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몇몇 분들과 교제를 하는데 어떤 분이 말씀하시는 것이 내 귀를 스쳐갔다. 그것이 가나안 교인이라는 말이었다. 그게 무엇인가 의아하여 있는데 곧장 설명이 나왔다. 오늘날 교회를 안 나가는 교인들이 가나안 교인이라고 부른다는 말이다. “안나가를 거꾸로 하면 가나안이 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나안 교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내가 쓴 책 일체를 사간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느 대기업의 임원으로 퇴직을 했다고 하면서 이제는 집에 들어앉아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다니던 교회를 그만 다니고 집에서 가족들끼리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나 부목사의 인격이 수준이 낮아서 배울 것이 없어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느니 그냥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지낸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이 일백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 말도 들리고, 꽤 오래전에 누구에겐가 들은 이야기지만 강남에만도 그런 사람들이 수만 명이라는 말도 들은 것이 생각이 났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교회론이 잘못된 데 그 이유가 있다.

교회는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설교를 하고 설교를 듣고 또 성경공부를 하고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여러 가지 종교행사를 하고 또 해외선교를 하는 것이 교회의 전부인 것처럼 사람들은 교회를 이해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고 가볍게 볼 것은 없는 것이지만, 그 모든 것들 가운데 철저히 무시를 당하고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성도의 교제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유투브에 빠져서 이단인지도 모르는 사상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의 말을 분별하지도 못하고 빠져 들어가는 일들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교회이다. 교회는 학교가 아니다. 예배와 설교와 성경공부만을 하는 것은 교회라고 볼 수 없다. 성도가 서로 사귀고 교제가 있고 사랑을 해야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생활이 되고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을 받고 날이 갈수록 생활이 변하고 인격이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 교회이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면서 교제 중에 하나님을 만난 사실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때 의식적이고 습관적인 헛된 종교의식으로서의 예배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과 같은 허망한 종교의식만을 치루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교회 안에 성도의 교제가 없기 때문이다. 성도의 교제가 없으면 기도도 자기 생활 속에 필요한 육적인 소원을 아뢰는 것으로 전락한다. 성도의 교제가 없으면 목소리를 한데 모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고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찬송하는 불일치도 일어난다.

 

성도의 교제는 주님이 말씀하시고 요한이 서신서에서 말씀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교제는 성도의 교제가 아니며 그것은 거짓된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같이 교회는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받는 곳이며 내가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줄 수 있는 곳이 교회이다. 그런 사랑이 있는 교회만이 교회 밖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운반할 수 있는데 그것이 한 영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는 복음전도요, 선교인 것이다.

 

한 사람의 성도를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은 그 사람이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 안에 주께 받은 사랑의 옹달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성도가 희박하고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랑 없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 안의 교인들은 설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회자의 중심에서 나오는 주께 받은 사랑이다. 성도들에게는 장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주는 장로가 필요한 것이다. 집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오늘날 교회 안에는 연극배우들밖에 없다. 사랑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는 목사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그냥 연기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장로도 교회 밖에서는 세상 사람처럼 살고 교회에서만 장로로 연기만 하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집사도 교사도 성가대도 자신의 생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으로 교회 안에서 연기만 하다가 집으로 간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에 어느 인쇄소 영업부장과 여러 해를 같이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다. 그냥 같이 일하고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여러 해를 지나서 그 사람이 일하는 인쇄소 앞의 다방에 앉아서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갑자기 그는 자신이 서울의 어느 교회 장로라고 털어 놓았다. 그리고는 주일날 가운을 입고 강단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지만, 이 골목에서는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고 술도 먹고 담배도 끊지 못하고 피운다면서 내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내가 사는 교회 밖의 행실을 보면서 자신의 거짓된 모습이 깨달아진 것이었다.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할 때에 오랜 세월을 목회를 하고 은퇴를 앞두고 있는 담임목사님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해주었다.

 

목사님 교회 안에 앉아 있는 교인들, 교회 안에서 교회 일을 하는 장로들이나 집사들이 교회에서 어떻게 사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간에 그들이 어디에서 어느 골목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목회의 관건입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나에게 대답을 했다.

 

모르지요, 뭐 어느 장로가 어디서 지금 무엇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목사님, 그런 것이 엘리제사장과 같이 눈이 먼 겁니다.”

 

그는 내가 전하는 복음에 매료되다 시피하고 시간마다 강단에서 사회를 보다가 또는 사석에서 감탄의 말을 쏟아 내었지만 그것은 단지 복음을 좋아하는 것이었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미국에서 국제전화가 걸려 온 적이 있다. 훈련을 받은 권사님이었는데 , 이게 참 교회가 아닌데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사시다가 어느 날 예배를 드리면서 사도신경을 하는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를 고백하다가 , 교회에 성도의 교통이 없구나하는 깨달음이 와서 즉시 나에게 국제전화를 해서 울면서 통화를 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 어떤 분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장로님 교회 안에 사랑이 없습니다.”

……

동창회를 가도 계모임을 가도 이렇게 무관심하지는 않습니다.”

……

 

교회 안에 들어 올 때마다 차디찬 냉기가 느껴진다고 괴로움을 토한 그는 조계종에 몸을 담았던 간부이었는데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이었다.

 

이렇게 교회가 사랑이 없기 때문에 안나가는 교인들이 처처에 많은 것이다.

이와 같은 영혼들을 건지기 위해서는 교회가 처음사랑을 회복하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교회 성도의 교제가 있는 교회가 참된 교회이지 사랑이 없으면 교회는 냉랭하고 차디찬 종교단체나 세상에 흔한 조직만도 못하여 오늘날과 같이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교회마다 영혼들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래서 안나가교인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는 일이 일어나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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