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배시간 도중에 갑자기 옛날 은사님 생각이 났다.

50년 전의 선생님인데 그 성함도 생각이 났다.  그분의 성함을 말해도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분은 그 당시 우리들에게 좋은 추억만을 남겨주신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분의 성함은 박 요순(朴 堯舜)이었다. 이러한 이름은 우리 모두에게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당신의 부친께서 중국의 태평시대이었던 요순시대의 왕인 요왕과 순왕과 같이 후덕한 사람이 되라고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그분은 젠틀하고 항상 깨끗한 정장 차림을 하셨다. 그래서 선생님들 중에서 탁월한 베스트 드레서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빛이 번지르르 흐르는 실크 양복을 즐겨 입으셨던 것 같다.

그분은 영어 선생님이셨는데 한때 어려울 때에 학원 선생님도 해서 그런지 유머감각도 뛰어났고 말솜씨도 보통 유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항상 인기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의 별명을 “허당”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분은 문제를 풀다가 틀린 답을 일부러 말씀하시면서 유난히 큰입으로 웃으면서 “허당”이라는 말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청주의 명문고 출신이었는데 이때 우리가 생전 처음으로 들은 “허당”이라는 말은 강원도 사투리로 “헛일”이라는 뜻의 말이다.

아마도 충청북도가 강원도와 접경지이기 때문에 충북에서도 강원도 말을 쓰게 된 것 같다.


오늘 예배를 위한 기도를 할 때에 그분의 생각이 났다.

그 이유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허당”이 되는 교회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녀도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살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당”이 되는 것이다.

집사도 장로도 목사라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허당 신자인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는 마태복음 7장 21절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행하면서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세상과 정욕에 길들여지고 단련이 된 사람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는 허당 교인이 되는 것이다.


집에 공책이 없어서 두루 찾다 보니까 이십 년 전에 공책과 십여 년 전의 공책을 발견했다.

그런데 거기에 쓰인 내용이 신기한 것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말이 틀림이 없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영적인 가치과 육적인 가치가 있는데 신앙생활은 영적인 가치이지만 믿음으로 살지 않고 교회생활만 하는 것은 육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서로 대조되는 것들을 기록했다.


목회를 하는 것과 교회를 하는 것

“복음전도를 하는 것과 복음이 없는 전도 행위만을 하는 것”

“헌신하는 것과 헌신이 없이 헌금만을 하는 것”

“주를 따르는 것과 사람을 따르는 것”

“주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인 반면에 사람을 따르는 것은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르는 것이며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조상의 유전을 따른 것과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교리를 선택하는 어리석음이 육적인 가치를 따르는 것이다. ”

“내면세계의 변화를 구하는 것은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외식하는 것은 육적인 가치를 구하는 것이다. ”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영적인 가치이지만 일이 앞서고 일만 하는 사람은 육적인 가치를 구하는 사람이다. ”

“순종하는 사람은 영적인 가치를 구하는 사람이지만 순종함이 없이 제사만을 구하는 사람은 육적인 가치에 빠진 사람이다.”


육신의 가치를 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방식대로 사는 사람들은 교회를 다녀도 허당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유명하기도 하고 칭찬을 받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허당이 되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허당 교회가 된다.


그래서 오늘은 말씀을 전하면서 교인들에게 여러분들이 오늘 여기 앉아 있는 것이 말씀으로 살지 못하면 쓸데없는 일이 된다고 전했다. 날마다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 문을 나가면서부터 일주일 내내 말씀을 붙잡고 한 말씀 한 말씀 순종해 내지 않으면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교회 안에서 어떻게 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오늘 이시간부터 한말씀 한말씀씩 순종하는 생활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가정에서 말씀에 순종하고 직장에서 시장과 길거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참 믿음으로 사는 신앙생활이다.


사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의 예배나 봉사나 헌금은 주님이 보시기에도 역겨운 것이다.

그와 같은 것들에 속아 넘어 가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지금도 나중에도 주님 앞에서 “허당”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일고 듣는 시간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그 말씀대로 살게 해달라고 절박하게 부르짖는 기도 시간이 정해져야 한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생활을 현장에서 사는 것이다.


그래야만 세상 죄인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말씀을 순종하는 생활을 살 때에 교회가 변화되고 그로 말미암아 세상도 변화되는 복음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복음은 말이 아니고 능력이기 때문이다.



(*.220.12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