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이 좋아야 합니다.

 

 

며칠 전에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초신자를 포함해서 몇몇이 교제를 하는 일이 있었다. 대화 중에 믿는 이들의 부도덕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때 나는 그 초신자에게 이전에 예수를 믿지 않을 때를 상기시키면서 당신이 이래서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했다. 그리고 그는 그렇다고 시인을 했다.

 

어느 회사에서 새로 생산한 신제품을 광고를 잘해서 날마다 프라임타임에 방송광고가 빵빵 나가고 신문광고를 하고 도시 구석구석마다 플랜카드와 배너와 전단지들을 수북하게 뿌리고 인터넷 광고를 한다고 해도 그 물건이 품질이 안 좋으면 그냥 공허한 광고로 끝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제품의 품질은 별거 아닌데도 불구하고 광고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면 그 회사는 얼마 못가서 망하고 말 것이다.

 

교인들의 품질이 좋지 않으면 교회가 아무리 전도를 열심히 해도 그것은 헛된 일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이 될 것과 빛이 되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5:13-16)

 

이 말씀은 교인들의 행실이 세상에서 착한 행실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청산유수로 말을 잘하며 예수를 믿으라고 해도 전도가 될 리가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사람에게 세상의 소금도 빛도 물 건너간 것 같은 상태에서는 온갖 전도방법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도 직장에서나 길에서 버스나 전철 안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알고 있는 교인들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겠다고 항변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들 말을 하곤 했다.

 

예수님은 훌륭한 줄 알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를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교회는 주님이 명하신 것은 제쳐두고 엉뚱한 일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을 따르는 생활과 인격으로 변화되기를 구하지 않고 바리새인들의 전도와 같이 교인하나 구하기 위하여 별의 별일을 다 하면서 얻은즉 배나 더 지옥자식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의 인격적인 품질이 불량하기가 그지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 안의 교인들의 인격과 생활의 품질이 그들이 각자 속한 가정이나 직장 등, 생활의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과 평가를 받는지는 눈을 감고 온갖 전도방법을 만들어서 불신자들을 꼬시는 일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상을 향한 영적인 무기도 없고 말씀도 기도도 없이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육신적으로만 사람들에게 친절한 고객활동만을 하는 무기력한 교회가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지만 그들의 인격과 생활의 품질에 대하여 자신이 없다. 오히려 교인들의 수준이 세상 사람들보다도 도덕성이 더 떨어지고 세상 사람들도 행하지 않는 온갖 사회악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종교인들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그러나 정작 교회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이 자기들이 처한 영적인 현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길에서 커피나 타주고 휴지나 이쑤시개 등의 자질구레한 선물들을 교회의 이름으로 나누어 주면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 한 영혼들에게 왜 예수를 믿어야하는지 그 이유조차도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들로 가득한 것이 현실이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애꿎게도 교회만 나오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교회는 주님이 명하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는 지상명령을 애써서 모른 체 하고 다른 일만 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축구선수가 공을 차지 못하고 선수명단에도 들지 못하고 공만 주워주는 일만을 하고 있다면 아마도 그는 당장에 그 일을 그만 둘 것이다. 출전명단에 들고도 벤치만을 지키고 있는 선수들도 참지 못하고 괴로워하는데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축구팀의 선수라 할지라도 그라운드에 유니폼만 입고 공만 주워 다 주는 일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를 믿는지 아니 믿는지도 모르는 교인들로 교회당을 가득 채우고 그들에게 전도를 하는 것은 언감생심 말도 못하고 그들이 주님을 만났는지 아니 만났는지 그들의 가정생활이 어떠한지 그들의 사회생활은 어떠한지 그들의 인격이 변화되었는지도 모르고 교회 안에만 앉아 있으면 교인으로 존중해주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아픔이 없고 당사자들도 문제의식이 없이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교회의 구성품정도의 생활에만 적응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공학은 모든 공학의 집약체이다. 기계공학, 전기공학, 전자공학, 화학공학 등의 공학기술이 집약이 되어있는 것이 자동차 산업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공학이 골고루 발달되지 못한 나라에서는 자동차를 생산할 수가 없다. 전 세계에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가 열 몇 개밖에 안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것도 교회의 모든 믿음의 결집체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전도는 누가 가르칠 수도 없는 것이며 누구에게 배워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도는 교회에서 가볍게 하는 행사나 프로그램도 아니다. 전도는 방법이 좋고 나쁘고를 논해서도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증인이 되는 곧 예수를 보여줄 수 있는 인격과 생활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한 사람이 교회생활만이 아니라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에서 빛의 자녀로 살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사실이 그들의 언어와 사고와 인품과 생활 속에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은 생활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며 단지 말이 아니라 생활전체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활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려면 먼저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져야 한다. 생명이 없는 사람이 생명의 도리를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사람은 그 생명으로 사는 생활, 곧 영적인 생활이 있어야 한다. 영적인 생활을 사는, 곧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생활을 사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예수가 그의 말과 표정과 인격과 그가 하는 일과 생활 속에 보여지는 증인이 된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기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문의하고 요청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때로는 아직 영글지도 않은 믿음과 인격이지만 밖에 나가서 둔한 입술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설명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수준이 얼마나 주님이 쓰실 수 없는 상태에 있는가를 진단하기 위해서이다. 말씀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기도는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를 진단하고 교회가 가지고 있지 않은 영적인 소중한 것에 대하여 세상 죄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밖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렵다고 전도가 아닌 것을 전도인양 행하고 시키는 것은 불신자들에게는 복음이 아닌 것으로 그 영혼들을 속이는 것이며 그것을 전도라고 행하는 교회 안의 교인들도 속이는 악한 짓이다.

