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외국에서 돌아오는데 노트북을 가지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승무원이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더니 무슨 글이냐고 물어서 대답을 해주면서 전도를 했다. 그런데 그도 교회를 다니지만 예수를 잘 믿고 싶다고 하면서 자기 어머니는 성경을 더 잘 배우겠다고 원어도 배우러 다니고 방에다가 알수 없는 글을 붙여 놓고 암기도 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원어를 잘아는 것이 성경을 잘아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말씀대로 살고 순종하는 길은 너무나도 멀고도 먼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와같은 말을 들으면서 겁이 나는 것은 이전에 여호와 증인이나 오늘날 신천지나 또 다른 이단들이 원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현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언어는 보조수단이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거나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사람들은 헬라어를 잘 알기 때문에 다 신약성경을 믿고 예수를 믿음으로 믿음이 좋아야할 것이다. 그엣날 히브리어를 잘 알았던 제사장과 서기관들인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이 누구보다 먼저 예수를 믿었을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원어 공부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할수만 있으면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배우고 알아야한다. 그러나 그것에 치우치거나 언어를 의지하면 반드시 성령의 감동이 소멸됨을 가져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만이 기록한 글이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하심이 아니면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고 순종할 수도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입으로 말하는 것조차도 순종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씀은 성령이 스승이 되어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그래서 주님도 성령을 부어 주심을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을 의지하여 말씀을 보고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자칫 원어를 의지하고 언어를 의존하는 방향으로 틀어질까를 조심해야 한다. 남들보다 원어에 조예가 깊고 자신이 원에에 자신이 있는 사람일수록 또 그것을 자랑하는 사람일수록 그와같은 함정에 빠져들어 간다. 진리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 성령을 의지하기 보다는 원어 만능사상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치명적인 오류이다.

 

원어는 성경을 풀수도 없고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참고하는 수준의 도움만을 주는 것이다. 성경을 푸는 것은 오직 성령으로 해석하고 푸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어로 성경본문을 푸는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원어를 풀도록 해야 한다.

 

이 말은 원어를 활용하여 말씀을 깨닫는 것도 전적인 성령의 주권과 역사안에서 이루어 져야만 한다는 말이다.

 

20여년전에 전도훈련을 받고 회개하고 열심히 영혼을 사랑하던 목회자들중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원어 공부만 하게 되면 영혼사랑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영혼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암흑가운데 빠지는 것을 허다하게 보고 아파해야만 했다. 그와 같은 일은 원어로 성령의 가르치심의 역사를 대체하려한 무지와 교만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우리는 원어에도 마귀가 역사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간파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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