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구속의 사랑과 은혜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재창조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가 중요한 것과 같이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개인적인 창세기이며 새 생활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잘못되었을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작하는 것과 같이 신앙생활도 하루에도 열 번 스무 번씩 잘못될 때마다 회개하고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돌아가면 말끔히 치료되고 복원이 되는 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요, 믿음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죄악 세상이요, 우리의 몸은 아직도 옛사람의 냄새를 풍기고 있으며 마귀는 그와 같이 연약한 우리를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날마다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고자 하는 현실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혼자만 살아도 힘이 드는데 우리는 처처에 죄인들과 함게 살고 있어 십자가보다는 죄를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세상을 사랑하여 일만 악을 생산하면서 힘겨운 순례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요한 일서의 말씀과 같이 죄를 짓지 않는 성도는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 받고 씻음을 받으며 십자가의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은 언제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죄를 짓는 가운데도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씻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속도가 빠른 것이 영적으로 성장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에도 열 번 스무 번 죄를 지으면 열 번 스무 번 매번마다 십자가의 은혜가 회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지 못 합니다.  

그래서 고난주간이나 부활절이 종교의식화되는 교회와 개인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아무런 인격이나 사랑이 없이 마음도 없는 고난주간과 부활절을 보내는 이들이 많은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주간에만 유난히도 십자가의 사랑에 흠뻑 젖어 보려고 하는 것도 자기중심적이며 병든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생활이지 행사가 아닙니다.

부활도 부활의 능력을 날마다 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생활이지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은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 각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셔서 함께 사시는 분입니다.

일찍 죽임을 당하신 주님을 우리가 날마다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십자가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은혜를 잊고 사는 사람은 일상에서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 부흥회도 필요하고 말씀으로 회복되는 집회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에서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말씀이 없는 기근의 현상이 나무 나도 악한 시대입니다.

교회도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세상 사람들도 지적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벧엘의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세겜을 떠나야 합니다.

영적인 교회를 떠나서 육적이고 세속적인 교회로 돌아갔던 발걸음도 되돌려야 합니다.  

육신의 평안과 안일은 곧 영혼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귀한 줄로 여기지 않는 믿음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십자가의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절체절명의 영적인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집회가 이번 고난주간 집회입니다.

삼 일 동안 아홉 시간에 걸쳐서 주님의 고난주간의 행적을 살피면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찾는 은혜를 받는 집회입니다.


목사님들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고난주간 사경회에 참석하고 수요일밤부터는 교회로 돌아가서 수목금토 4일간 고난주간 기도회를 한다면 주님께서 교회마다  큰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교회와 진실한 성도들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부흥이 가까이 온 징조를 지난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더는 지체할 수도 없습니다. 때가 급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를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주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용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쉽고" "너무나 좋다"고 목사님들이 신학교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을 듣는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 일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서 밤을 새워 기도하고 영감을 받아서 책을 쓰고 교재를 작성하는 것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초대교회의 모습이 아니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도 아닙니다. 어떻게든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보다도 주님이 더 급해 하십니다.


곧 일하실줄을 믿고 기다립니다. 함께 기도하며 동참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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