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전도와 종교전도

 

교회는 그동안 사도행전 1장 8절의 권능을 오해하고 그렇게 교인들에게 가르쳐 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교회성장주의가 낳은 부작용이요 오해이며 이는 하나님앞에 중차대한 실수가 아닐수가 없다.

 

(행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 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말씀을 가지고 성령받고 권능을 받아 전도하자라는 표어로 어리석은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무지몽매함의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다.

 

이말씀은 전도의 말씀이라기 보다는 하나님나라의 말씀이다.

하나님나라가 없으면 전도도 없다.

사실 복음전도라는 것도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이다.

한사람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경험하지 않으면 복음전도를 할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나라의 생활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의 권능으로 임하신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지상명령인 전도를 교인들을 많이 모으고 교회를 크게 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을 시켜 왔다.

그러나 전도는 방법이 아니다. 수단도 아니다 전도는 지상명령인 것이다. 전도는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할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인도에서 목회자 훈련을 하면서 잔도를 하자고 했더니 현지 목사님들이 밖으로 전도를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년전에 일어났던 힌두교인들이 교회를 불태우고 교인들을 죽였던 폭동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그와같은 생각이 잘못된 근본적인 이유를 가르쳐 주셨다. 그이유는 전도를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음전도는 포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를 전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 데리고 나오는 것은 복음전도가 아니다. 말그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인 것이다. 교회는 전도를 종교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되고 복음적으로 접근을 해야한다. 종교적인 접근은 타종교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촉발하고 막연히 무턱대고 교회를 대적하는 무리들을 선동시키는 어리석은 짓이요 악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어리석은 목사들이 교인들을 데리고 절에가서 땅밟기를 한다고 하여 남의 종교를 모독하고 불교신자들을 쓸데없이 자극하고 있는 일이나 단기선교라는 미명아래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어 죽게 만들고 온세상의 불신자들에게 비방을 받는 교회로 전락을 시킬뿐 아니라 그것을 순교를 했다고 어거지를 쓰는 악한 일들은 종교적인 기독교 그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며 그러므로 주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되는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것 같다. 어떤 어리석은 선교사들과 같이 모슬렘을 개종시키는 것이 선교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와같은 모슬렘 국가에서 어렵게 선교를 하는 자기들을 좀 알아 주었으면 하는 몸짓들은 참으로 우리를 슬프게하고 아프게까지 하는 대목이 아닐수가 없다. 힌두교나 또는 미신이 가득한 나라들에서 어렵게 선교를 하는 자기들의 고통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위로를 받고자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참으로 영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양식이 있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아프게한다.

 

어떤이들은 전도한다고 하면서 팝콘을 나누어 주고 사탕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이쑤시개나 휴지등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그것은 복음전도가 아니다. 세상사람들이 교회에 악한 감정을 가지고 대적을 하니까 그들중에 환심을 사려고 그런 행각을 하는지는 모르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그리그도의 복음을 능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탕이나 휴지의 도움을 받을정도로 그렇게 초라하거나 힘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가 그와같은 것들로 불신자들의 환심을 사야할정도로 교회가 무능하고 초라한 것이며 그것을 쓰는 자들의 믿음이 초라한 것이다.

 

왜 그와같은 전도가 아닌 포교를 하며 종교적인 접근을 부단히 하고 있는가? 그것은 복음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복음은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스도의 복음도 알고 가르칠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예수를 믿고 내가 성령을 받아 성령하나님이 나를 다스려주시고 나를 고쳐 주시고 변화시켜 주신 내 복음이 없기 때문에 복음적인 접근을 하는 그리스도의 증인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같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헛된 일을 되풀이 하는 창백한 모습으로 열매없는 전도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전도 성령의 권능이 나타날 수 없는 프로그램에 한정되는 일을 할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적인 접근으로 전도를 하여야한다.

복음적인 접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복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복음이 무엇인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다.

내가 예수를 믿어 성령이 내안에 거하심으로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통치해주시는 하나님나라의 생활을 사는 사람은 복음을 알뿐만 아니라 복음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처음부터 복음을 그렇게 전했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 변했습니다. 예수를 믿기전의 이십삼년과 예수를 믿고나서의 하루를 나는 절대로 바꿀수가 없습니다. 나와같이 예수를 믿읍시다.”이것이 예수를 믿은지 일년육개월이 지난 나에게서 나가는 복음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전도를 하지 않았다 나는 복음을 전했다. 요즈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전도는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했으며 그복음을 전하는 것은 나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를 설명하는 것이었고 나를 보게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그것을 가리켜하신 말씀이다.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전도를 할수 없다”

