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을 시작하면서

 

요한 계시록은 거짓선지자들이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책중에 하나이다.

왜냐하면 교회를 속이기가 쉽고 교인들에게 겁을 주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요한 계시록은 교회가 가장 무관심하고 잘 모르고 있는 책중에 하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요한 계시록에 무지하고 마귀는 그것을 가지고 거짓된자들을 통하여 교회를 공격하고 교인들을 미혹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에 성경속의 많은 책들을 다루어 강해를 하였지만 요한 계시록은 가르친 적이 없었다. 몰론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것들을 가르친 적은 있었다. 이를테면 요한 계시록의 일곱교회는 여러번 가르쳤다. 그러나 4장부터는 거의 가르치지 않은 것은 나도 주님이 열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주님이 가르치신 것을 가지고 베껴서 할려면 벌써할수도 있었겠지만 주님이 나에게 주시고 가르치라 하실 때까지 기다려 온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마지막주일인 11월 27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호텔방에서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주님이 요한계시록 12장을 파노라마처럼 열어서 보여주셨다. 그때에 1260일의 비밀과 마귀와 싸워 이기는 교회와 영적인 성도들의 현실을 보여 주셨을 때에 그것을 들은 목사님들이 이는 이전에 어느 주석책에도 없는 신기한 말씀이라며 열광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이후로 13장도 14장도 주님이 확실하게 열어 주셨다. 한국에 돌아와서 12월에만 두차례에 걸쳐서 요한 계시록 12장과 13장 14장을 강해하였는데 많은 이들이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이후에 겨울행사중에 이전과는 달리 세미나에서 구정 사경회에서 심지어는 청소년집회까지 계시록 중심의 말씀을 주님이 주신대로 전하였는데 큰 깨달음과 이전에 볼수 없었던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주셨다.

 

오래전에 한 십년전 쯤에 서울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이다. 성남에서 어떤 두가정이 말씀을 듣겠다고 소문을 듣고 찾아 왔는데 교회를 찾기가 힘들어서 두시간가량을 헤메이다가 말씀을 다 전하고 기도를 할 때에 예배당에 들어와서 앉았다. 7,8명쯤되는 이들이 허탈한 마음으로 집회를 마치고 이렇게는 집으로 돌아갈수 없다하여 상담을 요청하여 자리를 같이하고 앉았다. 그중에 오십이 넘어보이는 한분 남자 집사님이 말문을 열었다.

 

“장로님 저는 어느교회 집사입니다. 제가 대전에서 예수를 믿고 처음 교회를 나가서 세례를 받고 집사직분을 받아 줄곧 찬양대를 했는데 단 한주일도 빠짐이 없이 주님의 십자가사랑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5년전에 성남으로 이사를 와서 교회를 다니면서 역시 찬양대를 하였는데 지난 5년동안 이교회에 와서 예배때에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예배를 드린적이 없고 눈물한방울 흘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너무 심령에 곤고하여서 아내와 함께 기도원을 갔습니다. 그런데 저희 담임목사님이 강사로 말씀을 전하였는데 그가 전하는 십자가의 복음 곧 회개의 복음에 말할수 없는 은혜를 받았고 눈물을 펑펑흘리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끝나자마자 목사님에게 달려가서 인사를 드리고 너무나 간절한 마음으로 목사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목사님 이런 말씀을 왜 교회에서는 안전하시나요? 라고 여쭈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집사님 교회에서는 이말씀을 전하면 장로들에게 쫓겨 납니다. 그래서 이말씀을 전하지 못하는 겁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그와 동행한 사람들도 다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그분들에게 무어라고 대답을 해주었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교회는 내가 직장에 들어갔을 때에 명동 건너편에 있던 오래된 성결교회였다.

