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년전에 죽은 전도자를 위해서 추모예배를 드리자는 제안이 전도자들가운데서 나왔다고 한다.

그것도 미주 전도협회주관으로 추모예배를 드리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전도자들이 반대를 했다고 한다.

반대를 한 사람들의 이유가 이러했다고 한다.

 

"본인이 살아 생전에 우리에게 본이 될만한 삶을 살았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였다"

"본인의 가족들이 사후에 여전히 우리들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이후로 전혀 접촉이 없다"

 

이와같은 이유를 들어서 몇사람이 들고 나온 추모예배가 성사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의 말을 빌리면 추모예배를 드리자고한 사람들 몇이서는 드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이 알아서 한 것이며 협회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같은 말을 들으면서 사람이 살 때도 아름다워야하고 죽을 때도 아름다운 것이 중요한 것임을 생각하게 했다.

살아서 아름답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도 아름다울수가 없는 것이다.

 

바울과 같이 사는 것도 유익하고 죽는 것도 유익한 삶이 필요하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 20,21)

 

살아서도 주님과 몸된 교회에 유익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고 죽을 때에도 사람에게나 교회에 유익이 되는 죽음을 죽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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