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에는 교회밖에 예수를 안믿는 불신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안에 불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적어도 1974년에 내가 예수를 믿고 나서도 교회안에 회심한 사람 거듭난 교인들은 희귀할 정도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안에 예수를 만나지 못한 안믿는 사람이 대종을 이루었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던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면 내가 만난 예수를 자랑하면서 구원받은 것을 간증했는데

사람들이 교회를 왜 그렇게 욕을 하고 교인들 곧 목사와 장로와 권사 집사들을 그렇게 욕을 하는 지 참으로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생활속에서 교인들과 접촉이 많아지다보니 안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욕하는 이유를 알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안에 있지만 회심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안을 꽉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초신자이었어도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나는요...."하면서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를 믿고 변화된 생활을 자랑했는데 내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들은 한결같이 강단에서 그들이 설교하는 중에 자기가 만난 예수를 증거하는 말을 십수년동안을 들은 적이 없었던 것을 이상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회사친구가 예수를 믿는 조건으로 어느 교회를 같이 나가 주기를 원했을 때에 다녔던 성결교회 목사는 사석에서도 음란한 말을 슬금슬금 슬금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을 했읍니다. 그후로 다녔던 교회 목사들은 그와같은 적은 없었어도 강단에서 예수를 개인적으로 만난 회심의 간증은 없었고 무슨 부흥회에 갔다가 불을 받았다는 뜬금없는 말만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마다 일마다 주님과는 상관없는 말과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을 한 적이 부지기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들의 공통점은 영혼사랑은 없고 교인사랑만 있었으며    

하나님의 나라보다도 지상교회를 더 사랑하였으며

주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돈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아래서 신앙생활하는 교인들이 거듭나는 은혜를 받을리가 만무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그들 아래서 신앙생활"이 주님의 뜻과는 상반된 것이지요.

왜냐하면 주님은 너희중에 큰자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기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 아래서라는 말이 세상의 조직의 생리를 대번하는 말입니다.

세상가치로부터 오는 것이지요

사실 협회간사들도 대부분이 훈련을 받는 목사님들과 교인들위에 군림하는 태도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집사님이 "협회간사들이 서비스정신이 없다"라는 말을 늘 하곤 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요한 계시록의 짐승의 권세 곧 하나님이 다스려야만 하는 성도를 사람이 다스리려고 하는 생리인 것입니다.


말이 좀 다른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일들이 오늘날 교회안에 많은 믿지 않는 불신자 교인들을 만들어 낸 주된 원인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이런 상태대로 내어 버려 두실까요?

아닙니다. 요한의 예언대로 주님은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쭉정이는 가라지가 아닙니다.

쭉정이는 종자도 같고 모양도 같지만 속이 빈 것입니다.

오늘날 속이 빈 사람들이 교회안에 많이 있습니다.


속에 있어야할 생명이 없습니다.

속에 있어야할 내용물이 없습니다.

쭉정이는 땅에 심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명도 없고 생활도 없으며 생산도 안됩니다.


오늘날 교회안에 교회를 다니고 교회일을 하는 것 외에 아무런 영적생활이 없는 사람들이 쭉정이입니다.

세상에 나가서 살면서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에 동화되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들이 즐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사람은 되어도 세상의 빛은 아닙니다. 세상에 맛을 내는 소금이 아니라 맛이 없어 실망을 주기만 합니다.

이와같은 사람은 주님의 진노의 대상이며 심판의 대상입니다.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울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회심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생명을 얻은자입니까?

그렇다면 생명을 얻기 전과 후에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온세상에 자랑할수 있습니까?


사람들도 알곡과 쭉정이는 비교할수 있습니다.

주님이 모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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