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인 눈과 영적인 눈

 

 

나에게는 외삼촌이 한분이 있다. 그분은 오십 년을 넘도록 외국에서 살고, 미국에서 석사학위 두 개, 박사학위 하나를 받고도, 항상 만날 때마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고 영어에 목말라 하셨다. 아무래도 남의 나라의 언어는 항상 배우고 평생 배워도 누구에게나 만족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영적인 언어인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더 그렇겠는가? 평생을 읽고 깨달아도 부족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그동안에 사역을 하면서 공석에서나 사석에서 목사님들을 만나면서 느껴지는 공통적인 느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도 무지할 수가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11년부터 지나간 5년 동안을 1000권이 넘는 원서들을 구입하여 지나간 수세기동안의 유명한 신학자들의 글을 읽은 결과, 그들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일에 철두철미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영국의 에더 샴이나, 미국의 감리교 목사인 다니엘 스텔레, 또 목사도 신학자도 아닌 100년 전에 미국의 대법원 판사를 지낸 필립 머로 같은 이는 탁월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지식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책도 쓰고 가르치기도 한 것이다.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28:10)

 

그리고 어떤 이들은 성경은 잘 알지만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문법에 주의하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역사적인 징조에 소홀하기도하고, 두루두루 주밀하지 못하여 경솔하게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다니엘서를 오해하고 그로 인하여 요한계시록을 오해함으로 잘못된 이론을 양산하여 지나간 수세기동안 교회를 어지럽게 한 것이다. 물론 로만 카톨릭의 왜곡된 신학과 성경본문까지도 훼손하는 악함도 역사를 한 면이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이들이 성경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관통하는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된 것이다.

 

다니엘 스텔레의 지적과 같이,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헬라어 시제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해석을 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는 것 말고도 단어 하나만을 가지고 신구약을 연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깨달아지는 것은 그와 같이 유명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성경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신학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생긴 신학의 눈을 가지고 다시 성경을 보게 되기 때문에 성경을 바로보기 힘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늘날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엣날에도 있었다. 사도바울은 그가 베냐민 지파요, 유대인중의 유대인으로서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왔다. 그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소위 그때 당시의 신학을 배웠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깨닫기 보다는 조상들의 유전인 유대교의 규범을 배운다. 그것이 가말리엘 신학의 실체이다. 그리고 그 눈을 가지고 성경을 보게 된다. 그러니 그와 같은 성경의 이해로는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중범죄자임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눈으로 볼 때에 스데반은 돌로 쳐서 죽여야 할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을 알기도 전에 사람의 눈, “가말리엘 신학의 눈을 이식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각 도시로 다니면서 주의 제자들을 잡아 옥에 넘기고 죽음에 넘기는 일을 앞장서서 했다.

그래서 사울이라는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이 만나주시는 은혜를 받고 아라비아로 가서 삼 년 동안을 잘못된 성경지식을 뜯어 고치는 데에 전념한 것이다. 그는 주님이 주신 눈을 가지고 성경을 새롭게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또 옛 선지들의 믿음과 마음을 알게 되어 말할 수 없는 회오(悔悟)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배운 것이 유대교의 장로의 유전, 곧 사람의 유전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 주신 영적인 눈을 가짐으로 복음에 있어서 어느 사도보다도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눈영적인 눈을 가지기도 전에 사람의 눈이나 사회적인 눈, 그리고 신학의 눈을 먼저 가지는 것이다.

러므로 우리는 각자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갈급한지를 먼저 깨닫고 아라비아로 들어가서 아라비아의 시간을 가짐으로 주님이 말씀을 가르쳐 주시는 은혜를 받음으로 성경을 보는 눈을 고치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철두철미하게 알고 깨닫는 은혜를 받아서 많은 영혼들을 옳은 길로 돌아오게 하는 궁창의 별과 같이 빛나는 생활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혹 많은 영혼들은 아닐지라도, 내게 주신 자식만이라도 진리 가운데서 살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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