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여름전도여행 둘째 날에 어느 장로님이 강단 위에 올리신 헌금 봉투에 쓰여 있던 감사의 제목이다.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은혜 내려 주옵소서.”

 

첫날 도착하면서 나를 만난 그 장로님은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그의 아픔을 쏟아 내었다. 이제 80 고개를 남겨 두고 있는 장로님은 얼마 전에 노인성 난청으로 보청기를 해 넣었다고 한다. 보청기를 한 몇몇 목사님들의 예를 들면서 자신은 가장 비싼 것을 했는데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이전에 사위 되는 목사님이 보청기를 해 넣는다는 말을 내게 해주었을 때에 혹시 항생제를 많이 먹은 부작용이 아닌가를 내가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 장로님은 한 삼 년 동안 끊임없이 감기를 앓으시면서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복용을 해왔다고 한다. 주님은 내가 그 장로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에 나에게 항생제의 과다 복용이 노인성 난청의 원인이 된 것을 알게 하셨다. 첫날 저녁에 준비할 것도 많은데 그분은 나를 붙잡고 한참을 하소연하시며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오래 전에 은혜를 받고도 은혜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헌금 제목을 그렇게 써서 강단에 올리신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이 노경을 만난 사람들에게 참으로 큰 슬픔을 가져다준다. 항생제를 분별없이 투여한 의사를 나무래 보았자 한번 잃어버린 청력은 다시 돌아 올 리가 없다. 첫날 저녁집회를 끝내고 만난 그분의 사위 목사님에게 이렇게 된 것이 담임목사가 영혼을 전적으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해주면서 나는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어 버렸다.

이번 여름전도여행은 이렇게 전과 다른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이번 여름 전도여행은 마태복음 전도여행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될 만한 것이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10:7-8)

 

그 옛날 전도여행 때 일어났던 귀신이 쫓겨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어린이 대에서는 강력한 회개의 영이 역사를 하면서 다운증후군으로 고생하던 22살 청년에게서 귀신이 나가고 고침을 받아 눈빛이 달라지는 역사도 일어났다. 오래전에는 전도여행을 하면서 해마다 귀신이 쫓겨나가는 역사가 일어났었다. 주님이 마태복음 10장에서 전도를 내보내는 제자들에게 명하신 역사가 그대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그런 역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오히려 간사들 중에서도 간질병 든 사람이 있었는데 약을 의지함으로 고침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다 내 책임이지만 돌아보면 간사들 중에도 소수이지만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마음으로 훈련생들을 섬기지 못하고 군림하는 자세를 취하였던 것 같다. 또 어떤 이는 훈련을 받고 믿음으로 살아 보겠다는 교인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고 나에게는 감쪽같이 숨긴 채 온갖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도 있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난 일에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이 이 말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협회 안에서 일어난 일은 다 내 책임이며 내가 기도하지 않고 내가 영적으로 풀어지고 나태했으며 내가 마귀에게 속아서 나 자신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으며 주께서 죄를 깨닫게 하시는 대로 회개하여 용서하심을 받았다.

지난해 후반기부터 주님은 속죄의 은혜의 말씀을 집중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기 시작하면서 거룩함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협회의 영적인 환경이 깨끗해지고 몇몇 교회들이 구속과 속죄를 구별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중에 월요성경학교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느 분이 나에게 말해주기를 이전에는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에 즉시 몇몇 사람들이 기도를 멈추고 세상 이야기를 꺼냄으로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는 분위기를 다 망가트렸는데 얼마 전부터는 하나같이 탄식하고 기도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말하면서 그것 때문에 아파하고 근심하는 진지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 자신이 지난해에 목사님들과 하던 농구를 끊고 개인적으로 혼자서 등산을 하면서 지난 1월부터 영어로 낭독하는 마태복음을 일천 번 이상을 듣고 또 읽기도 하면서 마태복음 속에 감추어 있던 놀라운 비밀들을 주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에스겔서를 목사님들과 같이 연구함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을 섬겼던 그때 당시의 교회의 현실과 오늘날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면서 세상에 빠져서 살고 돈을 더 사랑하는 교회의 현실도 우리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는 중에 연초에 어느 목사님이 지나간 4년 동안 아파트 동대표를 했다는 소식과 어떤 두 분의 젊은 목사님들이 박사학위를 시작했다는 말은 나 개인적으로는 이 사역이 이렇게 끝나는가보다하는 위기감으로 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지는 일들도 있었다. 지난 1월부터는 목사님들에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사위들은 그날에 소돔이 멸망한다는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지만 오늘날 목사님들은 주님이 이 땅에서 직접 하신 말씀들을 농담으로 여긴다는 말을 자주 함으로 압박을 쉬지 않았다. 또 이십여 년 동안 전도하기를 쉬지 않은 목사님에게는 공개적으로 질문하기를 주님이 전도하라고 했습니까?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까?” “주님이 전도하라고 했습니까? 변화되라고 했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여 괴롭게 하기도 했다. 그는 협회를 그만둘까 하고 생각했었다는 것이 후문이다.