 

지나간 삼십육 년 동안 여름전도여행을 하면서 전도를 받는 이들보다 전도를 하는 이들이 더 큰 은혜를 받고 자기들을 스스로 속이는 영적인 흑암가운데서 나와서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어 기도하고 또 변화를 받기도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와 같은 변화는 개인만이 아니라 교회적인 변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근자(近者)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소홀히 하는 이유는 전도를 하고 여름전도여행을 가서 은혜를 받아도 그 은혜가 금새 잃어버려지고 상실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도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전도를 안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은혜를 받고 돌아가서 또 다시 육체의 행위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율법주의 때문에 생활 속에서 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타난 일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은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 나를 드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빚으시도록 시간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좋은 품질로 나를 만드실 수 있는 시간을 주님께 드리지 않은 것이 전도를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되는 것이다.

 

수년전부터 마귀의 온갖 훼방으로 인하여 전도여행 참석자들이 급감하면서 내심 이제는 전도여행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핑계는 분명한 것이 주님 전도여행을 오라고 하는 교회도 없고 장소를 빌리는 것도 힘들어서 이제는 그만하라는 하나님의 신호로 알고 그만하겠습니다라고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이었다.

 

그런데 천안의 K교회에서 마음껏 교회를 쓰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기를 십년이 다 되도록 천안에서만 여름행사를 하고 있다. 이제는 그만 문을 닫으실만한데도 하나님은 아니 닫으신다. 또 청소년집회도 아이들의 기호에 맞는 집회로 다 몰려가고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진행하는 협회의 집회는 발길이 끊어지면서 금년부터는 청소년 집회를 그만두려고 기도하겠다고 공표를 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이 이제는 십년이 지나니까 교인들이 이 복음에 귀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복음으로 하나가 되는 일도 일어나고 해서 이번에 청소년집회에 몇 명의 아이들을 보낼까 합니다라는 말을 해서, ‘, 이것이 그만두지 말라는 주님의 신호인가보다하고 이번에 단 몇 명만 오더라도 청소년집회를 하기로 했다. 그때마다 주님은 이 사역을 그만 할 수 없도록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도록 인도해 주셨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다들 전도도 복음도 내어 버리고 자기 길로 세상길로들 가고 있는데 나 혼자만 이 길을 고집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우매하고 어리석어 보일 때도 많이 있었다. 그리고 엘리야와 같이 나만 남은 것 같은 외로움과 실망을 느낀 적도 많았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또는 저렇게 복음을 전하는 일의 명맥을 잇게 하신다. 단 몇 명이 오거나 한 사람이 오더라도 주님이 보내주시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기에 못한다는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주님의 일을 하는 자의 마음이요, 형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복음이 없으면 교회는 속빈 강정이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아니 하면 교회는 존재가치가 없으며 주님의 명령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일이 된다.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은 지상명령을 불순종하는 죄인다. 전도를 못하는 것은 주님이 나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드시기 위해서 부르셨는데, 그동안 주님이 나를 사람 낚는 어부를 만들 수 없도록 주님을 따르는 것을 거역한 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를 아니 해도 죄요, 전도를 못하는 것은 더 큰 죄이다. 그동안 주님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것은 그동안 세상에 생활을 즐기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았다는 말이다. 그것은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두마음을 품고 살은 것이다. 단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반역이 되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여름행사에도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영혼을 진단하고 잘못 산 것들을 회개하고 고침을 받는 영적인 정비공장으로서의 여름행사에 다들 열심히 참석을 해서 주님이 나를 그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는 일에 재료로 쓰임을 받고 주님의 작업대상이 되는 전환점(turning point)이 되는 축복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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