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사님하고 대화 중에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예수를 믿으면 주안에 거해야하지 않습니까?”

……

예수를 믿으면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지요.”

……

 

내가 가르친 말씀들이지만 이분이 크게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은 예수를 믿고 주님안에 거했나요?”

……

주안에 거하기 위해서 노력했나요?”

……

집사님은 주님과 시간을 쓰기 위해서 애를 쓰셨나요?”

……

그렇지 안잖아요.”

……

다 주님의 은혜예요. 내가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와 살아 주시는 거예요. 내가 주님과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시간을 가져주시는 은혜지요.”

 

이렇게 사람들은 주의 은혜를 행위로 돌리는 데에 능숙하게 젖어 있다.

그리고 행위를 듣는 데는 귀가 밝아도 은혜를 말하면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고 그것을 행위로 해석을 하기를 쉽게 한다. 이를 테면 은혜에 관한 한 들을 귀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무서운 규범주의”(율법주의) 사람의 유전사람의 교훈의 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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