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자백함에 대하여

 

최근에 어느 목사님의 가정에서 목사님이 간음죄를 자백함으로 가정이 회복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 목사님은 마음으로 음란한 생각을 한 것까지도 남김없이 사모님에게 자백을 하고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가정과 교회가 거룩해지고 평안해 지는 은혜를 받았다. 두어 달 전에도 수도권의 어느 도시에 있는 교회 목사님이 교회에서 간음죄를 자백함으로 가정과 교회가 성령으로 거룩해지는 부흥이 일어났다.

죄를 자백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회개하는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받은 사람만이 사람에게도 지은 죄를 자백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과 교회에서 죄를 자백하는 것은 자의나 타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하심으로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자기가 행한 악한 행실을 내놓고 용서를 구하는 것을 정직한 일이라고 칭찬하고 그것을 아름다운 미덕으로 여긴다. 50여년전의 일이지만 버스차장이 있을 때의 일이다. 버스에서 내릴려고 하는 어느 중년남자와 버스차장간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 때에 차장이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면서 한말이 그 사람이 돈이 없다고 사정을 보아 달라고 했다면 내가 봐줄 수 있는데 돈을 냈다고 거짓말을 하니 괘씸해서 싸웠다고 했다. 세상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에서 죄를 자백하는 것을 가지고 시비 거리로 삼는 것은 무식해도 한참이나 무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긍휼히 여겨 주실 때에만 죄를 깨닫는 은혜를 주시고 회개하는 은혜를 주셨다. 교회사를 보아도 교회가 항상 언제든지 회개하고 거룩한 부흥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특별한 때에 교회가 회개하고 죄를 자백함으로 거룩해지는 부흥이 임했다.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요 그것은 개인에게나 가정과 교회에 엄청난 축복을 불러 오는 것이다.

사무엘의 시대에 이스라엘이 미스바에서 모여 회개하고 그들이 우상을 섬긴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음으로 교회의 거룩함이 회복되었을 때에 블레셋으로부터 해방되어 나라가 부강해지는 일이 일어났다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회개와 죄를 자백하는 거룩한 부흥은 영국을 세계 최강대국의 자리에 올려 놓았으며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거룩한 부흥은 미국으로 세계 패권국가가 되게 하였다. 그 보다 앞서 16세기에 일어난 네델란드의 거룩한 부흥은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어 17세기에 해양의 패권을 장악하여 모든 부가 네델란드로 들어와 세계에서 최강의 부국이 되는 일도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들이다. 하나님은 죄를 가지고도 회개하지 않는 교회가 속한 나라에게 복을 주신 적이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다.

우리나라에 있었던 1907년을 전후한 회개와 거룩한 부흥도 나라는 빼앗겼지만 교회의 거룩함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였으며 평양의 그리스도인이 운영하는 메리야스공장의 제품이 일본의 제품보다 뛰어나 화제가 된 적이 있었으며 피난을 나온 이북의 상인들이 노점상을 하면서 순식간에 남대문 상권을 장악한 것도 회개를 하는 교회의 거룩함과 상관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가정이 잘못되고 자녀들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가며 세상일이 잘 안되고 형통하지 못하고 자신이 죽을 병에 걸리게 될 때에 아 이것이 아니구나 싶어서 고통 하는 중에 주님이 회개의 영을 부어 주셔서 회개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또 사람들이 자신이 죄를 감춘 것 때문에 가정을 불행하게 하고 자녀들을 망하게 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는 일들이 지금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죄 용서함을 받으며 죄를 자백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은 누구든지 본능 적으로 자기 죄를 감추려고 하지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범죄자는 수사기관에서 고문을 한다 해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면서도 자기 죄를 감추려고 애를 쓴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이나 교회에서 죄를 자백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는 것을 공개죄자백이니 무엇이니 하면서 폄론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악한 일이다. 죄를 다루시는 이는 오직 영원하신 심판장이신 하나님 한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기의 죄나 남의 죄나 다룰 수 있는 면허를 주신 적이 없다. 남이 지은 죄를 말하고 다니는 것도 악한 일이요 어떤 사람이 스스로 죄를 자백한 것을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여 퍼뜨리는 것도 마귀적인 일이다. 죄를 자백하는 것을 해야 된다 아니 된다라고 말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를 거스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일이 된다. 그와 같은 일들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공개죄자백이라는 말은 성경에도 없는 말이며 나도 어느 누구도 말한 적이 없는 괴이한 말이다. 그것은 성경도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으로부터 나온 악한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공개와 비공개라는 말이 성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에게는 빛과 어두움이 일반이며 차이가 없다.

