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주님은 요한계시록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다른 것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그러나 마귀는 그의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고 번역에서 빠뜨리고 집어 넣는 일을 하고 해석으로 왜곡하는 일들을 수천년동안 주욱 행하여 온 것이다. 다니엘의 예언대로 중세 가톨릭은 성경본문을 훼손하고 때를 변개했다.

 

(7: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리고 그 거짓말에 근거하여 잘못된 종말론을 만들어 냈다. 현대교회는 아직도 그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지함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성경의 원문을 훼손한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 뉴턴의 연구의 결과로 그의 저술인 “Historical Account of Two Notable Corruptions of Scripture”라는 책에서 요한 157절의 말씀과 디모데전서 316절의 말씀을 훼손한 것을 밝혀 내었다. 그것도 번역단계에서 훼손을 한 것인데 번역으로 또는 해석으로 그들의 교리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한 부분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러므로 삼가 주의하여 원문을 살피고 또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서 성경을 일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번역이 잘못되고 해석이 잘못되었어도 또 마귀가 그런 일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행했어도 성령께서 주시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것들을 능히 간파하고 주님의 뜻을 알아 내는 은혜를 받는 것이다.

오늘은 주님이 감람산설교(Olivet discourse)중에 있는 말씀을 살펴 보고자 한다.

감람산 설교는 주님이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시기 위하여 붙잡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여 하신 말씀이다.

 

(2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4: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여기서 제자들은 세가지를 여쭙는다.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뜨리워지는 때에 일어나는 징조를 묻고 또 하나는 주님이 임하실 때와 다른 하나는 세상의 끝에 일어나는 징조를 묻는다.

      

(24: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이 질문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는 주님이 말씀하신 예루살렘성전이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아니하고 무너뜨려지는 AD 70년의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때를 말한다. 그리고 주의 임하심의 때는 곧 주님이 성령으로 제자들에게 다시 오시는 때를 말하며 세상 끝에는이라는 말은 이세상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대답하신 감람산설교에는 이 세가지가 정교하게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먼저 그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잘못된 종말론에 의하여 이말씀을 오해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이 지혜를 주심으로 이 것을 구분하여 밝히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슨일이 있어도 아버지의 말씀을 마귀의 술수로 잘 못듣고 오해함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의 대답하심에 관하여는 추후 이 말씀을 표로 분석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여기서는 한 가지만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감람산설교는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 그리고 누가복음 21장에 기록되고 있는데 그중에 마태복음 2432절이하의 말씀을 먼저 살펴 보기로 하자.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에스티. VIPA) 알라

(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말씀에서 33절에 괄호로 표시한 인자가는 원문에 없는 것을 불법적으로 삽입한 것이다.

마가복음 1329절에도 같은 말이 있는데 거기서도 인자가를 불법적으로 삽입을 해 놓았다. 그러나 영어 성경(KJV)에는 인자가라는 말이 없다. “그것이 문 앞에조차 가까운 줄 알라”(know that it is near, even at the doors.)라고 되어 있다. 마가복음 13장도 영어 번역본(KJV)에는 문앞에조차 가까이 있는 것을 알라라고 하면 ”near“”nigh“라는 단어로 말했을 뿐 같은 뜻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은 한 책의 말씀만 보면 안 된다. 다른 책의 같은 구절도 교차해서 체크(cross check)를 해야 하며 구약의 구절을 인용했을때는 구약의 구절도 확인을 해야 마귀의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서는 인자가라고 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로 되어 있다.

 

(21: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21: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21: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호 바실레이아 호 데오스) 가까운 줄을(호티 엥귀스 에이스, VIPA) 알라

(21: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21: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부분을 영어성경에는 “ye that the kingdom of God is nigh at hand.”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임한 줄을 알라고 번역을 해 놓았다. 그러므로 여기서 가까이 온 것은 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문앞에 이른이라는에서 이른에 해당하는 에스티라는 단어가 현재동사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에이스로 역시 현재동사이다. 다시말해서 나중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이일이 이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 때 당시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기 전에 주님이 보혜사 성령으로 다시오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비슷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여러번 말씀하셨다.

 

(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9: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9: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마태복음에서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이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이요 그것이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모든 일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사람들의 생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오순절에 각 사람의 육체속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도 하나님의 나라의 권능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에서 라오디게아교회에 하신 말씀도 하나님의 나라가 문밖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회개하고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이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생활을 사는 것이 그와 함께 먹고 마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번역하면서 누군가에 의하여 인자가라는 말을 삽입한 것은 이말씀이 전체적으로 주의 재림을 말한 것으로 속이기 위한 마귀의 궤계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했던 미국교회는 그런 것들을 믿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깊이 빠져 있는 교회이다. 그사람들이 번역의 단계에서 개입한 정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세대주의적인 전 천년설이 적그리스도와 대 환난과 짐승의 표를 가지고 교인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구원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미혹하는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살후 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살후 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살후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요한계시록 19장의 11-21절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마귀와 적그리스도들과 거짓선지자들을 잡아서 죽이는 자들이지 저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할 사람들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은 다 마귀의 역사요 속임수이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두려움이 없다. 오히려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두려워 하는 자들은 주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이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두려워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임이 틀림이 없는 것은 그들은 둘재 사망의 해를 받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더져지는 것이다.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으로 잘못된 해석으로 훼손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마귀와 그에 속한 사람들을 경계하여 그들의 악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자.

(*.154.70.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