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반둥입니다


I never heard that! I never heard that!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없어요!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없어요!)


지난번에 세미나에 참석했던 목사님이 소리를 질렀다.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큰 충격에 빠진 것은 믿음은 노래하는 것도 춤을 추는 것도 예배하는 것도 아니고 믿음은 생활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첫날인 어제 괴성을 지르다시피 춤을 추면서 몸을 흔들고 찬양을 인도하던 사람이 차분해졌다. 무슨 충격을 받았는지 오늘은 찬양인도자가 바뀌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훈련을 받은 자매가 찬양을 인도했는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간절히 은혜를 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제는 들뜸과 방자함으로 찬양을 했다면 오늘은 간절한 마음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찬양했다. 어제는 삼십 분 이상을 찬양했다면 오늘은 단 두 곡으로 마무리를 했다.


첫날에는 미국인 선교사가 참석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들으면서 눈물을 연신 닦아내었다. 언어학교 교장 선생님도 참석했다. 말씀 전에 찬양을 인도하는 것을 보면서 무슨 가사인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분위기가 마냥 들뜬 분위기였다. 옆에 앉아 있는 이인의 선교사님에게 가사 내용을 물었더니 그도 잘 몰라서 사전을 찾기도 하고 해서 가르쳐 준 것이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대충 그런 뜻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앞에 나가서 본문 말씀을 읽고 말씀을 전하면서 회중에 질문을 했다. “여러분, 하나님을 좋아합니까?” 다들 그렇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좋아할까요?”라고 말하자 분위기가 이내 가라앉았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무엇을 좋아하겠습니까? 얼굴이나 용모나 옷차림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예배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과 믿음은 말도 아니고 생각도 아니고 깨닫는 것도 아니고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을 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인데 그가 계신 것을 믿고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이임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전했다.

강단에는 큰 프랑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곳 저곳에 배너들이 세워져 있었다. 강단 전면을 채운 프랑카드에는 Holiness(거룩함), Humble(겸비), Miracle(기적)이라는 글이 전체를 채우다시피 꽉차게 쓰여 있었다. 그리고 강단에서 오른쪽 배너에는 Holy Spirit(성령) 왼쪽의 배너에는 He reigns(그가 다스리신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오늘에서 보니 성령이라는 배너에는 Holy Spirit fill in this place(성령이여 이곳에 충만하소서)라는 글이었는데 그 밑을 내가 미쳐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프랑카드에 있는 단어들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을 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그의 거룩함에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겸비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겸비하는 것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는 것인데 이 프랑카드에는 그것이 빠져 있음을 설명하고 회개해야 기적이 일어난다. 그런데 기적중에 기적은 옆의 배너에 쓰여 있는 것과 같이 성령을 받는 것이다.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하면 왼쪽 배너에 쓰여진 것과 같이 성령의 직접적인 통치가 일어나는 인격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인격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변화된 삶을 살 때에 나 자신의 사람 됨됨이가 복음이 되어서 나를 보고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은 그 자신의 사람 됨됨이가 그들에게 보여진 것이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5)


그러면서 내가 예수 믿고 변화됨으로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한 사실들을 간증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발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아들 목사님을 급히 오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 날은 미국인 선교사의 자녀들인 것 같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이중 통역을 해야만 했는데 통역은 발리에서 오신 목사님이 영어를 맡아서 진행했다. 어저께 춤을 추고 찬송을 하던 사람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영적인 도시인 예루살렘에서 가장 세속적인 도시인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승리하는 생활을 살았던 것은 바벨론 사람처럼 살지 않고 예루살렘 사람처럼 살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교회 안의 믿음을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임을 전했다. 그러면서 복음 전도에 관한 말씀들을 전했다. 모슬렘을 전도한 간증도 했다. 모슬렘이 기독교를 싫어하지만, 복음은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한국에서도 교회를 싫어하고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 교인을 싫어하고 목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좋아한다는 말을 전하고 그 실례들을 간증했다. 통역한 목사님이 은혜를 받고 말하기를 발리에도 진실한 목사들이 많이 있는데 이 말씀이 필요하다며 발리에도 와 주었으면 한다고 정중히 요청했다.

 

그 다음 날인 마지막 집회는 통역이 바뀌었다. 이분은 인도네시아에 오신지 이십 년이 되었는데 통역을 마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말씀은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에 대하여 전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는지를 전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친구가 된 것과 주의 제자들이 주님의 친구가 된 것 그리고 사울이라는 바울이 주님의 친구가 된 것을 전하면서 나의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소상히 간증했다. 예배와 찬송과 기도가 퍼포먼스가 되는 폐단에 대하여 날마다 강조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와 인격적인 접촉이 없이 그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전했다. 영어로 통역하는 목사님은 더 적나라하게 표현을 했다. 하나님과 상관이 없이 자기만 즐기는 찬송, 자기 만족을 위한 예배와 자기 위안을 삼기 위한 기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통역을 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예배가 아니라 일방적이고 독자적인 예배와 찬송이 잘못된 것을 분명히 깨닫는 은혜를 주셨다. 세상에 짝퉁이 많은 가운데 고가의 제품일수록 그에 대해 죄가 더 중한 것을 말하면서 세상에서 값으로 칠 수 없는 영혼과 영적 생활이 짝퉁인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장 마음아픈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내 자아가 없어진 간증을 하면서 그들은 큰 감격에 빠지기 시작했고 몇 사람이 울고 눈물을 닦기 시작을 했다.


집회가 끝나고 지난번 세미나에 참석했던 목사님들도 이와 같은 말씀을 처음 듣는다며 어린아이같이 뛰면서 좋아했다. 끝나고 차 안에서 사례비를 주는데 100만 페소를 받았다. 그 돈이 우리나라 돈으로는 십만 원이지만 가난한 나라 사람들인 그들에게는 여간 큰돈이 아니었다.


지난번에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그들은 다 훈련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싱가폴에서도 어느 목사님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의 말과 같이 이 시대에 처음으로 듣는 이 말씀이 필요한 교회와 성도들이 아직도 세상 처처에 많이 있다. 오늘부터 있는 세미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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