 

(139: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난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만이 아니라 관절과 골수에 사무친 죄까지도 다 드러내는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한 것이다. 그의 말씀으로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과 같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는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숨길 수 없으며 교회와 가정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거기서도 죄를 숨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와 같이 말하고 행한다.

주님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행위를 꾸미는 외식을 더러운 죄라고 책망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것이며 이중적인 것이며 사람에게만 옳게 보이려는 가증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을 구분하여 행동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흑암에 속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다윗이 지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은 그가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하시려고 그에게 나단선지자를 보내셨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다윗는 선지자에게 자기의 죄를 자백했다.

 

(삼하 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다윗이 나단에게 죄를 자백한 것이 사람에게 한 것인가?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자백함으로 나단에게 자기 죄를 말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단도 즉각적으로 하나님이 죄를 사하신 사실을 그에게 말한 것이다.

다윗이 은밀하게 죄를 자백했는가? 아니다. 그는 나단에게 자기의 죄를 자백했고 그사실은 오고 오는 세대가 알도록 성경에 기록되었다

나단의 말에 의하면 그는 죄를 자백했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 하나님은 그가 회개하지 않고 죄를 시인하지 않으면 그를 죽이려고 하셨던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기가 싫고 죄를 자백하는 것을 거부함으로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가 왜 몹쓸 병에 걸렸는지 왜 부도가 나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왜 자신이 일찍 죽고 자녀들이 자기 눈앞에서 죽고 가정이 망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다.

죄를 자백하는 것은 호몰로게오같은 것을 말하다”, “동의하다라는 뜻을 가진 현재동사이다. 곧 그리스도인이 자기 안에 내주하시는 거룩하신 영이신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에 그에 동의를 함으로 즉시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이 사실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안에 성령이 오셔서 거하시는 이유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죄를 책망하시고 깨닫게 하시기 위함이다.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성령을 받았어도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성령을 소멸시킨 사람은 성령의 책망이 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는 회개의 영이신 성령이 더 이상 역사하지 않음으로 죄를 깨닫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회개하지 못하며 죄를 시인하지도 않기 때문에 더러워진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주안에 거하는 생활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을 자주 잃어버리며 그 결과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생활에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하고 세상 죄인들과 같이 하나님이 없이 힘들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평안을 잃어버린지 오래 되어 깜짝 깜짝 놀랄 일들이 수시로 터지는 불안한 삶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을 높일만한 이유가 자기의 생활속에 없기 때문에 거짓말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요 찬송도 거짓으로 노래하고 기도를 해도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다. 그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설교를 하든지 봉사를 하든지 헌금을 하든지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조차도 그들에게 하나님은 없다.

죄를 시인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해주시는 분임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죄를 자백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와 있다. 목사든 교인들이든 상관없이 그들은 자기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이 적그리스도이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일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만이 다스리는 사람과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듯이 그런 사람들이 목사들 중 에와 장로들 가운데 부지기수로 많이 있다. 그들은 주의 말씀대로 주께 속한 자들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며 그들은 입을 열 때마다 세상에 속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다.

 

(요일 4: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30여년전에 전도를 배우겠다고 온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주님이 회개의 영을 부어 주셔서 죄를 자백하는 거룩한 부흥이 일어났다. 그러나 교회가 회개의 영을 거부함으로 그들이 돌아가서 죄를 자백하고 교회 안에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던 마귀에 속한 세상 사람들로 부터 공격을 받아서 어떤 교회들은 깨어지고 어떤 가정들은 파괴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사실은 많은 교회들이 회복되었으며 많은 가정에 사랑이 회복되었다. 그 때에 목사들이나 교인들이나 부부사이의 사랑이 회복되어 급속히 가까워짐으로 집집마다 일곱 살 여덟살 터울의 늦둥이들을 낳는 일들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것도 사실이다. 진리는 항상 공격을 받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죄를 자백함으로 진리로 승리한 가정과 거룩한 부흥을 맛보는 교회의 열매들이 많이 나타났던 것이다.

만일 어떤 교회가 죄를 자백함으로 문제가 일어나고 어떤 가정이 파괴되었다면 그것은 죄를 자백함으로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 이미 교회와 가정에 들어 와 있는 죄로 인하여 그 교회는 이미 파괴된 교회이었고 그 가정도 벌써 죄로 인하여 병든 가정이었다. 언제든지 죄를 짓고 그것을 감춤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지 회개하고 죄를 자백함을 문제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마귀의 왕국이 흔들린 것이다.

그 때에 마귀가 다스리는 교회를 더 이상 마귀가 다스리지 못하게 되자 죄 자백을 하지 못하도록 모든 교권과 악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회개하지 못하도록 극렬히 훼방을 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죄를 자백함으로 교인들의 가정에 풍파가 일어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와 목사들이 훼방을 했으며 더 궁극적으로는 자기 속에 같은 죄가 있는데 그것이 드러나면 더 이상 목회를 못하고 교회를 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죄를 자백하는 것을 훼방함으로 공격하여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일들을 한 것이다. 그것은 진리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연약한 믿음이 그들로 망하게 한 것이다. 