 

이와같이 오늘날 교회는 잠자고 있다. 복음이 없는 교회는 사데교회 와같이 죽은 교회다. 강단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사라진지가 오래다. 이복음은 고린도교회가 설교를 잘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치우쳐 잘못되어 있을 때에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잘못을 책망하면서 자신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고 말할 때에 그복음이다. 이복음을 잃어버린 교회는 죽은 교회요 교회라고 할수 없다. 복음을 상실하고도 교회라는 이름과 건물아래 있는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요 성도들의 공동체라기 보다는 친 기독교적인 단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예산과 수입과 지출 그리고 영리를 염두에 두고 교회를 개척하고 먹고살기 위해서 목회를 하고 주님과 상관이 없이 많은 사업을 돈을 가지고 벌이는 일만을 한다면 그것은 교회적인 유전자를 가진 것이 아니고 세상의 회사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시작된 세상단체와 다를바가 없다. 그와같이 복음을 상실한 교회는 차라리 교회가 아니라 상회(商會)나 회사(會社)라는 간판을 달은 것과 내용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교회는 예배당안에 들어오면 예수만 말하여 지고 예수만 들려지고 예수만 생각이 나는 것이 교회인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상실한 교회는 계시록의 일곱교회중 다섯교회와 같이 지금도 주님의 책망을 받고 있는 교회이다. 요한이 밧모섬에 있을 때에 뒤에서 나는 큰 나팔소리를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주님은 큰 나팔소리로 교회의 타락함과 냉랭하여진 사랑을 책망하시는데도 들을귀가 없기 때문에 듣지 못하고 다른 것들만 듣는 교회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강단에서 세상이야기를 하며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들이나 영적이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예수도 없는 간증을 듣고 믿음없는 연예인이라도 불러서 교회에 사람들을 모으고자하는 세상사람들이 개업이벤트를 하듯이 그와같은일들을 벌여 온지가 아주 오랫동안 그런 일들을 하였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은 교회성장으로 그푯대가 바뀌었고 하나님나라의 빈자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혈안이 되었으나 그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잘못된 거짓선지자들을 불러다가 교인들의 헌금을 강탈하는 일을 하여 예배당을 지었으나 교회안의 심령들은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가을나무와 같이 은혜가 마를때로 마르고 교인들을 인간의 꾀와 방법으로 교회에 붙잡아 두려고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며 온갖 방법을을 다 동원하고 있으나 전작 교회안의 심령들은 마를 때로 말라서 다시 첫랑을 회복할 소망조차도 끊어 진지가 오래된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유다가 그와같은 말을 이렇게 일어주고 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 1:11-13)

 

삼십년전의 일이다. 방배동에 있는 고신측교회에서 부흥회를 할 때에 말씀을 들은 교인들은 물론이요 담임목사님이 큰 충격을 받고 “집사님은 우리보다 더 골동품이네요”라고 말을 했다. 고신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말일 게다. 그리고 그는 강단에서 교인들에게 “저집사님이 말씀하는 것이 이전에 우리 고신측이 가지고 있던것인데 이제는 저집사님에게로 다 옮겨갔습니다.”라고 말을 한 것이 생각이 난다. 십여년전에 안양의 어느 성결교회에서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다 전하고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목사님을 대면하여 앉았을 때에 그목사님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감리교 장로의 입에서 이와같은 목음이 나온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라고 했다. 그는 자기교단이 복음적으로 감리교단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와같은 말을 한 것은 이미 자신에게나 자신의 교회안에 이 복음이 사라진지가 오래 되었다는 표현인 것이다. 이와같이 교회안에 복음이 사라진지가 아주 오래된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인 것이다. 십여년전에 광명에 있는 합동측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때에 말씀을 다 전하고 나면 나이드신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와서 “이런 복음을 요즘 어디서 듣습니까? 참 귀한 복음입니다.”라고 말을 꺼내서는 이십분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매시간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다. 그후로 그분은 몇 달이 멀다하고 이복음을 교인들에게 들려달라고 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분이 어느날 식사를 하면서 교인들의 영적인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지 못하면 엘리제사장 꼴이 난다고 내가 말을 하자 자포자기식으로 하는 말이 “모르지요 뭘 지금 어느장로가 집사가 어디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반문을 한적도 있었다. 담임목사가 이렇게 복음에 눈을 뜨고 있었으나 교인들은 그렇지 않으며 그들의 생활은 더더욱 복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말씀까지도 사라지고 있다. 강단에서 세상의 말을 하고 텔레비전 드라마가 예화로 등장을 하고 때로는 농담과 희롱의 말도 강단에서 거침없이 쏟아 낸다. 영혼의 양식으로서의 말씀이 아니라 귀를 즐겁게하는 말재주와 지성을 만족시키는 지적인 설교를 교인들이 더 선호를 하고 있으며 영혼의 양식은 먹지 못하고 말씀으로 사는 영적인 실재가 있는 말씀은 듣기가 어려운 현실이 되어 버렸다.

