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에 대하여

 

해마다 교회마다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데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송구영신이라는 단어자체가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이 없는 불신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송구는 옛것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영신은 새것을 환영하고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송구영신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송구영신의 주체가 사람이 되는 것이 믿는 우리에게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그런 말들과 행사를 하는 이들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하고 싶다.

 

송구한다고 영신이 되는가?”

영신을 하면 송구가 되는 것인가?”

 

그동안 해마다 송구했는데 그렇다면 옛것이 다 떠나가고 하나도 남지 않아야 되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또 해마다 영신을 했는데 새것은 다 어디로 갔는가? 여전히 옛것에 시달리고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분명한 것은 사람에게는 옛것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리고 새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더더욱 없는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을 보내기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새사람을 재창조하시기 위하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저를 믿는 자마다 새 피조물이 된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이전 것은 지나간 것은 옛사람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시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2:20)

이렇게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능력으로 죄인 된 옛사람을 보내버리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이며 그의 다시 사심의 부활의 권능으로 새사람, 곧 새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송구영신은 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며 이미 이루신 일이다.

날만 새날이고 해만 새해이면 무엇이 유익한 것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내가 새것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나를 새 피조물로 만드시기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지긋지긋한 나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혀 주신 것이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는 진정한 송구영신의 은혜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이나 교회 안에 무지한 자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육신으로 살기 때문에 송구도 안 되고 영신도 안 되어서 기분이라도 그렇게 느끼고 싶어서 그런 것을 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불신앙이며 참으로 공허하고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일시적인 기분이고 느낌이지 사실도 현실도 될 수 없는 공허한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세상 불신자들도 그렇다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악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만에 하나라도 그와 같은 사람들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교회가 또는 어떤 목사나 회계장로가 헌금을 거두는 데에 그런 것들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서운 일을 하는 것인가? 또 일반교인들도 그런 것으로 위로받기를 구한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것이며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제출 할 수 있기나 하겠는가?

한 해의 마지막 시간과 새해의 첫째 시간에 깨어서 잠을 자지 않고 있어야 복을 받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이다. 그것은 믿음이 없이도 육체의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누군가가 자기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야 복을 받는다면 그것은 믿음으로부터 오는 복이 아니다. 믿음은 안수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은 기도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말씀으로부터 오는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는 그 말씀에 순종할 때에라야 입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많은 사람들과 같이 감정에 쏠리고 느낌과 기분을 구하는 것을 마귀는 이용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4:9-11)

 

여기서 해를 삼가 지키니에서 는 히브리어 에니아우토스로 일 년 또는 기원이나 연대를 말한다. “삼가지키니는 히브리어로 파라테레오인데 테레오는 지키다 거하다 계속하다라는 단어이며 파라는 가까이서 곁에서라는 뜻의 단어와 결합이 되어 자세히 관찰하다또는 주의하여 지키다라는 말이다. 그것은 특별히 의미를 두어서 중심으로 지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를 삼가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해를 믿는다고 보아야 한다. 일 년. 365일은 다 같은 날이다. 어느 날 하나 소홀히 해야 할 날이 없으며 또 어느 날이라고 특별히 하는 것은 그 날을 믿는 것이다.

부활절을 성심껏 지키는 자들은 예수 부활의 권능을 믿고 체험하기보다는 부활절을 믿는 사람들이다. 크리스마스를 요란하게 지키는 사람들은 그날의 주인공인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날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우상숭배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송구영신을 잘 지키는 사람들도 날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날이 자기들에게 복을 준다고 생각을 하는 미신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바울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없는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곧 율법에 매이는 것이며 그것은 그 율법을 중시하고 주장하고 사람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책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 어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자기는 안수기도하기를 원치 않으나 해당교회 담임목사가 교인들이 원한다고 귀띔을 해주면 교인들이 원하니까 할 수 없이 안수기도를 해준다는 말을 나에게 개인적으로 한 적이 있다. 이를테면 그와 같은 것이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고려되지 않는 인간의 정욕으로부터 나온 율법의 행위요,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고자 함으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종이 되는 일을 한 것이다. 그와 같은 일들을 가리켜 바울은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라고 말한 것이다.

