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와 함께 오는 싼타를 그리며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축복의 성탄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은 오래전에 훈련을 받았던 어느 목사가 1224일에 보낸 성탄절 인사 문자의 내용이다.

이런 사람이 목사인가?”하는 의구심이 드는 내용이 아닐 수가 없다.

아무리 목사가 타락을 해도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단은 크리스마스가 주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니라고 교회를 공격을 하지만 그들이 잘못된 것은 타락한 교회조차도 크리스마스를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락한 교회가 잘못된 것은 그들의 믿음과 신앙고백이 있는 신조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즐긴 것이 결국은 사업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이용하도록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사회적인 타락과 여러 가지 범죄가 기승을 하는 날로 그날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노아의 시대와 같이 이 땅을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한 땅으로 만들어 버린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것은 롯의 때에 멸망을 당한 소돔과 같은 패역한 죄악이 가득한 날로 변질이 된 것이다.

 

그와 같은 악함의 중심에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첫째 짐승, 곧 카톨릭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며, 새끼양 같은 두 뿔이 있는 둘째 짐승은 개신교 교권인데 그가  첫째 짐승과 같이 교권을 행하고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는 결과로 오늘날 타락하고 패역한  크리스마스의 모든 악한 현상을 낳게 된 것이다. 

 

우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믿음이고 무엇이 믿음이 아닌지를 알고 분별해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라는 말조차도 믿는 성도는 그 입에 올리기를 거부해야 한다.

‘크리스’그리스도’를 말하는 단어이지만  마스’는  미사’, 곧 천주교식 제사를 말하는 단어이다.

이 두 단어가 합성하여 크리스마스’, 그리스도의 미사’가 된 것이다.

   

미사는 제사를 말하는데 그러므로 천주교에서 드리는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제사를 드리시고 이 땅의 모든 제사를 끝내셨다는 믿음을 부인하는 불신과 대적의 표상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적그리스도라 칭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온전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0:12)

 

그러므로 카톨릭이 많은 성도들을 죽인 이유가 만인 제사장직을 믿는 것 때문이라면 오늘날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생각 없이 말하는 성도들은-그가 만일 진실한 성도라면-카톨릭에게 죽임을 당한 오천만 명이 넘는 순교자들의 순교를 더럽히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제사를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의 자리에 동참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3세기의 교부 오리겐은 예수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이교도적이라고 반대를 하였다. 그 이전에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도 그와 같은 것을 악한 것이라 하여 배척하였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천주교 교황 율리우스 1(337-352) 때에 제정이 되었다. 히포의 어거스틴이 기록한 삼위일체론에서 예수 가 325일에 수태되었다는 주장을 한 것이 그로부터 9개월 후인 1225일을 성탄절로 제정을 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말틴 루터가 처음으로 시작을 했으며 산타클로스는 뮐러의 주교인 니콜라스가 만들었고 루돌프 사슴은 광고업자들이 만들은 작품이다.

 

1225일을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이라고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날은 로마의 동짓날이다. 낮이 길어지는 태양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는 뜻에서 만들은 고대로부터 유래된 태양신 제사의 날이었다.

 

그래서 밀란의 주교 암부로우시스는 이날을 가리켜 우리 주 예수가 탄생한 이 성스러운 날을 태양의 탄생일이라고 부르자라는 악한 말을 했다.(종교학대사전. 크리스마스) 이는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과 그 창조를 하신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같이 취급하는 저속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때에는 겨울이고 연중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우기이기 때문에 양들을 밖에 두고 밤을 새는 풍경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뉴턴의 천문학적인 계산에 의하면 예수님은 하지 즈음에 태어나셨다.

 

우리는 카톨릭을 신뢰할 수 없다.

그들이 만든 것은 더더욱 그렇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주님 자신도 지키지 않은 생일을 왜 이렇게들 난리를 치고 즐기는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주님의 제자들인 사도들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주님의 생일을 세상과 그리고 세상과 다를 바 없는 교회들이 왜 지키며 즐기는 지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믿는 우리는 성탄절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 되시는 주 예수를 믿는다.

하나님이 저로 말미암아 죄인들로 구원을 얻게 하신 그 예수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9)

 

이와 같은 현실을 볼 때에

 

오늘날 요한계시록과 같이 바벨론교회가 처처에 가득한 이 세상에서 순수한 믿음을 지키는 예루살렘교회가 나타나야 할 때이다.

 

오늘날 교회는 거의 모두가 다 바벨론 교회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바벨론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가 아니다.

 

바벨론 교회의 증거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신부단장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바벨론 교회는 어린양의 신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벨론 교회는 신랑 되신 어린양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에 신경을 쓴다.

 

세속으로 더러워진 음녀, 곧 창녀이기 때문이다.

창녀는 신부화장이 없이 남자를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바벨론 교회의 정체이다.

 

바벨론 교회는 전도를 싫어하고 방해한다.

바벨론 교회는 주님이 계산하실 열매에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은 전하지 않고 배나 지옥자식이나 되는 교인들을 만드는 바리새인의 전도만 한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가짜들을 거두는 회원모집만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론 교회는 회개를 싫어한다.

바벨론 교회는 죄를 씻어 정결케 하는 신부화장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교회는 날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린다.

 

그리고 때마다 거룩함으로 신부단장을 하면서 주님을 간절히 기다린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 3:6-14)

 

오늘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필요한 것은 성탄절을 지키고 즐기는 것이 아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교회로 평강가운데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님을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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