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여기 온 지 4일 되었는데도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는 발리 해변을 아직도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순복음계통의 교회에서 집회하고 있는데 예상은 했지만, 사람에게 보여주는 쇼 같은 복음성가 공연은 영적인 분위기를 흐리고 사람들이 영적으로 진지해지는 길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세상 노래를 부르는 멋들어진 방법으로 자기들만의 욕구를 해소하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주님은 그들에게 적절한 말씀을 주셔서 오늘 아침부터는 사람들이 제법 진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일날 밤에 인천 공항에서 시간 반이나 지체된 비행기는 새벽에 두 시 반(한국시각으로는 세 시 반)에 발리 공항에 내려놓았습니다. 호텔 체크인을 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후이었으며, 두 시간여 눈을 붙이고 아침 식사를 하고는 집회 장소로 향하였습니다. 매일같이 6시 반에 아침 식사를 하고 쉴 틈도 없이 막히는 발리 시내를 달려서 9시에 집회를 시작하고 오전에 제가 말씀을 두 번 전하고 오후에는 목사님들의 간증과 그리고 오후에는 일반 교인들을 위한 전도 집회를 하고 밤 10시가 넘어서 호텔에 도착을 하는 식의 강행군이 매일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첫 시간에는 사도행전 2장의 교회와 오늘날의 교회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 지를 말씀으로 증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아픔으로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나서도 앞에서 인도하는 찬양인도자들의 인도를 따라 습관적으로 복음성가의 굉음 속으로 빠져 들어 가서 공허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불쌍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집회장소의 교회 담임목사의 태도가 첫 시간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여러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교회 사모님의 감정적인 표현이 좀 더 리얼했습니다. 첫날 저녁 시간에는 두 가지 생명을 가지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자의 복음성가로 하는 뒤풀이가 얼마나 영적으로 끔찍한지를 소상히 설명했습니다. 찬송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구원받은 즐거움에 찬송하고, 믿음으로 사는 승리생활이 찬송이 되고, 나중에 천국 소망을 가진 사람이 찬송을 부르는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그들의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날카롭게 지적을 하면서 두 가지 생명을 가지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 같은 가짜가 얼마나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실제 생활이 이중적이며 비참했는지를 그리고 교회에 와서 아무 일도 없이 행복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교회생활을 했던 것을 말하면서 그와 같은 것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을 눈물로 전할 때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울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조금 전에 세상 사람처럼 몸을 흔들면서 복음성가를 인도했던 어느 교회 사모는 남편 목사와 함께 얼굴이 시꺼멓게 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고 옆 사람들은 십자가의 사랑에 감격하여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도 그들 부부는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둘째 날인 어제 아침에도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오전시간에 두 시간에 걸쳐서 사도행전의 교회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서 내가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힌두교도들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 또 모슬렘이 가득한 이 나라에서 전도가 안 되는 것이 힌두교가 강하고 모슬렘이 완악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지 말 것을 설명하면서 사도행전의 교회 때의 유대인들은 지금의 힌두교도나 어떤 모슬렘보다도 더 악하고 잔인하였음을 말하고 교회를 악하게 대적한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으며 스데반을 죽인 사울과 그날에 핍박이 일어나서 유다로 사마리아로 흩어진 교회와 그리고 다른 외국의 도시까지 공문서를 받아가지고 가서 제자들을 잡아 죽였던 사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에 비하면 지금 힌두교도나 모슬렘을 두려워하는 것은 변화를 받지 못하고 성령이 충만하지 않아서임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찬송에 대하여 또 말씀을 전하면서 사도행전의 교회의 성도들은 자기들이 변화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미했을 때에 온 백성들이 그들을 칭찬함으로 주께서 구원을 받은 자의 수를 날마다 더하게 하신 사실을 말하면서 전도를 하고 못하느냐가 아니고 힌두교화 모슬렘의 적대감이 극에 달하여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내가 변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전도가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면서 내가 변화되고 내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고 그래서 찬송을 불러야 그찬 송이 진실한 찬송이며 그렇지 않으면 찬송으로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를 속이는 것에 대하여 말을 했습니다. 변화 받지 못하고 무슨 가사인지도 인식을 하지 못하고 부르는 찬송이 얼마나 큰 재앙인지를 말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변화 받지 못한 것 이상의 재앙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화된 삶을 날마다 살았던 것과 직장에서 상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이 나를 어찌 인정을 하실 수가 있겠는가 하며, 눈물로 기도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직장에서도 변화된 생활을 살아서 나를 찾아 와서 예수를 믿게 해달라고 했던 직원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증하면서 회사 복도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집안 욕실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찬송을 불렀던 간증을 할 때에 어제 밤에 찬양인도를 한 사모의 남편목사가 드디어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면서 울기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인애하신 구세주여’를 부르면서 거의 모두가 울면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우리가 준비해간 찬송을 처음 부르게 된 것입니다. 항상 그렇듯이 간증을 하기 위해서 같이 동행한 목사님들이 더 큰소리로 울고 기도를 했습니다.

