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큰 충격 속에 몰아넣었던 세월호 침몰사건이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이제 한 달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그 배의 실질적인 소유주라는 구원파의 두목인 목사라는 자는 오래전에 오대양사건 때와 같이 쥐새끼처럼 도망을 다니고 있어 목사도 아니고 종교인도 아니고 복음도 없고 믿음도 없는 시정잡배만도 못한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끝나는 그들의 집단을 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복음이 아님이 다시 한 번 확실하게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와 같은 자들에게 한국교회가 휘둘림을 당할 때가 있었던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아직도 교회는 그때보다 영적으로 훨씬 낮은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임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신사참배를 한 죄를 회개하기를 거부한 한국교회가 거룩함을 상실하고 그 결과로 영적인 실재를 상실하였을 때에 교회 안에서 피차에 구원을 확인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과민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할 즈음인 1960년대 중반에 권신찬이란 장로교 목사가 구원의 확신문제를 가지고 한국교회를 흔들기 시작하면서 불신자 전도가 아니라 기성 교인들을 빼앗아 감으로 자기 세를 불리는 일들을 하면서 시작이 되었던 단체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구성원은 예외 없이 기성교회에서 온 사람들이며 그들은 생명이 없는 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미혹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기성 교인들을 미혹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구원의 확신문제였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의 교회의 약점을 악하게 파고들었던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 자기들의 세를 불리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세를 불린 결과가 오늘날 돈에 대한 탐욕으로 많은 생명을 죽게 만들었으므로, 그들은 그야말로 구원파가 아닌 멸망파이며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는 사망파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1. 구원의 확신


그들은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거듭난 날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거듭나게 한 말씀 구절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그들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이 없는 교회 안의 대부분의 교인들을 미혹하게 하는 속임수로 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보육원에 있는 어린아이가 부모도 모르고 생일도 모른다면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우리는 거듭남을 날과 시로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성령이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


그리고 우리가 거듭난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또한 나 자신이 아는 일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닌 내가 아닌 다른사람이 내가 구원받고 안받고를 판단하는 것은 무서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아시고 각사람이 성령의 증거하심으로 아는 것입니다.


또 구원파는 거듭날 때에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한 말씀이 믿음을 줄 때도 있으나 많은 말씀이 믿음에 이르게하는 것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말씀이나 많은 말씀이나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마귀의 역사로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사람들을 꾀고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구원파에도 없고 무슨 단체에 있는 것도 아니며 장로교에도 없으며 감리교 성결교에 있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구원은 오직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 있는 것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9)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계 7:10)


그리고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인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권세입니다.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2. 죄와 회개의 문제


구원파는 처음부터 회개를 안해도 되는 교리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그당시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신사참배를 회개하는 것을 거부한 장로교총회의 결정은 각교회의 지도자들과 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그들은 점점 회개가 없는 교회로 탈바꿈하여 갔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안에 은혜는 사라져 가고 율법주의와 행위주의가 일어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와같은 상황에서 회개를 부담스러워하는 교인들에게는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들의 교리는 매력적으로 받아 들여 진 것입니다.


어느 구원파의 목사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개신교는 왜 로마서 4장에서 8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이말이 그들의 상투적인 주장입니다.


로마서 4장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믿는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으로 시작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서 5장부터 7장을 애써 외면합니다.

로마서 5장과 6장 7장은 죄와의 싸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5장에서는 하나님과 화목된 그리스도인은 이제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고 6장은 죄를 이기는 비결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7장은 죄와의 치열한 싸움을 말하고 그리고 8장에가서 그리스도안에 있는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말씀도 그냥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원어를 보면 그리스도안에 있는자 곧 항상 그를 따라가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 얼마 안있어서 만난 구원파가 생각이 납니다.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신혼인데 우리 아내가 임신중입니다. 그런데 제가 육신의 욕구를 발산하지 못하면 창녀촌에 가서 욕구를 해소하곤 합니다. 내 육신은 죄를 짓지만 내 영혼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더럽혀 지지 않는 것이지요.”


