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이 쓰신 예수와 스토커는 우리 교회를 말하는 겁니다.”

교회 안에 아무것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이 거의 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일은 목사님이 신앙고백이 없습니다.”

우리 목사님이 스토커입니다.”

우리 교회가 바벨론 교회입니다.”

시골 교회에 부임해 와서 십이억을 들여서 교회를 신축했는데 자기 공적으로 여기고 주님은 없습니다.”

이 교회를 떠나야 합니까?

 

이상은 오래전에 내가 쓴, 전도훈련을 받고 전도를 하면서 교회가 부흥된 시골교회에 일어났던 기적이라는 글의 주인공인 집사님의 말이다. 얼마 전에는 교회를 지을 때에 와서 교인들의 등을 쳐서 헌금을 강요한 목사를 다시 데려다가 부흥회를 했는데 이번에는 별미를 하나님께 드리자며 교인들을 속여서 일천칠백만원이나 거두어 상당한 사례를 받아 챙기기도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장로님 교인들이 돈을 내는 것이 더 이상해요

미신이래서 그래

?”

, 그건 미신적인 심리를 이용하니까 혹시 내지 않으면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내는 거지.”

, 맞아요, 무당 수법하고 똑같습니다.”

 

이전에 동네에서 굿하던 집과 교회로만 그 장소가 바뀌었을 뿐이지 무당 같은 수법으로 교인들을 무섭게 해서 돈을 뜯어내는 수법은 동일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가장된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기가 쉽기 때문에 주님이 특별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저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 앞에 나오지만 그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우리가 천년 이천년 두고 속아 넘어가기 쉬운 것이 주의 종으로 자기를 꾸민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게 넘어 갈 것을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목사로 자신의 거짓된 모습을 가리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장로로 자기의 거짓된 것을 가리우려는 사람들도 이 시대에 많이 있음을 바깥 불신자들에게 물어보아도 알만한 것이 이세상이다.

 

어떤 사람은 집사요, 교인이라고 해도 그 속에는 믿음이 없고 더러운 세상의 구정물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자기의 정체를 세상에서 절대로 숨기지 못한다.

가정에서 식구들이 그의 거짓됨을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자식들이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고통을 잊기 위해 자식들이 술에 빠지고 죄에 빠지고 세상에 빠져 들어간다.

이웃 사람들도 그의 거짓됨을 다 알고 있다. 숨길 수가 없다.

 

이번에 목회자훈련에 처음 간증을 한 어느 목사님은 대기업을 다니다가 목사가 되기 전에 기도원에서 잠깐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땅의 내노라하는 부흥사들이 한사람도 빠짐이 없이 다 그 기도원에 왔었는데 그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들과 그들의 인격에 큰 실망을 당하고 하도 그런 일을 당하다보니 나중에는 아픈 감각조차도 없어지고 그저 그러려니 하는 생각을 하고 나만 속지 않으면 되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그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리고 나서 그들을 따르라고 했다.

바울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복음은 말이 아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니다.

어떤 아류들에게와 같이 복음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복음은 생명이고 순종하는 인격이고 순종하는 생활이다.

 

그래서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자라야 들어 간다고 했다. 교회 안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나는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하늘에 계신 주님의 아버지, 곧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대로 행함으로 일상생활을 사는 사람들이다.

 

말로는 속일 수 있다.

지식으로도 속일 수 있다.

직분으로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생활은 속일 수 없다.

더군다나 생활의 열매는 더 속일 수가 없다.

 

우리는 유명하다는 사람들에게 많이 속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생활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명세로 자기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현실은 앞에서 말한 집사님의 말과 같이 유명하다는 사람들에게 없는 것은 신앙고백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다녔던 교회 중에서도 담임 목사가 사람들에게 유명한 자였지만, 그들에게는 신앙고백이 없었다.

이는 어떻게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성령을 받은 과정의 간증이 없다는 말이다. 그냥 부흥회 때에 뜨거워지는 화끈한 불을 받았다고 했다. 그것은 그냥 어떤 감정적인 체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주님하고도 성령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복음을 듣고 회개한 유대인들이 어떠했는가? 그들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부르짖었을 때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2:38)

 

말씀을 듣고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받는다.

 

이 과정이 없는 사람은 가짜이다.

이 과정을 전인격적으로 거치지 않은 사람은 가짜이다.

회개가 없는 세례는 가짜이며 죄 사함이 없이 성령 받았다고 하는 것도 가짜이다.

