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분별하자

 

천기는 분별하지 못해도 세대는 분별할 줄을 알아야 한다.

언제든지 세상은 눈이 멀어서 보지 못하고 죄의 길을 걸어 왔다.

 

지금도 이세상은 죄악의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지만 자각하는 이도 없고 책임을 질 이도 없으며 각각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서 달음질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치인들은 정치인들대로 경제인은 또 그들대로 학자는 학자대로 사회의 지도자급들은 또 그들대로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이 사는 것이 오늘의 냉엄한 현실이다.

 

어떤 이는 자식의 병역혜택의 애틋한 육정적인 사랑의 사슬을 끊지 못해서 대통령이 되고자하는 꿈을 이루지 못한 이가 있는가하면 어떤 이는 대통령이 되고도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여러 가지 의혹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다. 장관후보이거나 또는 어떤 공직을 맡기 위한 후보이거나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부동산투기부터 시작해서 자식의 병역문제나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서 편법을 저지른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 될 정도로 이 세대는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이고 악하고 썩은 세대가 되었다.

 

교회는 교회 나름대로 순수성을 상실하고 자식에게 목사직을 물려주는 세습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제법 친숙해졌으며 돈을 사랑하는 목사들과 자리다툼을 벌이기 위해서 막대한 선거비용을 쓰는 이들에게는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5-27)

 

교회를 크게 하고자 하는 욕심도 이제는 좌절의 상황에 이르렀다. ‘두날개’니 무엇이니 하면서 ‘비상하는 교회’라고 표어를 써 붙이고 그럴싸한 플래카드를 열심히 바꾸어 가며 내걸던 교회들이 이제는 쑥 들어간 모습을 보인다. “교회성장도 이제는 끝났습니다.”라는 자조 섞인 탄식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예수전도협회의 세미나 이후에 교회성장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전도를 도구와 방법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이들이 몇몇 교단에서 전도를 못하게 한다고 그에 굴복하여 핍박으로부터 피신도 할 겸해서 김포의 최아무개목사를 따라가 돈만 버리고 바람만 잡은 것 같은 허무함을 경험을 하고 돌이킨 일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열린교회도 해보고 빈야드도 해보고 교인들을 쓰러뜨리는 일도 해보고 그래서 교회를 크게 하고 교회를 크게 하기 위해서는 예배당도 그럴싸하게 건축을 해야 하고 건축을 새로 할 여건이 못 되면 멀쩡한 교회를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빚을 잔뜩 져서 결국 교인들과의 갈등 때문에 교회를 나가는 수없이 많은 목사들....

이것을 해도 안 되고 저것을 해도 안 되니 교인들로부터 영적인 지도력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되자 - 물론 그 이전에도 지도력이 의심을 받은 것까지 포함해서 - 강력한 율법적인 책망으로 교인들을 협박하고 위협함으로 교인들을 두렵게하여 말을 듣게 하기 위한 율법주의의 달콤함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 마귀에 의해서 정해진 수순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ㅎ’ 기도원의 ‘ㅇ’ 목사니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진주의 ‘ㅈ’ 목사 등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들에게 교인들을 보내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오히려 무서워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순종하게 하는 복음이 아닌 그야말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게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온 것 그리고 지금도 그런 일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어두운 현실이다.

 

신천지니 뭐니 하는 이단이 조직적으로 교회 안에 들어와서 복음이 없는 교회와 목사를 유린해도 그들을 당할 힘이 없어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예배당이 온갖 이단들에게 넘어가고 멀쩡한 교회당에 그들의 간판이 내걸리는 것을 보는 일은 이제는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한국교회는 붕괴직전의 상태에 있다하여도 과언이 아닌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와 같은 이단들에 대한 대책으로 ‘요한계시록’을 가르치겠다고 열심을 내면서 오히려 교인들로 재림을 두려워하게 하고 은신처를 준비하게 하고 비상식량을 준비하게 하는 육신적인 준비를 영적인 것으로 혼란케 하는 어리석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

 

혹자는 이단에 대한 대책으로 재림을 두렵게 하는 “어둡고 두려운 종말론”대신에 “밝은 종말론”으로 교인들이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게 해야 된다고 주장을 하지만 사실은 기존교회안의 계시록강해나 가르침이 교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데에 앞장서 왔다는 사실은 애써 잊으려고하고 있는 애처러운 몸부림중의 하나일뿐이다. 이와같은 사람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교회가 주님을 밝은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느냐의 문제가 선행적으로 해결이 되어야한다는 사실을 빼먹고 있다.

다시 오실 신랑 되신 주님을 준비하는 것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으로 살지 않는 교회, 죄를 이기는 승리생활이 없는 교회, 잃어버린 영혼에게 복음을 전할 줄 모르는 교회, “너희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드리는 순종하는 생활이 없이 주님을 밝은 마음으로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전도를 안 하는 교회가 주님을 기다릴 수 있을까?