미국의 대도시에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 한인교회목사가 죄를 자백하는 것을 극렬히 공격을 했었는데 그는 결국 교회 과부집사와 간음한 죄를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숨기려고 그런 악한 일을 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그는 결국 그의 죄가 드러나서 교회에서 쫓겨났다. 하나님은 스스로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죄가 드러나게 하신다. 그는 회개하기를 끝내 거부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쫓겨난 것이다. 그 후로 사모는 재봉공장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 사모님은 힘들게 살면서도 은혜를 사모해서 예수전도협회의 집회에 꾸준히 참석을 했지만 그 목사는 사모의 계속된 권면을 뿌리치고 결국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 가룟 유다의 길을 가고 말았다. 그는 교회가 무섭고 교인들이 무서워서 죄를 자백하지 못하고 용서 받지 못한 것이다. 그는 사울왕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사람을 두려워 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죄를 자백하는 소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버림을 받은 길로 간 사람들이 국내외에 즐비하여 일일이 말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오래전에 은혜를 받고 전도를 하던 대도시의 목사들 가운데 분쟁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그들은 교회에서 죄를 자백해야 하느냐 안해야 하느냐를 놓고 다투다가 결국은 둘로 갈라졌다. 그들 중에 죄를 자백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개척교회목사가 있었다. 그의 사모는 지독한 율법주의자이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외식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 교인 몇 명 안 되는 그 교회를 27년 동안 다닌 집사가 그 교회를 나와서 거룩한 교회를 체험하면서 그의 안에 있던 귀신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와 같이 회개하지 않고 죄를 숨기는 교회는 귀신의 처소가 되는 것이다.

 

(18: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것은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이용하여 먹고 살기 위해서 교회를 하고자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한 결과로 나타난 아주 슬픈 일인 것이다.

그것은 회개를 거부하는 악한 일이다. 어떤 무식한 목사들은 구원을 받을 때에 한번 회개를 했으면 되지 무슨 회개를 또 하느냐고 어리석은 말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도 모르는 사람들이요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사실이 있는지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성령이 임하면 그의 종들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예언했다.

 

(3:2)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3: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여기서 말씀하는 레위 자손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음으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된 모든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회개에는 두 가지 회개가 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 때에 하는 회개와 예수를 믿는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죄로 더럽혀졌을 때에 회개함으로 다시 새롭게 되는 것이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이나 주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회개하라고 외친 것은 구원받을 때에 회개를 말하는 것이다.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6: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에게 주님이 회개하라고 명하신 것은 구원받은 교회가 죄를 짓고 잘못된 길을 갈 때에 회개를 해서 잃어버린 거룩함을 다시 찾게 하는 것이다.

주님은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 중에 에베소교회와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등 다섯교회에 회개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핍박을 받고 있는 서머나교회와 인내의 말씀을 잘 지키는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하여는 회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도 죄를 지으면 회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날마다 짓는 죄를 씻는 속죄생활을 명하신 것이다. 날마다 회개하지 않고 속죄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밟는 것이요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곧 그리스도의 피가 효력이 없다고 고집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요 죄를 깨닫게 하여 회개를 시키시는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다.

 

(10: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그들은 하나님의 어린양의 원수의 반렬에 들어간 자들이요 하나님은 그 아들의 원수를 그들에게 갚아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해 놓고 계신다.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성경에도 교회역사에도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속에서도 성령의 역사로 죄를 자백함으로 개인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가정에 사랑이 회복되고 교회의 거룩함이 회복되는 많은 열매가 끊임없이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가 있는 역사를 단순히 말로서 훼방하는 것은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할 죄에 빠지는 것이다.

예수전도협회가 죄를 자백하는 진리를 전하는 것을 훼방하여 공개죄자백이라고 비방을 하는 사람들이 협회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공격을 하는 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며 마귀의 역사이다. 더욱이 무식한 사람들은 그로 인하여 협회를 가리켜 이단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고 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생각이 없는 무식함으로부터 온 실수라고 본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말로서 말을 하고 비판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주님의 역사로 나타난 열매를 보고 그 열매로 말을 해야 한다. 열매로 말하지 않고 말로서 말하는 사람의 악함과 그들이 당할 비극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12: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만일 누가 죄를 자백함으로 열매가 나타는데도 그것을 훼방하는 것은 성령의 일을 훼방하는 것이며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죄라고 했다. 그리고 그 죄는 영원히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영원한 죄이다.

 

(3: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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