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 할 때에 항상 주님은 기도할 사람의 얼굴을 하나씩 하나식 떠 올려 주시곤 한다.

명단을 적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또 마음을 먹고 누구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아니다.

주님이 생각나게 해주시는 차례대로 기도하고 눈을 감으면 하나씩 하나씩 떠 올려 주시는 순서대로 기도하는 것이다.

한사람을 놓고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다했을 때에 주님은 또 한사람을 보여 주신다.

그렇게 기도를 하다보면 팔도강산은 물론이고 미국에 있는 사람이나 영국, 인도 , 인도네시아, 필리핀등등 주님이 떠오르게 하시는대로 말그대로 전세계를 다 돌아다니면서 기도를 한다.

이와같이 기도하는 것을 바울은 이렇게 표현한다.


(살전 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살전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은 하루 종일 보고 싶은 성도들의 얼굴을 떠 올려 주신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먼저 보고 싶어 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구원을 받은 성도이고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은 성도일 때에 피차에 보고 싶은 것이 서로 사랑하는 증거이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일년이 가도 보고싶지도 않고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것은 주님이 생각나게 하여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전에는 미국에 있는 목사님에게 보고싶다고 메일을 보낸적이 있다.

바울도 로마의 성도들을 보기를 심히 원한다고 했다.


(롬 1: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이렇게 성도가 서로 보고 싶은 것은 각사람의 속에 주님이 주신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가 아닌 사람은 보고 싶을리가 만무한 것이다.

여기서 보고싶은 것은 순수한 주님의 사랑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그냥 애틋한 육정이나 추억을 더듬는 보고싶은 것은 육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성도의 사랑이 아니다.


지금까지 같이 일도 하고 은혜도 받다가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는데 그들중에는 정말 간절히 보고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전혀 생각조차도 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떠나간 간사들중에도 전혀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불신자처럼 뒤가 안좋게 하고 떠나간 사람들은 보고싶어 한 적이 전혀 없다.

교회에나 목회자에게 악하게 하고 떠난 사람들은 생각조차도 나지 않는다.  

그들이 과연 구원을 받은 성도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인지를 의심하게 하는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율법적인 회개도 하고 울기도하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거듭남의 경험이 없는 사람일수도 있다.

함께한 시간들을 돌아 보아도 그들의 공통점은 선한 행실도 열매도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에게만 잘보이려고 외식했던 사람들이었다.


성도는 성도를 사랑한다.

그가 받은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한다.

서로 사랑할수 없거나 사랑이 안되는 사람들은 둘다 구원을 받지 못했든지 아니면 둘중에 하나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 

그러나 피차에 간절히 보고싶은 사람은 그사람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요 보고싶은 상대도 구원받은 주의 형제가 틀림이 없다.


나도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주의 형제를 보고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랑하기때문이다

그리고 보고싶도록 주님이 생각나게 해주시고 나에게 떠 올려 주시는 얼굴도 구원을 받은 성도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를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

혐회를 통해서 거듭남의 체험을 한 사람일수록 더 간절히 보고 싶다.

한주간을 살면서 그와같은 얼굴들을 주님이 떠 올려 주시고 보고싶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불일듯이 일어나게 해 주신다.


그들중에는 먼저 아버지의 품에 간 전도자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같이 사역을 하다가 멀리 외국으로 간 사람들도 있다.

어쩔수 없는 형편에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있다.

협회를 멀리하고 떠나간사람들도 있다.

잘못 교회를 떠나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중에 간절히 보고싶은 사람들이 있다.

대구예일교회를 떠나간 어느 집사는 일주일에도 네번 다섯번씩 주님이 떠오르게 해주신다.

그래서 그가 보고싶고 그를 위하여 기도를 아니할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새번 또는 한달에 두세번씩 떠오르게 해주셔서 위하여 기도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전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그래서 보고싶다는 생각도 말도 할수가 없다.

그를 위하여 기도를 할수도 없다.


이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주님이 생각나게 해주시고 위하여 기도하게 하시는 것이다.

전적인 주님의 주권이요 역사이다.


아무쪼록 보고싶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시고 이 마지막 때에 세속화된 교회를 개혁하고 쭉정이를 날려 보내고 알곡을 추수하는 엄중한 때에 함께 주를 위하여 일하게 하시는 은혜를 다시 한번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멘 






 

 

(*.62.18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