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님 새로 번역된 성경의 창세기 215절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에덴 동산을 경작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있는 것을 아시나요?”

 

창세기 사경회 중에 어느 목사님이 나에게 질문했다.

 

아니요 난 그걸 안보니까 모르지요.

 

그리고 나서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큰일이다 싶어서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거기에 이렇게 번역을 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2:15, HNR)

 

그 목사님의 말대로 이렇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성경의 사상 전체를 뒤흔드는 오류이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모르고 성경의 중심사상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한 심히 막중한 일이다. 단순한 실수라고 하기 에는 너무나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경작은 사전에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지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담이 농사를 짓게 된 것은 에덴 동산에서가 아니라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3:23, HRV)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3:23, HNR)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 농사를 지었다는 것은 성경 전체의 사상과 역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번역의 오류에서 지나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전체의 사상을 뒤엎어 놓고 인간의 죄의 결과를 없애고자하는 불경하고도 악한 결과를 낳는 일이다.

 

같은 말씀이 우리가 지금까지 써온 개역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2:15, HRV)

 

왜 이런일이 일어 났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누군가가 이 번역에 손을 댄 사람이 성경을 흐르고 있는 전체적인 중심사상을 알지 못한 채 어휘만을 가지고 경솔하게 저지른 오류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바드”라는  동사의 목적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어휘만 가지고 그뜻을 나열해 놓은, 수준이 낮은 번역을 저질러 놓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일이다.

개역성경에서 215절의 다스리며의 히브히어는 아바드이다. 323절에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에서 갈게 하시니라도 원어는 같은 단어인 아바드이다. 그 어떤 사람이 그런 일을 한 것은 서로 다른 두 구절에서 같은 단어를 쓰고 있는 함정에 걸린 것이다. 성경의 중심 사상과 앞뒤 문맥이나 목적어등을 고려하지 않고 같은 단어를 쓴다고 하여 생각없이 같은 말로 번역을 한 것이다.

히브리어 동사는 그 태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며 함께 쓰는 접속사와 전치사 그리고 주격과 목적격에 의해서 같은 단어라도 그 뜻이 다르게 쓰여지고 있는 특성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 번역한 성경이나 찬송가들이 이전 것과 좀 다르게 번역했다는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것인지는 모르지만 토씨만을 바꾸고 단어만을 바꾸는 가벼운 일을 하다 보니까 이와 같이 일부러 다르게 하려 하다가 스스로의 덫에 걸린 것이다.

 

아바드는 칼형(단순능동태)으로는 그 뜻이  일하다”, “봉사하다”, “경작하다이지만 히필형(사역능동태)으로는 예속시키다” “노예의 신분이 되다” “종살이하다” “강요하다등등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동사이다. 여기서는 두구절 다 칼형으로 곧 단순능동태로 이 단어를 쓰고 있다. 그러나 두 단어가 뜻이 달라지는 것은 목적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215절의 아바드는 그 목적어가 에덴동산이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경작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다. 그러나 323절은 그 목적어가 그의 근본 된 토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지를 경작하고 농사를 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215절은 다스리는 일을 하는 것이고, 323절의 말씀은 토지를 가는 경작과 농사를 짓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땅을 갈고 경작하는 농사의 일을 하게 하신 것은 죄를 짓고 생명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땅을 경작하여야만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먹고 살기 위해서 수고하고 땀을 흘려 농사를 지으라고 하신 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같은 성경적인 사상 곧 하나님의 사상을 배제한채 이런 번역을 내어 놓은 것은 말그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무지의 교만”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렇게 성경의 사상에 무지하고 문법에 무지한채 단어만을 나열하는 소아병적인 번역이 성경 말씀을 무섭게 훼손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와 같은 말을 해준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이 단어를 설명을 했다.

어느 회사에 사장과 노동자가 같이 출근을 해서 일과를 보낼 때에 노동자는 노동을 하는 것을 일한다고 하지만 사장은 경영하고 다스리는 일을 하는 것을 일한다고 한다. 그것은 사장이 일하는 대상 곧 목적은 회사 전체이고 노동자가 일을 하는 목적은 단순히 자기가 맡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이 에덴 동산에서 일한 것은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일이었으나 죄인이 되어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일하는 것이 저주를 받은 땅을 경작하고 농사를 짓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죄를 짓기 전에 곧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생활을 살았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6, HRV)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전에 에덴 동산에서 일한 것, 곧 아바드한 것은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일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상실하고 육체가 되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자기의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은 자기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된 아바드하는 것은 농사를 짓고 경작함으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215절의 아바드는 다스리는 일이고, 323절의 아바드는 농사를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215절의 아바드경작하며로 번역한 것은 반드시 돌이켜 바로 잡아야 할 중대한 오류이다.

 

 이문제가 중대한 것은 아마도 번역의 오류라기보다는 이런 번역을 채택한 다수의 번역자들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복음을 알지 못하면 복음을 믿는 것조차도 의심이 가는 일이기 때문에 이일은 참으로 무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시대, 이와 같은 교회의 현실을 보는 마음이 씁쓸하기만 하다.

(*.62.8.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