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성경번역
몸의 구속
지방에서 소를 기르는 어떤 사람이 “세상사람들은 내가 육신까지 잘돼야 내가 믿는 하나님을 인정합니다”라고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영혼만 건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몸도 세상의 질서로부터 건짐을 받은 것이다. 그것을 바울은 몸의 구속이라고 말했다.
(롬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양자될 것”은 “휘오데시아”(υἱοθεσία)인데 명사이기 때문에 “양자될 것”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양자 됨”이라고 번역을 해야 한다. 칼빈을 비롯한 거의 모든 신학자들은 양자가 되는 것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의 몸이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는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틀린 것이다. 선행구절인 15절에서는 우리가 이미 양자가 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양자 됨을 기다리는 것은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다. 몸의 구속은 몸도 죄와 세상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이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살리시리라”는 “조오포이에오”(ζωοποιέω) “살게 하다”(make alive)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죽을 몸”이라고 번역을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드네토스”(θνητός)는 형용사이지 동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죽은 몸”이라고 번역을 해야 한다.(1) 하나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 믿는 이 안에 들어와 계시는 이유는 죽은 몸을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활을 공유(共有)하게하기 위함이다. “기다리느니라”는 “아페크데코마이(ἀπεκδέχομαι)인데 현재분사로 지금 항상 기다리는 것이다. 만일 학자들의 말과 같이 몸의 구속이 재림 이후에 일어난다면 그것을 지금 항상 기다린다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우스꽝스러운(ridiculous) 일이다.
(1) 저자 주(註) : 같은 단어를 쓰고 있는 롬 6:12, 고후 4:11, 5:4, 들도 공히 형용사를 미래시제의 동사처럼 번역을 해 놓았다. 로마서 8장 23절의 “양자 될 것”이라는 번역도 같은 오류를 범했다. 이것은 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내세신앙(來世信仰)과 연관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내세신앙이 이단들 출현하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잘못된 종말론이 나오게 된 원인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