그러면서 최근에 주님이 일하시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은 목사님들 사이에서 아무개 목사가 변했어요”, “아무개 사모가 변했습니다라는 말을 쉽사리 듣게 되는 일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도하기를 이번에는 마테복음의 말씀과 같이 하늘의 권능이 나타나는 전도여행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병이 고쳐지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역사가 그대로 나타나는 전도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첫날밤은 주님을 좇는 생활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씀이었다.

 

부르심 좇음 거함

 

이와 같은 순서로 이루어진 제자들의 생활을 말하면서 부르심을 받고도 주를 좇지 않는 생활의 위험과 악함에 대하여 주님이 말씀을 주셨다. 아담이 범죄 함으로 사망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으로 말미암아 온갖 저주들 곧 가난과 질병과 전쟁과 모든 악한 것들이 온 것을 말했다.

 

사망 저주 심판

구속 생명 축복(하늘나라 생활)

 

내가 어려서부터 들어 온 교회 안에서 하는 거짓말 중에 가장 최악의 것이 예수 믿으면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라는 말이었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구원해주심으로 구속함을 받아서 영생, 곧 하늘나라의 생명을 얻으면 즉시 들어가서 사는 하늘나라의 생활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했다. 영생을 얻고도 아직도 개인과 가정에 저주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것은 하늘나라의 생활을 살지 않기 때문임을 역설했다. 곧 주를 좇아서 날마다 사는 생활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기 전과 방불한 생활을 사는 것을 강조했다. 복음은 말이 아니라 주님을 좇고 따르는 생활의 본을 보여 주는 것이 복음이며 그래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전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3:17)

 

복음은 능력이고 큰 확신이며 성령으로 전해지는 것을 말씀을 들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살전 1:5)

 

