 것이 그만 테니스에 빠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목사님들이 하는 테니스 조직에도 간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영적으로 더 힘들어 졌습니다.
사모님은 은혜를 받았지만 영적이라기 보다는 교인들을 섬기고 음식을 해주고 반찬을 해주고 병간호를 해주는 일들과 때로는 교인들의 아이를 챙기는 일들도 열심히 하면서 교인들에게 ‘좋은 사모님’이라는 인정을 받기에 충분한 그런 분이었습니다.
여러해 전에 목사님의 친조카가 교회를 한번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삼촌의 권유로 훈련을 받다가 교회 뒤들에가서 담배한모금을 빨다가 헛구역질이 나면서 담배가 끊어지는 은혜가 임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일거리조차 없던 그조카에게 주님은 세탁소를 할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목사님의 형인 아버지와 함게 세탁소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자간에 너무나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평생에 이렇게 돈을 많이 만져본적이 없다고 기뻐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조카가 결혼할 때에는 나를 주례로 불러 혼례식을 하였는데 딸둘을 낳아서 잘살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천안에서 집회를 할 때에 그조카가 참석을 해서 누구 한사람 기도하라고 했을 때에 일어나더니 울면서 “내가 우리 목사님을 미워했습니다.”라고 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회후에 목사님이 나를 역에 태워다 주었는데 그목사님에게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조카가 왜 저렇게 목사님이 미웠다고 고백을 하는지 그이유를 아세요?”
“아니요”
“목사님 때문에 은혜를 받고 변화되었는데 그래서 더 은혜를 받기를 원하는데 목사님을 통해 그은혜가 충족이 되지를 않고 자꾸 은혜를 상실하고 뒤로 물러가는 자기자신의 아픔 때문에 저렇게 고백을 하는거예요.”

그리고 어느 집사님은 슈퍼를 했었는데 실제로 주님과 함게 사는 생활을 살고자한다는 말만 해도 슈퍼에 오는 손님들이 충격을 받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집사님은 무리해서 새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또 받은 은혜가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서 신앙생활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중 한달전에 일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를 나오던 자매가 있었는데 가끔가다 주일예배도 빼먹기를 습관처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달쯤 전에 예배시간에 그자매가 직원들과 함게 어디로 놀러갔다 오다가 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가 나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고를 수습하고 장례를 치루면서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내일생에 가장 괴롭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고 괴로워 했습니다. 그이유는 그자매가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 목사님이 알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를 하던 목사님이 그자매를 그냥 교인으로 대했지 영혼으로 대하지를 못했던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일은 목사님에게도 사모님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교인들에게도 말할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서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인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들이 교인들의 마음을 강력하게 지배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천안에서 하는 여름전도여행에도 안 왔던 교인들까지도 이번 추석사경회에는 다 올라가자는 분위기로 교회가 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가운데 사모님에게도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13년전에 개척을 할 때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왔던 성당에 다니던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말하자면 교회의 일호신자였습니다. 그분은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었는데 소아마비로 신체 장애가 있어서 좀처럼 마음문을 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보이지도 않게 사라져 버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자신의 핸디캡 때문에 마음문을 열고 교인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얼마간 교회를 나오다가 이년쉬고 또 무슨일이 있으면 목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얼마간 나오다가 삼년을 쉬기도 한 것이 그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주님이 사모님에게 그교인이 갑자기 불쌍하다는 생각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교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냥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힘드시죠”했더니 그분이 울컥하니 울고 그마음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사모님이 목회가 일이 아니요 마음으로 하는 사랑임을 그때에 경험했다고 합니다. 교인들을 열심히 돌보고 부족한것 채워주고 섬기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답니다. 사실 그런것들은 행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사람을 변화시킬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교인이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는데 “사모님 이대로 살면 내 영혼이 숨이 막혀서 죽을 것같애요”라는 말을 들으면서 교인들의 영혼의 아픔을 감각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그사모님은 말을 더 이상 잇지를 못했습니다.
그렇게 추석사경회를 올라온 교인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일호 교인에게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임했습니다. 그분은 집회를 다니는 분도 아니었습니다. 사모님이 가자고 권했을 때에도 못간다고 했는데 당일날 마음이 변해서 가겠다고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평생에 처음으로 말씀이 첫날밤에 들어 왔는데 그것은 성령이 내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전에도 그분의 얼굴을 보았지만 이제는 말씀을 듣는 얼굴이 그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얼굴에서 기쁨의 광채가 났습니다. 그분은 추석사경회가 끝나고 생전 처음으로 교회에 남아서 성도들과 한참동안을 교제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목사님도 은혜를 받았는데 첫날밤에 “감당하지 못할 칼로리는 먹지도 말라”는 말을 확실하게 붙잡았다고 내게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육신에 관한 말이었으나 그목사님은 영적인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테니스를 끊었다고 합니다. 며칠되지 않았지만 날마다 교회에 나가서 말씀보고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하나같이 은혜를 받은 중에 마지막날 마지막 시간에 천국에서 만나보자를 하면서 가장 격렬하게 부둥켜 안고 울었던 교인들이 그교회의 교인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변화는 사모님과 목사님에게 일어난 주님의 역사입니다. 목회가 일이 아니라 사랑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을 특별히 사모님에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월요성경학교때에 사모님의 짤막한 간증이 회중을 폭풍처럼 훑어 갔습니다. 여기저기서 흐느껴 울다가 아예 엉엉 소리를 내어 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분은 얼굴이 벌개서 어쩔줄 몰라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와같이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어느분이 운전을 해 가고 있는데 어느 미국인이 옆에 차를 세우더니 고맙다는 말을 연발을 하더랍니다.
무슨 영문인가 했더니 그차 뒤의 번호판에 “하나님이 일하신다”(God is control)라고 써 놓았는데 자기가 그날 말할수 없는 낙심가운데 운전을 하다가 앞차의 번호판에 쓰여진 그글을 읽고 힘을 얻었다고 좋아하더라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지금도 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그어떻게 되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막 4:26,27)

그렇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가 잠잘 때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깰 때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굳게 잡을 때가 지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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