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의 전도


 

오랜만에 만난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도 훈련받고 전도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에 아픔이 몰려온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고작 훈련을 받고 잠깐 동안 의식이 깨어서 전도한 것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말이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들려서 아프기도 하고 , 이분이 훈련받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구나하는 마음에서다.

 

많은 사람들이 훈련을 받고 그야말로 이 시대에 없는 기상천외한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결과 전도만 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파리하여 진 것이다. 수술 환자가 수술을 받은 후에 몸조리를 잘하고 회복을 잘해서 정상생활을 할 수 있어야 이전에 하던 일도 하고 직장에도 다시 나가서 일을 할 수 있다. 수술 받고 퇴원하자마자 일을 하면 곧 다시 병원에 입원을 하든지 아니면 다시는 회복할 길이 없이 죽음을 앞에 두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율법주의적인 가치에 깊이 빠져 있는 한국교회는 사람보다는 행위를 중시한다. 교회 안 에서 그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냐 주님을 닮은 사람이냐 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무슨 행위를 하였느냐 중요시된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19)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면 일을 시키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전도를 시키겠다고 하지도 않으셨다. 주님은 제자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일에 집중을 하셨다. 제자들과 생활을 함께 하고 인격과 마음을 나누는 일에 힘쓰시면서 제자들의 말과 인격을 고치시는 데에 주력하셨다. 그리고 말씀으로 그들의 생활을 거룩하게 했다.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3)

 

그렇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사역의 우선이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3:13-15)

 

주의 제자는 자기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셔야한다.

그리고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을 주님은 열두제자로 세우셨다.

 

그런데 열두제자로 세우신 우선적인 목표가 전도가 아니고 사역이 아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세우신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는 것이었다. 함께 있어야 제자들을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5-17)

 

주님과 함께 있어서 고침을 받은 사람들만이 전도를 할 수 있다. 그래야 세상의 빛이요, 소금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이 주님의 진실한 제자들이라면 이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나도 훈련을 받고 주님과 함께 삽니다.”

나도 훈련을 받고 주님과 함께 살아서 변화 되었습니다.”

 

주의 제자들 중에 가룟 유다도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주의 제자로 세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주님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64)

 

그리고 그는 결국 자기 선생님을 배반하여 파는 인격이 되고 말았다. 그의 믿음이 그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도 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동참했다.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실 때에도 순종하여 전도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그때에 가룟 유다만이 아니라 오늘날 주를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주님은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6:24)

 

그에게는 태어 난 것도 불행이요, 예수를 만난 것도 불행이요, 예수를 만난 것도 그를 따르는 것도 모두가 불행이 된 것은 전도를 아니 했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 있어 주의 제자의 생활을 살지 못하고 변화되는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무슨 설교를 듣고 무슨 일을 하고 무슨 희생을 하든지 주님으로부터 가룟 유다가 들었던 동일한 주님의 탄식을 들어야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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