사람됨이 복음이지 말이 아니고 지식이 아니라는 말씀을 전했다. 저녁집회가 끝나고 강력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몇몇 분들이 나를 찾아와서 끌어안고 울면서 잘못 살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분들 중에 한분은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인데 미국에 있는 세 자녀들에게 즉시 울면서 고백하면서 아빠가 본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했더니 자녀들에게서 답이 오기를 아니야 아빠는 우리에게 정말로 좋은 본이 되었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서 내일 새벽기도 때문에 여러 가지를 준비해놓고 잠이 들었다. 주님은 다섯 시에 나를 깨우시더니 어젯밤에 준비했던 말씀과는 전혀 다,른 말씀을 주시면서 새벽에 전하라고 하셨다. 세례요한에 관한 말씀이었다. 마태복음 3, 11, 17장의 말씀을 가지고 단 육 개월을 주의 앞에 보내어 전하고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목베임을 당한 요한에 관한 말씀을 전하면서 그 때에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라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생활 속에서 주님을 임의로 대우한 죄를 회개하자고 했을 때 어느 누구 하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회개의 영이 임하여 각자 주님을 임의로 대우한 죄를 회개하였다. 시간마다 말씀을 전하고 기도회를 하면서 병들었던 심령들이 점차 살아나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대장들이 두 가지 생명에 대하여 가르치는 시간을 가지고 구원을 받았는지 피차에 확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오후에 전체 기도회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전도를 나갔다. 처음 나간 전도지만 예수를 믿은 지 일 년 남짓밖에 안 되는 어느 분은 준비된 영혼을 다섯 명이나 건져가지고 돌아 왔다. 둘째 날 새벽기도회는 말씀을 두 시간 십 분 동안이나 전했다. 내 여식(女息)이 낮 집회를 하는 것 같았다고 나에게 말해주었을 정도이다. 주님은 교회안의 생활은 나눔(sharing)이며 교회 밖의 생활이 믿음으로 사는 생활(living)이며 교회 밖에서 믿음으로 산 생활을 가지고 교회에 와서 서로 나눔을 가지는 것이 교회생활이라고 가르쳐 주셨으며 교회 밖의 교회 생활이 없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교회 생활이 가짜이며 필연적으로 사람에게나 옳게 보이는 외식하는 믿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가 임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인 것처럼 살던 속임수에서 벗어나는 은혜를 받았다. 주 안에 거하는 것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이지만 교회 안에서만 사는 것은 화분에 심긴 것과 같아서 사람이 물을 주면 살고 사람이 물을 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는 잘못된 믿음으로 사는 것인 창백하고 파리한 생활에 대해 말하고, 일상생활에서 주님을 좇아서 사는 생활이 세상의 빛으로서 착한 행실을 나타내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율법주의자가 되어 누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를 따지지만, 주님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의 죄가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제자들에게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사람은 죄를 보지만 주님은 죄인을 보시며 사람들은 고치지도 못하면서 남의 죄를 따지고 말하려고 들지만, 주님의 관심은 죄인을 구원하심으로 죄의 문제를 끝내심이 곧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심으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게 하셨다.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보는 자는 남의 죄를 주목하는 율법주의자이지만 자기 속에 들보를 깨닫는 것은 스스로 죄인 됨을 깨닫는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티는 죄요, 들보는 죄인을 가르키는 것이라는 이전에 어떤 주석 책에도 없는 놀라운 깨달음을 들려주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인 됨을 제쳐 두고 남편과 아내와 부모와 자녀들의 죄를 문제 삼았던 율법주의자임을 아파하고 고백하며 울면서 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만 달란트 탕감받은 죄인이 구원의 은혜를 받고도 남의 죄 하나하나를 용서하지 못했던 악한 종의 아픔을 가지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모든 것들이 구원받은 의인이 날마다 짓는 죄를 속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속의 은혜를 잃어버리게 된 것과 나 같은 죄인을 구속하신 놀라운 사랑을 잊어버리고 남을 정죄하는 재판관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 이유가 속죄 생활이 없었기 때문임을 알게 하셨다. 예수를 믿어 구속함을 받은 의인에게는 속죄가 생활이고 생활이 속죄하는 것임을 깨닫고 믿는 은혜를 주셨다.

마태복음 1928절에서 세상이 새롭게 되는 것은 신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주의 재림의 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하심의 때라는 사실을 처음 듣고 놀라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세상이 새롭게 되는 것은 팔링게네시아로서 재창조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 때 믿는 자들이 주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한다는 말은 성도들을 사사(師司)함으로 의로 교육하고 가르치고 바로 잡아 양육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요한계시록 16절에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말이 번역이 잘못된 것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복수로 된 나라들과 제사장들이 원어에 맞는 것인데 우리말 번역은 둘 다 단수로 번역을 했고, 영어성경은 흠정역만 빼놓고는 나라와 제사장들(a kingdom and priests)이라고 번역함으로 나라는 단수로 제사장들은 복수로 해놓았다. 이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은 교회전체주의로부터 나온 것으로 각사람 속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각 사람 속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임하여 성령이 성도 각 사람을 다스리는 개인 속에 임하는 하늘나라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리를 왜곡하는 심각한 것이 되는 것이며 캐톨릭 교회가 성도들을 다스리는 것이 하늘나라인 것처럼 오해하게 하기 위한 마귀의 술수인 것이다.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이나 교회가 성도들을 다스리고 성도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정체이다. 교회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만 다스리시고 성도 개개인도 그의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각기 다스리시는 것이 각 사람에게 임하여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이 하시는 일이며 그것이 각 사람에게 임한 하늘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사도행전 18절에서도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에서 성령을 말하는 하기오스 프뉴마는 단수이지만 너희에게인 휘마스는 복수이다. 그리고 임하시면인 에펠코마이도 단수이다. 그 말은 성령을 받는 성도는 여럿이지만 각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은 개인적인 사건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가 각자에게 임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지막 날 새벽 시간에도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주셨다. 히브리서 1031절에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 진저에서 빠져들어 가는 것인 엠핍토라는 단어가 능동태로서 버림을 받는 사람은 자기가 능동적으로 그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아는 것은 충격이었다. 로마서 1122절에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엄위가 있다는 말씀에서도 넘어지는인 핍토가 역시 능동태로서 누가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며 또 하나님이 그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넘어지는 자리에 들어가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다는 말씀이다. 롯이 그랬고 삼손도 그랬으며 사울 왕과 솔로몬의 형인 아도니야도 그랬고 아도니야와 연합했던 요압 장군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은 평생을 다윗의 집에 충성하고도 마지막에 버림받는 비참한 길을 간다.