전도의 열매가 없는 교회가 주님을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

주님의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되지 않은 성도가 주님을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

날마다 말씀에 순종하는 인격으로 살지 않는 성도가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

 

지금 길에 나가보라!

누가 복음전도를 하고 있는가?

 

교인하나 모으기 위하여 산으로 바다로 다녔던 바리새인들과 같이 커피와 아이스크림과 강냉이를 나누어 주면서 주의 복음을 흐리는 장삿속으로 전도라고 하는 이들밖에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자들이 어디에 있는가?

 

복음전도가 아니라 ‘강냉이 전도’를 하고 있다.

복음전도가 아니라 ‘이쑤시개전도’를 한다.

복음전도가 아니라 ‘커피전도’를 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수준이다.

 

한때 복음으로 회개하는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고 길에 나가서 전도를 하면서 사법계에서도 범죄율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통계조차도 만들어 내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주신 은혜이었다.

전세계 어느나라도 받지 못한 은혜를 주님이 이나라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셨던 특권이었다.

 

그렇게 은혜를 받아 회개하고 정결한 영혼으로 깨끗함을 받은 영혼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사랑하면서 울면서 복음을 전하던 전도자들을 교권으로 다 죽여 놓고 세상이 아닌 교회가 전도자들을 이단이라 단죄하지는 못하면서 무식한자들에게 이단인듯이 오해할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아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고 그래서 복음전도를 못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입을 막아 놓고 세상이 아닌 세속화된 교회가 전도를 훼방하고, 타락한 교권이 전도자들의 발의 힘줄을 따 끊어 놓아 이제는 전철에서 부랑자나 귀신들린 자들이나 사회의 도덕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사회의 비난을 받게 하는 전도를 하는 정도로 한국교회를 타락시킨 장본인들은 지금 어디서 숨을 쉬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일일이 다 거론할 필요는 없지만 반사회적인 악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엽기적인 살인사건들과 '묻지마 살인'과 불특정 다수를 노린 칼부림등 강도 강간 살인 등 흉악범들이 판을 치고 있는 사회가 되었다. 이혼율은 OECD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청소년들의 범죄와 가정에서의 갈등은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학교도 가정도 나라도 청소년들의 비행에 대하여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현상을 교회도 손을 쓸 수가 없는 것은 교회자체가 타락하고 세속화되어 저들과 한가지로 치우쳐 다 무익하게 되고 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목사가 횡령을 하고 고소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어떤 이들은 교회를 대적하다 못해 척결하려는 악의까지도 가지는 것을 본다. 목사를 '먹사'라고 하고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기도 하며 교회를 향한 악한 감정을 숨기려하지 않고 있다.

 

이전에 조선에서 강포한 일이 일어났을 때에 세종대왕은 자신의 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단식을 하였다고 한다.

 

교회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인 현상에 책임이 없는가?

세상의 왕보다도 못한 것이 교회인가?

 

영원하신 왕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교회라면 나라와 민족이 이 나라의 영혼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고 유리하는 것을 민망히 여기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눈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부담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와 같은 흉포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 나라는 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필요한 것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목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필요한 것이다.

교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필요한 것이다.

 

왜 그런가? 교회가 많아도 목사가 많아도 지금처럼 많은 때가 언제이었는가?

없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처럼 사회가 악하고 사람들이 악한 때는 또 언제였든가?

지금처럼 교회가 세상 죄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먹고 교회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게 하는 때가 언제 있었던가?

 

그러므로 지금이 복음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할 때이다.

지금이야말로 복음전도가 다시 일어날 때이다.

지금이야 말로 영혼사랑이 다시 일어나야할 때이다.

 

남의 영혼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나의 영혼을 사랑해야 남의 영혼도 사랑할 수 있다.

여러해 전에 협회를 통해서 들었던 말씀을 기억하자.

 

나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고 그 후에야 다른 이의 영혼도 사랑하는 전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영혼을 사랑하는 회개가 급선무이다.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고 죄를 씻음으로 나의 영혼을 정결하게 할 때에 나의 영혼을 사랑할 수 있다.

 

그 후에라야만 다른 이들의 영혼들 흉한 죄에 빠진 영혼을 들을 사랑하는 전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도 없다.

주님이 문밖에 서 계신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약 5:9)

 

이제는 이전에 주님이 주신 것들을 기억할 때이다.

이전에 보았던 것을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주께로 돌이켜야한다.

시간이 없다.

때가 악하다.

주님이 나를 부르시던 그 음성을 다시 듣고 주께로 돌이키자.

주님이 은혜를 주신다.

 

이 세대를 분별하고 십자가로 돌아가자.

 

성도는 가장 그리스도다워야 하고 

교회는 가장 교회다워야한다.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