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각,바른해석
신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입은 삐뚤어 져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죄인들에게 또 의인들에게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독교를 계시하신 적이 없다.
기독교가 계시의 종교이며 그래서 계시의 기독교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은 어디로 가셨는가?
이렇게 말하면 혹은 변명하기를 아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라고 말한 것은 믿음이나 사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이 된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한 계시를 받은 믿음의 사람들로부터 나온 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연구한 신학에나 있을수 있는 말이다.
초기 교부들의 때부터 신학의 오류는 시작이 되었다.
이전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겸손히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것을 믿고 순종하고 그것을 가르치고 전파했다.
그러나 교부시대부터 그들은 계시를 받고 믿는 겸손함에서 떠나서 하나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알려고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반역이며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다.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철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부신학"이라는 말조차도 없고 "교부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철학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본 사람들일 뿐이다.
그 결과 그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의 연구 결과가 신학으로 형성이 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주를 따르는 주의 제자들이 아니었다.
그들가운데는 길에 나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전도자들은 단 한사람도 없다.
그들중에는 베드로 같은 주의 제자도 없고 요한같은 제자도 없다. 그들은 바울같은 주의 제자도 아니었다.
베드로도 마가를 비롯해서 많은 그의 열매가 있고 제자들이 있었다.
요한도 폴리캅이 그의 제자이며 이레니우스는 폴리캅의 제자로 제자의 계보가 있는 사람이다.
바울도 디모데와 디도와 가이오와 아리스다고와 두기고, 글레멘드, 누가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외에도 많은 제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다 바울과 같이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고 옥에 갇히고 목베임을 당하고 주를 위하여 죽기까지 복종했던 주의 제자들이었다.
그러나 초기교부들의 삶을 살펴보면 바울같지 않고 베드로나 요한 같지 않은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들은 제자가 없고 학생들만 있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학으로 성경을 연구한 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지 학생을 삼거나 모집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천년동안 변함이 없는 폐단은 공부만 하는 사람들이 교회안에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슬프고 또 슬픈 것은 지금도 신학교에 가면 무수한 학생들은 있지만 교수도 학생도 그 어느 누구도 주의 제자의 생활을 살고 전도하고 열매맺는 생활을 살고자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모든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주님은 나무는 열매로 안다고 말씀하시면서 열매가 없거나 나쁜 열매를 맺는 사람은 거짓선지자라고 말씀하셨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거짓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또 복음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도 물론 거짓선지자이다.
강단에서나 또 길에서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한 거짓선지자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교훈 곧 그리스도의 교리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하고는 인사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사람을 집에 들이고 인사라도 한번 하는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은 악한 일 곧 마귀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요이 1: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요이 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요이 1: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
또한 두드러지게 보이는 또 한가지의 사실은 사도들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세상의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마귀와 싸우는 싸움을 싸웠지만 교부들은 교회안에서 자기들끼리 당을 짓고 제각각 자기들이 연구하여 만든 교리를 가지고 서로 분쟁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2세기 이후의 피비린내 나는 살륙이 교회안에서 일어났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다니엘이 다니엘서 7장에서 보고 그의 낯빛이 변하고 중심에 번민했던 이상대로 교회가 성도들을 죽이는 무서운 일이 지나간 이천년동안 있어 온 것이다. 나는 이전에 세미나를 하면서 회중들 특히 목회자들에게 빼놓지 않고 물었던 질문이 있었다.
"마귀하고 싸웠습니까 우리끼리 싸웠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은 단 한사람의 예외도 없이 "우리끼리 싸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곤 했다.
이와같은 지나간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말한마디라도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 것은 모든 행위는 말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지나간 세월동안에 말을 잘못하고 행위를 잘못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들어가서 멸망을 당한 사람들이 그 수를 셀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사 3:8)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스려서 그 영광의 눈을 촉범하였음이라
언어는 "라숀"이다. 행위는 "마알랄"이다.
"라숀"은 "혀"를 말하고 "언어"를 말하는 단어이다.
"마알랄" 은 "행위" 또는 "행실"을 말한다.
언어가 틀리면 행위의 촛점을 흐린다.
언어가 흐려지면 행실도 비뚤어 지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다가 엎드러진 것은 그들의 언어 자체가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지껄이고 경외함이 없이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언어와 행위는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시고 그들을 엎드러지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에 관한한 두렵고 떨림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계시의 종교라는 말따위는 우리의 입에서 비치기만 해도 안된다.
하나님은 계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계시하심을 두렵고 떨림으로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나같은 죄인에게 자신을 계시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이 누구신지를 알고 체험하며 또 그 분을 모시고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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