그런가 하면 요한복음 21장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주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고기를 잡으러 디베랴 바닷가에 갔던 제자들을 주님을 찾아오셔서 사랑을 확인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를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리니 다른 사람이 네게 띠를 띠고 네가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너를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베드로는 요한을 보고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주님께 물을 때에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 사람은 상관하지 말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심에 우리가 각자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살 것을 결단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마지막 날 전도시간은 길거리의 영혼들이 하나같이 순한 양처럼 되어서 전도자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역사가 나타났다. 길거리까지 거룩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휴가가 안 되어 마지막 날에만 참석을 한 한 가족은 단 하루 만에 큰 은혜를 받고 전도도 나갔으며 그 가정의 가장되는 분은 내년에는 온전히 참석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지막 보고회 시간에 멀리 경남에서 온 자매가 오전기도회 시간에 귀신으로부터 해방되고 나와서 간증을 할 때 정말 삼십이 년이라는 그 짧은 인생을 힘들게 살아온 영혼을 보면서 다 불쌍히 여기고 울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고 천국에서 만나보자를 부르면서 다 한 덩어리가 되어 울고 회개하고 사랑도 나누었다.

삼 년 동안 보이지 않았던 목사님이 오셔서 그에게 축도를 시켰더니 우느라고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듣지 못했지만, 협회를 잊어버리려고 했고 등지려고 했지만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게 해주셨고 오면서도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거나 박대를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과 두려움으로 내려왔는데 하나같이 다 따뜻하게 사랑으로 맞아 주고 변함없이 영접해 줌에 너무나 감사하다면 통곡을 하면서 축도를 하였다.

주님은 정말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오시면서 이제 준비하신 거룩한 부흥을 주시려고 하시는 열심을 우리에게 이 나흘 동안 나타내 보여 주셨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 교회 안에 각 사람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 교회로 오고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땅 끝까지 가서 주님의 권능으로 사는 교회 밖에서 사는 교회생활을 할 때에 교회가 부흥될 것임을 분명히 보여 주셨다. 정말 자격도 없고 죄만 짓고 율법주의자가 되어 남에게 상처만 주었던 나요, 또한 우리들이지만 주님은 여전히 날 부르사 죄를 없이 하시고 그의 품에 다시 안아 주심의 사랑을 모두가 확신하게 되었다.

참여 인원은 지난해보다 조금 늘어서 어린이 대와 봉사자들까지 220명이 참여하였으며 은혜를 받는 데서 제외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 보였다. 이와 같이 큰 은혜를 준비하셨다가 우리에게 부어 주신 주님을 찬송하고 또 찬양합니다. 또한 주님은 미국에 계신 어느 목사님께 기도 중에 감동을 주셔서 이번 여름전도여행의 식사비 일체를 담당하시겠다고 하시면서 미국 달러로 4,500불을 보내오셨다. 자신이 바울의 식주인 가이오와 같이 쓰임을 받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주와 그의 일군들인 성도들을 섬겨 주심에 중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 그렇게 미국에 있는 목사님에게 감동하심으로 곡식을 밟아 떠는 그의 일군들을 친히 먹이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참석해서 눈물과 땀으로 수고한 모든 분들과 참석하지 못했어도 각자 처한 곳에서 열심히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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