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인구소멸로 큰 위기를 당하고 있는 것은 온세계 나라들에게 조차도 떠들썩하게 알려진 사실입니다. 

소아과 의사가 생존이 어렵고 유치원과 어린이집들이 문을 닫으며 초등학교가 지방에서부터 폐쇄되고 지방에 있는 대학들조차도 문을 닫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일이 일어나는 데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교육비가 비싸고 자녀들을 돈이 없이는 기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오히려 엉뚱한데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떠들썩하게들 어리석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소멸이 되고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는 가정의 불화입니다. 

이것은 미국에서는 벌써 1950년대부터 일어났던 일입니다. 

부모들이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매일 싸우는 것 때문에 결혼을 아니하고 독신으로 지내는 미국인 친구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부모들이 사랑이 없이 서로 싸우기를 거의 매일같이 하는 가운데 자란 아이들은 "저렇게 살려면 뭐하러 결혼했나?"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래서 독신주의를 가지게 되고 결혼을 하지 않고 적당히 남녀간에 엔조이하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때에 가정에 사랑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지식도 아니고 방법도 아닙니다. 

어떤 상담하는 사람들이 자식을 가르는 방법과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본질에서 떠난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아야지만 사랑할수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누구를 사랑하겠습니까?


때로는 자식을 사랑한다 하여도 자기를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격을 상하게 하고 인권을 침해하기도 하는 또 다른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자식을 닥달하고 강압하는 일이 그런 일입니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하여 자식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딸을  의사가 되게 하였지만 아직도 자기 뜻대로 자녀를 압박하여 불행하게 하여 우울증 약을 먹고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도 최근에 들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삐뚤어지고 왜곡된 결과입니다. 

오늘날 자녀들 중에 그런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을 힘들어하는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식이 태어나기 전에 부모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항상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주님에게 책망을 받고 죄를 깨닫고 속죄하는 생활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죄까지도 가르쳐 주시는 성령의 책망하심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죄를 책망을 받을 때에 마음에 빛이 임하여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엡 5: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날마다 책망을 받고 날마다 회개하는 생활을 사는 것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것이며 빛가운데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거리낌이 없이 모든 죄를 사함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가정에서 먼저 스스로 낮아져서  받은바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자기 될 때에 가정다운 가정이 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속죄생활을 함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부부간에 사랑이 회복 되고 자녀들이 그사랑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이전에 전도훈련에 와서 서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부부간에 사랑이 회복된 가정에서 부모들이 서로 사랑이 회복된 모습을 보면서 빨리 장성하여 결혼하고 싶다는 자녀들의 고백하는 일도 허다하게 많이 있었습니다. 


망해가는 이나라를 살리는 유일한 길도 먼저 교회안에 있는 가정들이 회개하고 속죄생활을 함으로 거룩하여져서 사랑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방종교의 특징은 회개가 없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없는 종교에 회개가 있을리가 없습니다. 사람과 함께 사는 짐승들도 때로는 잘못을 뉘우치기는 해도 회개할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아버지인 사람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회개가 없이 짐승처럼 사는 것이며 때로는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회개가 없는 것은 교회가 아니며 그것은 이방종교와 같은 것이며 그것은 교회라기 보다는 그냥 회개할 수 없는 짐승들이 모여 있는 짐승의 우리와 방불한 것입니다. 

이전에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목사도 있었고 교단도 있었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교회에 회개의 씨조차 말라버렸습니다. 그 후로 전도도 안되고 교회도 안되고 나라도 흉악한 범죄들이 들끓게 되고 동성연애자들이 교회를 비웃듯이 대놓고 죄를 자랑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교회를 회개가 없는 짐승의 우리같은 교회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로 가득한 짐승의 우리같은 교회를 지키는 자들이며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양의 문이신 주님, 영원한 목자이신 주님을 위하여 문을 열어주는 문지기가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이 교회로 먹고 살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교회를 하는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절도와 강도들이었습니다.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요 10: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 10: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요 10: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회개가 없으면 가정도 동물적으로 결혼하고 본능으로 새끼를 나아서 정욕으로 자식을 기르는 짐승의 우리같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회개하는 길만이 오직 살 길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만나주실 날이 곧 오게 될 것입니다. 


(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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