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회가 몇몇 교단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알고 있습니다. 본 회가 외침전도만을 가르친다는 것과 지나치게 기성교회와 목회자를 비판한다는 점, 그리고 공개적인 죄자백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오해와 편견, 사실 왜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 회의 진의와는 전혀 다릅니다. 또한 분명히 지적할 것은 비록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본 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본 회를 이단이라고 못박게 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그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본 회의 훈련을 받은 일부 목회자나 성도들이 잘못 적용해서 발생한 현상적인 문제점이지 근본적으로 본 회 자체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귀 회의 요청에 따라 본 회에 대한 오해로 빚어진 부정적인 이미지에 대해 간단히 해명합니다.

1. 외침전도에 대하여
본 회는 평신도와 목회자를 대상으로 전도훈련을 실시해오고 있습니다. 훈련 과정에서 이미 우리가 믿고 고백하고 있는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관한 복음전도의 내용을 교육하고, 실제로 노방전도와 축호전도를 통한 현장 전도실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전도강의를 통해 경건한 삶을 통한 복음 전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회가 외침전도만 강조하고, 외침전도만 전도의 유일한 방법으로 주장한다는 항간의 이야기는 사실과 다릅니다.  
간혹 발생하고 있는 외침전도의 문제점은 본 회가 훈련하고 가르친 본의와는 달리 단순히 외치는 외적인 모양만 취하고 그 본의를 깨닫지 못하고 잘못 적용한 데서 오는 실수요 오류입니다. 본래 외침전도는 개인전도를 돕기 위한 것이요, 그 내용도 불신세계를 향한 회개를 촉구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본 회는 외침전도보다는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을 지속적으로 나누고 보여주는 것을 통한 개인전도와 영혼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훈련의 취지와 목적을 제대로 교육받은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지속적인 전도 열매를 맺음으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본 회가 외침전도만을 가르친다는 주장은 본 회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악의적인 비난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데는 본 회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의 잘못된 적용과 실수도 일조했다는 점을 본 회도 인식하고 전도훈련시에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은 훈련받은 사람들의 신앙의 성숙과 함께 자연스럽게 해소되리라 믿습니다.

2. 기성교회를 지나치게 매도하고 비판한다는 오해에 대하여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결코 비난의 대상이 아니고 또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피값으로 산 교회는 주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야 합니다. 교회는 마땅히 교회다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 회는 한 번도 교회 자체를 비난하거나 매도하여 정죄한 적이 없습니다. 교회가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갱신되어야 할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해 아픔을 가지고 이야기했을 따름입니다. 세간에 떠도는 본 회가 한국교회를 지나치게 매도하여 비판한다는 지적은 이에 대한 오해일 뿐입니다.
얼마전 장로교 통합측에서도 말했듯이 본 회의 그러한 개혁과 갱신의 부르짖음은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며 한국교회의 자성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본 회만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또 교회가 교회다워지기를 바라는 신실한 신앙인들은 누구나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 회의 주장은 한국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위한 자성의 소리와 같은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본 회는 교회를 섬기기 위해 일하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어찌 주님의 몸된 교회 자체를 비난하거나 매도할 수 있겠습니까?

3. 목회자를 비판한다는 오해에 대하여
본 회의 대표인 이유빈 장로가 문화를 부정함으로써 문화생활을 하는 목회자들을 비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아무리 경건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삶 속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살지 않는 한 어떻게 삶의 환경이고 조건인 문화를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유빈 장로가 주장하는 것은 각종 스포츠 활동이나 TV나 컴퓨터나 오락 등을 즐기는 데 시간과 마음과 물질을 빼앗겨서 세상에 빠지고 죄에 빠져 그로 인해 마땅히 지키고 지녀야 할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성령의 깊은 영적 교통과 영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그것들을 과감하게 자르고 버리는 것을 통해 주님과의 교제를 더 깊이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유빈 장로는 빌립보서 3:8-9의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 곧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는 말씀에서 벗어나서 말하거나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만일 본 회가 문화를 부정한다면 대표인 이유빈 장로가 문화의 산실인 KBS에 17년 동안 재직하면서 수많은 직원들을 변화시키고(그들 중에는 6명이나 선교사로 헌신한 사실이 있음) 퇴직을 한 지 1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방송국 동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또한 만일 문화를 부정한다면 어떻게 본 회가 인터넷이란 첨단문화를 활용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본 회는 목회자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 속에 있는 죄와 세속적인 것을 책망한 것입니다. 만약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컫는 그리스도인이 죄와 세속에 물들어 있다면 그가 목회자이냐 평신도이냐를 떠나서 그는 마땅히 책망받고 또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말씀으로 교훈하고 가르치고 훈련하여 주님의 제자로 만들기를 바라시며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위임하사 목양하게 하신 주님의 두렵고 떨리는 부르심을 생각하면, 그 누구보다 목회자는 죄와 세상을 멀리하고 주님의 거룩한 인격으로 목양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며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들의 거룩함과 주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부르짖은 것을 어떻게 목회자에 대한 비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4. 공개 죄자백에 대하여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만이요, 죄용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삼척동자라도 믿고 고백하는 성경적 진리입니다. 그러한 복음적 진리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복음과 성경을 일탈한 것입니다. 항간에 본 회가 공개적인 죄 고백을 강요한다느니, 사람 앞에서 죄를 자백해야만 죄를 용서받는다고 가르친다느니 하는 것은 그야말로 본 회의 신앙고백과는 너무도 다른 헛소문입니다.
그러나 물론 죄를 자백하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사실입니다. 죄의 자백은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로마교회는 죄고백을 해야 죄를 용서받는다고 하여 고해성사를 죄를 용서받기 위한 방편이요 수단이라고 말하지만, 본 회가 말하는 공개 죄고백은 칼빈이 말했듯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은혜를 선포하고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용서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가능한 것이지 결코 사적이든 공적이든 죄고백을 해야만 용서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 곧 죄 사함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죄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씻을 수 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공개적인 죄의 고백은 장로교 헌법에서도 발견됩니다. 첫째는 장로교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기본 교리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결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15장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그대로 받아들여져 교리화되어 있습니다. 둘째, 예배중의 공식기도에 관한 규정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예배 모범에도 공식 기도의 내용으로서 죄를 자백할 것이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셋째, 공개적인 죄자백은 교회의 권징에서도 발견됩니다. 교회의 징계, 즉 시벌(施罰)과 해벌(解罰)의 과정에서 죄의 공개적인 자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칼빈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고백을 하는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기의 죄를 언제든지 고백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사제에게 고백’이라는 잘못된 로마교회식의 회개론을 비판하고 성경적인 회개론을 밝히면서 공개적인 죄자백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개 죄자백에 관한 이러한 신학적인 정당성을 뒤로하더라도 죄자백의 열매가 그것의 정당성과 유익함을 웅변합니다. 공개적인 죄자백을 잘못 오해하여 부작용을 일으키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지만, 성령의 조명을 통한 거룩함의 회복이 죄자백을 통해 나타났을 때 깨어진 가정이 다시 하나되고, 어그러진 인간관계가 회복되어 목사와 교인,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화목된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것입니다.
공개적인 죄자백에 관한 부분은 첨부한 연구서를 참고하시면 이에 관한 잘못된 오해들이 시원스럽게 풀리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