 

계시록의 주님은 지금도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금촛대인 교회사이를 오가시면서 교회의 형편을 살피시고 계신다. 당신보다도 당신의 교회의 형편을 더 잘아신다. 아주 미세한 것까지도 모르시는 것이 없다. 그의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면서 교회의 형편을 꿰뚫어 보시고 목사와 장로 교인들의 마음을 통찰하시는 주님이 그들의 생활 교회생활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정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다 보시고 알고 계신다. 그입술의 말중에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 어떤 무익한 말을 할지라도 그말로 인하여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고 했다.

 

마태복음에는 팔복이 나오지만 요한계시록에는 칠복이 나온다. 팔복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만 계시록의 칠복은 교회가 다시오시는 주님을 어떻게 잘 만나고 뵈옵기 위해서 어떤 복을 받아야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 계시록에 대하여 무지하며 또한 오해하고 잘못 풀이된 주석이나 지식을 신봉하는 것도 요한과 같이 주님이 장차 될일을 계시할만한 영적인 상태에 있지 못한 사람들이 계시록을 풀고 주석을 달고 가르치고 강해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을 듣고 배우는 사람도 밧모섬의 요한과 같이 계시받을만한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소아시아에 다른 교회들도 있었으나 주님은 그의 편지를 받을만한 교회는 일곱교회밖에는 없다고 생각을 하신 것이 틀림이 없다. 라오디게아교회에서 약간동쪽에 골로새교회가 있었으나 주님은 골로새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으셨다. 계시의 말씀에 있어서 계시의 대상은 주님의 전적인 주권아래 있는 것이며 그의 전권적인 역사아래 열어보여 주시는 것이 계시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주안에 거하지 않는 어떤이들이 억지로 성경을 풀고 가르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것이며 교회를 해치고 자칫 주님을 대항하는 자리에 자신을 던져 놓을 수 있다는 현실앞에 삼가 두려워할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예수전도협회는 그동안 전도를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오해를 했을수 있지만 전도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어느날 밤에 주님은 꿈가운데서 두사람의 목사를 떠올려 주시면서 “저들이 협회에 와서 전도를 배운 것이냐? 아니다 저들이 내 앞에서 부르심을 받은 대로 살지 못하고 잘못산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목회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을 깨닫고 울면서 내가 저들의 목회인생을 바꾸어 놓고 저들의 생활과 인격이 고쳐진 것이다. 그래서 비참한 개척교회의 현실에서 벗어나 목사뿐만 아니라 온교회가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교인이 늘고 교회가 부흥이 되어 교회도 짓고 또 한사람은 상가를 통째로 사서 교회를 옮기고 남들이 부러운 자리에 들어가자 전도도 그만두고 매너리즘에 빠져서 노회다 시찰회다 종교적인 일에 쏠려 다니고 이제는 영적으로 다시 비참한 가운데 들어가지 않았느냐?”라고 주님이 물으셨다. 그중에 한사람은 일전에 협회의 월요성경학교에 와서 말씀을 듣고는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고 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복음으로 먹고 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주님이 나에게 영감을 주셨던 “교회안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도 생활비를 받아가는 나쁜 놈들이 있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는 그말씀에 크게 찔림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음으로 원망하기를 “아 장로님이 또 교회를 까는구나 지금 교회가 얼마나 어렵고 개척교회목사들이 얼마나 힘든데 저렇게 말씀하시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그시간에 마지막으로 전한 요셉이 받은 세가지 사랑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는 “이시대에 어디가서 이런 말씀을 들을수 있겠습니까?”라고 나에게 반문을 했다. 그는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생활비를 타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크게 찔림을 받았던 것이다. 내가 그분에게 말하기를 “목사님 한국교회의 타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예수전도협회가 이땅에 나오기전부터 타락을 한겁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협회를 세우고 쓰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와같이 자기는 잘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목회를 하고 주의 일을 하고 여러 가지일에 분주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탈선한 열차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이제 주님은 오늘날의 교회들의 이와같은 탈선을 바로 잡기를 원하신다. 교회가 천국의 레일위에 정확하게 다시 올려지고 기쁨의 기적을 울리면서 다시 천국으로 질주하기를 원하신다. 이천년전에 요한을 통해 타락해가는 교회를 일깨우신 주님은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각교회의 사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계신다. 귀있는자만이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수 있고 회개하여 처음사랑을 가지고 잃었던 것을 다시 찾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으며 다시오시는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단들이 거짓선지자들이 요한 계시록을 가지고 교회를 공격하고 이리떼가 되어 교회안의 양떼를 아끼지 아니한 아픔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주의 재림을 표방한 무리들과 신천지인가 하는 이단 그리고 베리칩이니 바코드니하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교인들을 후려도 어느 목사가 그것을 지켜주지 못하는 영적인 암흑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는 현실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다.

