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기독교

 

 

며칠 전에 강원도 태백으로 말씀을 전 하러 갔다.

 

간사가 운전하는 차에 뒷자리에 앉아서 깊은 잠에 빠져 가던 중 차가 크게 휘청함을 느끼고 잠에서 깼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차가 갑자기 끼어들어 와서 피하느라고 그랬다고 대답을 한다.

 

그때부터 주님이 잔잔한 음성으로 나를 만나 주시는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말씀이었다.

 

얘야 오늘날 교회가 왜 욕을 먹는지 아니?”

“······”

그것은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야

“······”

교회는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 것이 교회이지 욕을 먹는 것은 교회가 아니란다.”

“······”

성도도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기 때문에 착한 행실을 나타내어 세상 사람들로 하늘에 계신 성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욕을 먹는 것은 성도가 아닌 것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

나를 따르는 제자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인데 이미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전도의 열매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동안 나를 따른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은 교회의 머리는 자신이시며 교회는 주의 몸이라는 것을 상기시키시면서 오늘날 교회라고 하는 것 중에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지 않는 사람이 다스리고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기독교 조직임을 일러 주셨다.

 

주님은 그의 피를 흘리심으로 핏값으로 그의 몸 된 교회를 세우셨지 예배당이나 기독교나 무슨 교단이나 선교단체를 만드신 것이 아니다. 혹시 예배당이 필요하다면 참된 교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무슨 선교단체나 다른 단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 앞에 전적으로 굴복되고 엎드려야만 한다.

 

교회가 신학교를 위해서 있는 것은 악한 것이다.

교회가 교단을 위하여 있는 것도 악한 것이며 사람이나 조직이 교회 위에 군림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우주적이며 전적인 통치를 부인하고 약화시키는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오래전에 교회 안에 불의를 행한 목사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내 맘이지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에게 아니 목사님이 주님의 마음대로 일을 해야지 자기 마음대로 일하면 됩니까?”라고 일침을 준 적이 있었다.

 

하나님 나라의 임함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각 사람을 개인적으로 통치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통치하면 안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바울은 땅에 있는 이들을 아비나 스승이라고 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3:8~12)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바벨론 교회의 생리이다.

그것은 사람이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다.

 

사람의 영향력을 크게 하려고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조직을 하는 것이 바벨의 시작인데 바벨의 뜻은 혼잡이며 인간이 힘을 모으고 지혜와 뜻을 모으는 것은 혼잡의 시작이다. 바벨론 교회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사람의 뜻을 따라서 행한다. 바벨론 교회는 하나님만이 다스리시는 성도들을 사람이 다스리는 역학 구조를 형성한다.

 

그처럼 바벨론 교회가 생성이 되고 그와 같은 생리가 나타나는 것은 저들이 교회라고 하는 그 속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바벨론 교회가 소위 말하는 기독교의 정체인 것이다. 주님은 기독교를 세우신 적이 없다. 주님은 교회를 세우셨다. 하나님은 유대교를 만드신 적이 없다. 인간들이 만든 것이 유대교이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기독교라는 말은 로만 가톨릭으로부터 시작된 말이다. 신실한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이 단어 자체를 배제하고 청산하여야 한다. 해방되고 70년이 되어도 아직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고 아우성이지만 사실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가 5세기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로만 가톨릭의 잔재가 만연한 것이 오늘날의 신학이요 기독교의 모습이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싫어한다.

이슬람도 기독교를 싫어한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한다.

기독교에 속한 사람들도 기독교를 싫어한다.

 

그러나 예수와 복음은 금지할 법이 없다.

 

내가 복음을 처음 전하기 시작했던 1975년에 내가 다니던 직장의 직원들도 기독교를 싫어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그들은 의례 기독교 안에 있는 목사들과 장로들, 그리고 집사들의 욕을 하면서 거부했다.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변화시켜 주신 예수를 증거하고 그 예수를 믿으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생활을 주목하면서 한사람씩 예수를 믿기 시작을 했다. 남자 다섯 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오 년 만에 삼백 명이 되었고 그들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방면에서 지대한 것이 되었다. 술꾼과 도박꾼이 변화되고 가정이 회복되는 역사로 나타났다.

 

여러 해 전에 비행기에서 만난 한 모슬렘은 내가 전하는 예수를 듣고 자기도 나와 같은 마음의 평화가 필요하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말을 하면서 자기도 예수를 믿겠다고 했다. 그는 종교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모슬렘도 싫고 기독교도 싫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믿은 예수를 증거 하자 반색을 하면서 예수를 믿겠다고 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도행전 2장의 교회와 같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타락하고 세속화된 기독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교회가 아니라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이 다스리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째 짐승인 로마 가톨릭과 같이 둘째 짐승인 개신교 교권이 교회를 다스리면서 첫째 짐승의 생태를 그대로 본받고 답습하고 있는 것을 지혜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의 17장과 18장의 바벨론 교회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독교의 실체인 것이다.

 

세상의 욕을 먹는 것은 바로 바벨론 교회의 교인들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성도들은 온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손가락질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성도들이 아니라 교인들이라는 말이다.

 

교회의 목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기독교 목사는 욕을 먹는 것이다.

교회 장로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기독교 장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스데반과 빌립과 같은 사도행전의 일곱 집사와 같은 집사들은 오늘날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집사들이다. 그들은 이전과 같이 동일하게 세상으로부터 칭찬의 대상이 되고 교회 안에서도 존경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불신자들에게까지 욕을 먹는 집사는 교회의 집사가 아니라 기독교 집사이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다.

 

첫날 저녁식사를 대접한 장로님이 큰 교회와 유명한 목사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성경에 교회의 조건은 주님이 계시는 것이며 주님은 사람이 많은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사는 성도 두 명만 있어도 그들 중에 있는 것이 교회라는 것을 말하면서 유명한 목사들에 대하여는 주님이 유명해져야지 왜 사람이 유명해 느냐고 하며 바울이 말한 교회 안에서 주님 안에서 유명한자는 세상에서 무명한 것을 말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9)

 

5일 동안 태백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교회 안에 주의 이름으로 모인 두세 사람 속에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주의 이름은 통치자의 이름인 것과 나를 다스려 주시는 주님의 전적인 통치를 받아 사는 사람 두 명만 있어도 그 모임에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 앞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이 함께하실 생활을 사는 두 사람이 각자에게 없는 것을 아파하면서 울고 통곡을 하는 은혜를 주님이 모든 교인에게 부어 주셨다. 그리고 이제 내가 주의 이름으로 다스림을 받고 살아서 나처럼 온전한 통치를 받는 사람 한사람이라도 붙여 달라고 그래서 속회에 주님이 항상 계시고 교회에 항상 계시는 모임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르짖는 은혜를 받았다.

 

집회 중에 어느 남자 권사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장로님 얼마나 외로우세요?”

“······”

이런 시대에 이와 같은 말씀을 전하는 것은 너무나 외로운 일입니다.”

“······”

 

그러면서 나는 아주 오래전에 제직훈련 마지막 시간에 어떤 연세 드신 장로님으로 보이는 분이 강단에 올라와서 엎드려서 나의 발을 붙잡고 앞길이 너무나 험해요, 이 길을 어떻게 가요?”하시면서 울던 일도 생각이 났다.

 

그 권사님은 마지막 날 나를 배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로님 어렵고 힘들어도 흔들리지 마시고 이 길을 계속가세요.”

“······”

이 시대는 장로님 같은 영적인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

오늘날 교회 안에 지도자는 거의 없고 지배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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