 

저녁시간에는 그 교회 청년들이 찬양을 인도했는데 약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복음성가를 정신없이 부르다가 마지막으로 낮에 목사님들과 같이 불렀던 ‘인애하신 구세주여’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복음성가를 부르는 정신과 끝을 뒤틀어 버리는 세상곡조로 거만하게 불렀습니다. 그리고 내가 올라가서 성경봉독을 하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말씀시간에 찬송을 부르지 않았는데, 찬송하라는 감동이 와서 찬송가를 뒤적이는데 주님이 조금 전에 저들이 멋들어지게 부른 ‘인애하신 구세주여’를 다시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부르고나서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들은 참 모든 찬송을 즐겁게 부르는 것이 어찌 보면 참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찬송은 그렇게 부르는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죄를 이기고 죄 사함을 받아서는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지만 죄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했을 때는 회개 찬송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도 기쁨으로 부르면 안 된다는 것과 조금 전에 우리가 불렀던 찬송이 회개 찬송이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에게 제사를 드리며 백성들이 기뻐하며 뛰논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어서 스스로 기뻐한 것이며 악한 것임을 말하고 찬송으로 사람을, 또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임을 말했습니다.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출 32:6)

 

그리고 하나님의 내려 보내심을 받아서 모세가 내려왔을 때에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그 소리가 시끄러워서 싸우는 소리로 들렸으며 찬송소리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의 떠듦을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 (출 32:17)

 

그러나 모세는 찬송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기에 승전가와 패하여 부르는 회개 찬송을 말했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출 32:1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십자가 군병입니다. 군대에게는 승전가를 부르는 기쁨이 있고 패전할 때에 슬픔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백성들의 노래는 사람의 노래에 지나지 않으며 승전가도 아니고 패하여 부르짖는 회개 찬송도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우상숭배자와 같은 것이요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온 백성 들이 곧 힌두교인들이 칭송할 수 있는 찬송의 제목, 곧 변화된 삶을 가지고 기쁜 찬송을 부르든지 아니면 회개 찬송을 부르며 불쌍히 여겨주실 것을 마음을 깨뜨리는 심정으로 불러야 할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앞에서 찬양을 인도했던 청년들 중에도 울면서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이라는 것을 전하면서 나도 울고 그들도 울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 성이 강한 죄인들인지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처방도 안 되고 치료도 안 되는 죄인임을 말하면서 그런 죄인인 나를 위하여 주님이 함께 죽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말씀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하고 자유롭게 돌아가라고 했는데도 일어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우리 팀이 교회를 떠날 때까지도 그들 중에 한사람도 교회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 시간은 여섯시 이십분입니다. 이제 내려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남은 이틀 동안의 말씀시간을 또 감당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할 시간입니다. 또 소식을 전하기를 기약하면서 이일을 위해서 눈물과 간절한 마음으로 믿음의 간구와 기도를 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어제도 미국에 로스엔젤레스의 전도자들이 헌금을 보냈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남의 나라로부터 매달 받는 소액의 노인복지연금으로 생활을 하면서도, 그중에 얼마를 크고 작은 액수를 헌금하신 분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경의와 존경을 표하며 깊은 마음으로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이일에 주님을 사랑하고 병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로, 거액의 또는 과부의 두 닢과 같이 각 사람에게는 피 같은 헌금을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220.12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