 

그동안에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말씀으로 준비를 시키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앞에서 사는 생활을 가르치시고 1260일의 양육을 받아야함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하늘에 거하는 영적인 사람들 영적인 전투력을 갖춘 십자가 군병들로 준비를 시켜 주셨다. 이제 그의 보좌앞에서 사는 생활을 사모하고 그와같은 생활이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계시록의 말씀을 풀어 주시는 것이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필요가 된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때가 매우 가까워진 이때에 깨어 있지 못하고 미련한 다섯처녀와 같이 되지말고 주의 일군이나 한달란트 받은 사람의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말씀을 받아야 한다.

 

이말씀은 주석을 베껴서 가르치는 말씀이 아니다. 이말씀은 머리로 풀고 억지로 풀은 말씀이 아니다. 억지로 짜깁기를 한 말씀도 아니다. 성경 육십육권의 말씀으로 계시록을 풀고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푸는 말씀이다. 교리나 신학의 선을 넘어가지 않으면서도 말씀으로 영감있게 풀어나가는 말씀이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옛것만을 돌리고 돌려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이나 마태복음 로마서와 다른 성경을 풀 때와 같이 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내오는 것과 같이 주석에 없는 말씀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난해구절이라 일컫는 말씀들이 없이 우리안에 계신 성령께서 다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오늘의 영적인 현실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말씀이다. 지적인 욕구를 단순히 채워주는 말씀이 아닌 것이다.

 

옛날에 에베소서 사경회에서 말씀을 들은 목사님은 사투리로 “어메 그냥 확 죽여버리는 말씀이고마잉”이라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는데 벌써부터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들은 목사님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경이적이다. 어떤 목사님은 “4장의 말씀이 그렇게 풀릴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어떤 분은 요한계시록으로 논문을 썼는데 자기가 알고 있었던 부분이 상당수가 쓸데 없어졌다고 탄식을 하기도 하였다.

 

아무쪼록 주님이 그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깨우시고 이나라의 교회들을 살리시고 강단에 십자가의 복음과 능력있고 살아 역사하는 죄우에 날선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됨으로 세상을 향한 도덕성은 물론이요 그의 몸된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세상보다 우위에 있어 교회를 대적하고 욕하는 이들로 그의 입들을 막는 거룩한 부흥이 다시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멘.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