또 어느 누가 교인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기도를 하는 행위를 통해서 교인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헌금을 거두기 위해서 그 일을 한다면 그것 또한 피차에 종노릇을 하는 것이다.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기도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 까지도 주님은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히 하는 것이지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 기도를 해주는 사람은 진실하게 해도 혹 기도를 받는 사람이 미혹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기도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하고 그들은 벌써 사람들에게 자기상을 받는 자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6:5-8)

 

또 주님은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에게 복을 먼저 구하지 말라고 하셨다. 복을 먼저 구할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31-33)

 

이 말씀은 복을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복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없는 죄인들은 저주아래 있기 때문에 복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도 저주의 생활에서 복된 생활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복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의 뜻은 복을 먼저 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먼저 구하지 않고 복을 먼저 구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복을 구하는 아주 악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먼저 구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먼저 구하면 그래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친밀해 지면 그가 주시는 모든 복은 혹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라는 말씀이다.

이방인들은 받을지 아니 받을지도 모르는 복을 구하기 위해 열 시간 이상을 걸려서 정체로 꽉 막힌 고속도로를 달려가서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 복을 달라고 빌고 돌아오지만 복을 받는다는 확신도 새해에는 잘된다는 보장도 받지 못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구할 줄 모르는 무지하기가 짐승 같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자기 잘되는 복만을 막연히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 지도 아니 주실 지도 모르는데 교회에 가서 헌금봉투를 준비해서 밤을 새면서 자기 차례를 기다려 안수기도를 받아도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 확신도 없이 막연히 잘 되겠거니 하는 일방적인 희망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교인들이나, 앞에 말한 동쪽으로 가서 떠오르는 해를 보고 빌고 돌아온 불신자들이나 복을 먼저 구하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먼저 구하지 않은 것은 똑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셨던 십계명의 열 계명 중에 첫 번째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20:3)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게 복을 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것에 복을 빌고 구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다. 인간이 저주 아래 있고 복을 잃어버린 것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되었기 때문이며 죄인은 하나님이 없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인에게 잃어버린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만일 다른 것으로 복을 구하면 그것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더 멀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또나 여러 가지 복권을 사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심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부정하는 불신앙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옛이스라엘의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더러운 죄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멸망을 재촉하는 것이다. 


(고전 10: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들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반드시 거짓선지자들에 의하여 충동됨으로 행하여 지던 것들이다.베드로는 그런 사람들이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벧후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한다는 말은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멸망하는 것을 스스로 재촉하고 앞당긴다는 말이다. 그 옛날 가인이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하고 땅의 복을 하나님께 드리밀고 드리는 자랑을 하다가 악을 행하여 저주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믿음으로 받은 영생복보다도 먹고사는 물질복을 더 중히 여긴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노아시대에 사람들도 이와같이 스스로 멸망을 재촉한 사람들이며 롯의 처가 온가족의 멸망을 재촉하다가 자기 혼자만 스스로 소금기둥이 되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허다한 많은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고 우상을 섬기다가 그렇게 스스로 멸망길을 재촉하면서 망하여 간 사실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어렸을 적 곧 1960년대나 또 그이후로 80년대 90년대까지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없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도 없고 믿음의 선진들도 알지 못하는 예배가 슬그머니 교회안에 들어 와서 자리를 잡은 것이 송구영신 예배인 것이다. 이것은 원수마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거짓선지자들을 통해서 교회안에 그의 일을 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복 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복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기복신앙이요 우상숭배이며 미신을 믿는 믿음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이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서지자들에 의해서 교회안에 들여 온 것이며 돈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자들에 의하여 잘못 생긴 것이다. 이것은 마땅히 그리고 우선적으로 신속히 없어져야할 것이다.


바울은 만일 식물로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고백을 했다.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것들이다
.

    

혹시 만에 하나라도 교회안에서 단 한 영혼이 송구영신예배를 하나님을 뒤로하고 돈을 구하고 더러운 세상복을 구하기 위해서 미신적인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시험에 빠진다면 어떤 진실한 우리는 이것을 영원히 폐기해야할 이유가 충분히 가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 모두가 몰라서 잘못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미신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송구영신 예배가 주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에게서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예전교회는 올해부터 송구영신 예배를 하지 않고 일체의 안수기도도 없으며 새해아침에 새로운 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으로 신년예배를 드리기로 한 것이다. 얼마나 깨끗하고 정결하며 거룩하고 또 바른 일인가?


주님 께서 그동안에 잘못된 모든 것들을 가르쳐 주시고 일깨워 주시는 은혜에 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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