이것이 전도이다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복음을 머리로는 알지 몰라도 또한 복음을 믿고 구원받았을지는 몰라고 복음으로 변화된 거룩한 삶을 살지 아니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거룩함으로 살았어도 이제는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을 살지 않는 사람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복음으로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복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사람은 남에게 전할 복음이 없다. 그래서 종교적인 전도이상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믿음 예수 나를 변화시켜 주신 예수 지금 나와 함게 사시는 예수를 증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가 없고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사람이나 복음의 지식을 생명력없이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전도협회의 전도훈련을 받고 전도를 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가지 못했으며 곧 중단을 했다. 그이유는 변화되는 생활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집회에 참석을 해서 충격을 받고 그충격으로 인한 변화후에는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생활을 살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나라의 권능 곧 성령의 권능을 지속적으로 체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중단할수밖에 없는 큰 이유는 그것은 복음 전도가 아니라 행위전도요 프로그램전도이었기 때문이다. 은혜가 있을 때의 복음 전도가 은혜가 떨어지면 프로그램이나 행위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배워서 할수 있는 것이다. 행위로서의 전도는 믿음이 없어도 의지를 가지고 할수 있는 것이다. 또 훈련을 받을 때에 받은 은혜가 남아 있을 때에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복음전도를 하고 열매도 있고 역사도 일어났을수가 있다. 그러나 그와같은 은혜가 떠나가고 영적인 자극을 받아서 전도를 하던 행위가 끝이 났을 때에는 아무에게 아무말도 할수 없는 형편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이들은 사람들이 핍박을 한다고 전도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말하자면 싸구려 전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단에서 전도를 금한다고 그만둘수밖에 없는 능력도 권능도 없는 무능한 전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복음의 내용과 권능을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변화된 복음 나를 변화시킨 복음 지금도 그복음으로 살고 있다면 복음전도는 그만둘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교회에 나오라는 것처럼 비추어져서 반발하는 것을 겪은 일이 많았다. 불교신자나 중이나 또 다른 이교도들이 자기들을 개종시키려한다는 의심을 가지고 반발을 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내가 변화되었다는 복음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복음이었으며 그들이 복음의 진수를 듣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곧 오해를 풀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일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교회나오라면 욕을 할 사람도 “내가 변화되었다고 나를 변화시켜주신 예수를 알아보자고 할 때에 반발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오해했을 때에 문제이지 복음전도자의 중심과 생활이 오픈이 되고 변화된 증거가 보여지면 한결같이 그들은 부러워하고 믿고싶어 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한사람도 예외없이 변화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를 말씀을 하신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이까라고 질문을 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을 받음으로 임하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나를 통치해주시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역사하는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세계를 다스려 주시고 나의 인격을 다스리시고 고쳐 주심으로 죄에 길들여졌던 인격이 거룩한 인격으로 변화되는 일이 일어난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말씀으로 나를 하나씩 하나씩 뜯어 고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성령의 권능이 임하는 것이다. 병을고치는 능력이나 무슨 기적을 행하는 능력같은 것들이 오히려 시시해지는 것은 나의 내면의 세계가 변화되는 성령의 권능을 맛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같이 나를 변화시켜주시는 하나님나라의 권능을 맛본 사람은 하나님나라의 생활을 사는 사람은 이와같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변화된 것을 태어나서 그런 변화를 한번도 맛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참으로 짜릿하고 전율을 느낄만한 신비한 일이다.

 

이권능을 경험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도 예수의 증인 곧 예수를 보여줄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유다에서나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말이 안통하는 땅 끝에 가서도 예수를 증거하고 보여줄수 있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복음전도인 것이다. 이와같은 전도는 불신자들도 좋아하고 환영하는 전도이다. 문제는 자기들도 변화되지 않고 전도는 해서 교인들을 모으려고하는 무리수를 두니까 세상죄인들이 반발을 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보다는 멀리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행하고 있는 교회가 되고 만 것이다.

 

알고 있는가?

복음전도는 금지할 법이 없는 것이다.

세상 어느나라를 가서도 내가 변화된 복음을 전하는데에 방해를 받아 본적이 없다.

전도를 국법으로 금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에가서도 모슬렘마을에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 그들중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사우디왕족도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평강의 복음을 듣고 나도 그평화가 필요하다고 내가정도 그평화가 필요하다고 예수를 믿겠다고 하는 일도 경험을 했다.

하나님아버지가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으시는 복음을 누가 금하겠는가?

선교는 금하지만 종교적인 전도는 방해를 받고 저항을 받아도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바로 전한다면 그길고 그것을 사랑으로 받는다면 하나님아버지의 사랑도 거스릴 죄인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금지할법이 없는 것과 같이 성령의 열매로서의 전도도 금지할 법이 없다.

교단법으로도 금지할수 없는 것이 복음전도이다.

세상의 법으로도 금지할 법이 없는 것이 복음전도이다.

공산주의 국가나 모슬렘 국가에서 전도를 못하게 국법으로 금하여 놓았으나 복음은 그와같은 것들을 장애로 여기지를 않는다. 인도에서나 네팔에서 힌두교인들이 교회를 불태우고 교인들을 죽이기도 하지만 복음은 죽일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훈련을 받고 전도를 했었지만 그들은 전도의 외형만을 본따서 방법으로 전도를 하다가 중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이유는 주님이 줄기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가지가 되는 지속적인 연합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복음의 생활을 사는데에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듣고 본것에서 지나쳐가서 악한 전도를 한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어떤이들은 협회를 조직적으로 이용해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 수를 쓰다가 버림을 받은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진실하게 전도를 했지만 기운이 다해서 조용히 있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전도를 하느냐 아니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의 권능으로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나라의 생활을 살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다시말해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살고 체험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오늘 이권능을 체험하는 사람은 오늘 나를 통해서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수 있는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전도인 것이다.

종교적인 전도가 아니라 교인을 얻기 위한 바리새인의 전도가 아니라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서 하나님나라의 삶을 사는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전도가 다시 이세상에 살아나는것이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이요 종교는 있지만 교회도 있고 예배당도 있고 일도 하지만 교회안에 있는 한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킨 복음을 잃어버린가운데 종말을 향하여 가는 온세상의 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주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전도의 불길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아멘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