 

어떤 이는 유명한 부흥사이었으니 그의 자식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를 온통 바벨론 교회로 만들어 버렸다. 바벨론의 가치관 곧 물질가치로 물들이고 교인들 위에 권력자로 행세하였다. 교회의 영원하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자리에 들어가서 자기가 교회를 임의로 주관하고 물질을 주관하는 자리에 들어갔다. 그는 때로는 전도를 돕는 것처럼 했으나 실상은 방해하기도 했고 때로는 전도를 방임하기도 했고 때로는 전도를 칭찬하다가도 뒤에서는 비방을 하기도 했다. 그는 교인들을 다스리면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교인들이었다. 그는 하나님과 교인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가진 가치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혼도 아니고 교회를 하는 것 그것도 교회를 크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전부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지상명령은 교회를 크게 하는 것이지 가난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안중에는 주님도 없고 교회를 크게 해서 자기의 이름을 내는 것이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큰 교회 목사들이 자기의 이름을 내는 가치관에 사로 잡혀 있는가? 생각해 보라!

 

남의 복을 빌어주던 부흥사들이 지금 비참한 말년을 보내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오천년 전에 시날 평야에 있었던 일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11:3,4)

 

오늘날 교회가 바벨론귀신을 끌어 들인지가 오래 되었다.

 

바벨론 귀신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세 가지 가치관이다.

 

1. 하늘꼭대기까지 높아지는 것이다. 그것은 교만이다.

2. 이름을 내는 것, 곧 사람이 유명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교만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3. 흩어짐을 면하자. 곧 모이고 또 모이고 모이는 것이다. 그것은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아니다. 모여서 뭉치고 조직하여 교만해지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다 교만해지는 것이다.

 

그들에게 교만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이고 힘을 모으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유명한 자들 중에 교만하지 않은 자가 있었는가를 생각하여보라.

 

제직훈련에 왔던 어느 목사님이 장로님 오늘날 교회는 다 바벨론 교회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분의 말과 같이 다 바벨론 교회라고 하면 무리가 있는 말일 것이다.

 

어느 시대에도 예외 없이 긍휼을 베푸셨던 하나님은 아직도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않은 칠 천인을 남겨두셨음을 알아야 한다.

 

어느 시대나 주님이 이제는 그만이라고 하시기 전에는 남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망각해서는 안 된다.

 

바벨론도 하나님에게는 필요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죄에 빠진 유대나라를 망하게 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아다가 바벨론으로 가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일백만 명이 넘게 잡혀갔는데 돌아올 때에는 사만이천삼백육십 명만 돌아 왔다.

 

어떤 사람이 돌아 왔는가?

 

바벨론에서도 물들지 않은 사람들이 돌아 온 것이다.

칠십년 동안 믿음의 정절을 지킨 사람들만 돌아 왔다.

조상들이 믿음으로 살던 고토를 사모하며 몽매에도 그리워하던 사람들만 돌아왔다.

비록 육신은 바벨론에서 고난가운데 살아도 믿음은 추호의 타협도 없는 사람들만 돌아왔다.

그러나 바벨론에 적응된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바벨론의 시대이다.

교회가 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다.

교회가 세상가치와 물질가치에 빠져 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교회가 아니다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가치가 지배하고 있는 교회와 교인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바벨론교회가 필요하다.

성도들이 그 안에서 물들지 않는 믿음으로 자기의 믿음이 참 믿음임을 증거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도들에게는 바벨론 교회의 현실이 아픔이요, 고통인 것이다.

 

그 옛날 바벨론 강변에 수금을 걸어 놓고 울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의 아픔을 알고 있는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가?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137:1-9)

진실한 성도는 바벨론의 노래도 부를 수 없고 시온의 노래도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이 필요한 것은 그중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환난으로 연단하시기 위함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멸망할 바벨론 교회를 떠나게 하시는 날이 온다.

믿음의 정절을 잘 지킨 자들로 탈출하게 하시는 날이 올 것이다.

 

아무나 떠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정결함과 거룩함의 인증을 받은 자들만 떠난다.

바벨론으로 연단을 받아 순수한 믿음이 회복된 자들만 떠나는 것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18:4)

 

너희는 바벨론에서 나와서 갈대아인을 피하고 즐거운 소리로 이를 선파하여 들리며 땅 끝까지 반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종 야곱을 구속하셨다 하라” (48:20)

 

지금은 그들이 돌아올 예루살렘 교회를 준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때가 찼다.

때가 무르익었다.

 

언젠가는 예루살렘교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과 이 시대에 바벨론 교회에서 순수한 믿음을 지킨 신실한 성도들이 이제는 우리의 눈이 서로 마주보고 기뻐할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들을지어다 너의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52: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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