나는 그사람에게 화를 내면서 책망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거룩함이 내 육체에 나타나지 않는 것 때문에 하루 종일을 기도하고 울면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죄가 육체를 더럽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영혼의 문제이며 영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영혼이 거룩하면 육체의 행실도 거룩해지는 것이 영으로 육을 이기는 신앙생활입니다.


이와같이 육신이 죄를 지어도 영이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영지주의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전히 육신의 소욕을 중시하고 육신의 욕구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이땅의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이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했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고 교회가 참된 교회라면 영혼을 사랑하고 울면서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살려 내야 하는 것임에도 그들은 많은 육신의 생명들을 죽여가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했던 공산주의나 저 북한의 극악무도한 독재자들보다도 더 악한 무리임이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3. 영해의 문제


그들은 날마다 짓는 죄를 사함을 받고 날마다 죄를 씻김받는 은혜와 감격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을 깨닫는 감격으로 그것을 충당하고자합니다. 성경공부만을 하는 것으로는 영적인 감동이 있을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이 아니라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앞에서 지은죄를 인격적으로 회개하고 인격대 인격으로 용서를 받고 화목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공부만을 하고 깨닫기만하지 그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지 않습니다. 그것은 회개를 아니하는것보다도 더 악한 것입니다. 말씀은 깨닫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도 믿음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을 영해하는 것은 혼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순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저들이 잘못된 것입니다.


4. 종말론의 문제


저들은 세대주의 적인 종말론을 가르칩니다.

대환란이 있고 환란전에 휴거가 있는데 자기들에게 속해야지만 휴거가 되고 환난이 와도 견딘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안성에 본거지를 만들고 거기서 자급자족하기 위해 생산활동을 하며 전국적으로 농장도 하고 기업체도 하며 미사일이 떨어지지 않는 안성으로 교인들을 이사를 시키는 일도 하면서 자기와 자기 자식들의 배를 불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돈을 사랑하다 못해 돈에 미친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삼백명이 넘는 생명을 떼죽음당하게 하고도 도망다니며 자신의 육신의 안위만을 살피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퍼마켓을 운영한 것도 아마 짐승의 표를 받으면 거래가 안된다고 자기들이 슈퍼마켓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입니다. 배사업을 한 것도 아마도 돈도 벌기 위해서지만 난리가 나면 그것을 타고 바다로 멀리 도망을 가고자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종말론을 강조하는 무리들이나 가르치는 무리들은 하나같이 예외없이 육신의 생명에 애착이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들입니다.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이유가 영혼때문이 아니고 육신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은신처를 준비하는 것도 때가 되면 자기만 살겠다는 육신의 생명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준비한 사람은 주님이 언제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환난이 와도 주님이 함게 계시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담대하라는 말은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환난을 당해도 그리스도인은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김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구원의 확신의 문제나 회개를 하지 않는 문제, 말씀을 영적으로만 풀고 깨닫고 순종하지 않는 문제,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미혹되는 문제들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기 때문에 이번사건이 한국교회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도 이문제들이 한국교회의 문제의 주류이었던것과 같이 지금도 이문제는 고스란히 교회안에 남아 있습니다.


자기의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는 일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형식적인 예배와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목표가 아니라 교회를 크게하는 것이 목적인 목회와 교회운영의 문제들, 강단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들을수가 없고 사람듣기좋은 설교로 일관하는 일들 그리고 실적을 위한 해외선교들 돈으로하는 해외선교, 복음이 없는 해외선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교회는 내용적으로 구원파와 차이가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기쁨이 없는 성도는 구원파 교인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릇된 종말론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도 그들과 차이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들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한국교회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들이 악함을 행사하는 토양을 교회가 제공한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교회를 아파해야 하며 한국교회의 실상을 놓고 하나님앞에 회개할 때입니다.

이와같은 기회에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주님의 눈으로 살펴 보고 회개하기를 사모하고 거룩함을 사모함으로 주님의 신부다운 교회로 변화되는 은혜를 받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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