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과


코로나로 인하여 교회가 욕을 먹는 일이 잦아지면서 여기 저기서 사과를 한다는 교단이나 기독교 단체나 교회나 목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과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은 어느 누구도 욕을 먹는 한국교회를 대표할 대표성이 없는 사람들이다. 또 대신 사과할 만큼 한국교회를 사랑하지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보다 더 웃기는 것은 사태가 악화되고 나서야 사태를 수습하고 싶어 하는 면피용 사과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사과 몇 마디로 사태를 수습할만한 것도 아니며 사과를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이 한국교회를 욕먹지 않도록 고쳐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없고 또 그런 자리에도 있지 않은 사람들이다.

 

아마도 세례요한이 지금 있었다면 그런 사람들을 강력하게 책망을 할 것이다.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것은 단지 사람들에게 지금 욕을 먹고 있는 것을 피하여가기 위한 면피용 사과임을 일반 사람들도 알고 있다.

 

요한이 바리새인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책망을 했던 이유가 그들이야 말로 면피성회개를 하려고 오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얄팍한 짓을 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할 때가 아니다.

 

특별히 세상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우리 내면의 세계로 돌아갈 때인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함을 받게 하기까지 교회가 타락하고 교회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을 하나님 앞에 조사하고 회개하는 일이 먼저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고침을 받으면 굳이 세상 사람들에게 말로만 사과하는 어리석고 경솔하고 영양가 없는 행위 따위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교회가 변화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금방 보여지고 나타나는 것이 세상의 빛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 몇마디에 감화를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교회의 악한 모습이 바뀌지 않으면 사과를 골백번해도 일이 터질 때마다 교회를 향하여 쌍심지를 열쇠고 욕을 해대는 일은 절대로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교회가 욕먹는 것이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지 않는가?

 

그동안에 세습이나 여러가지 세상 사람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도덕한 일을 하여 온 것이 일이십년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을 한순간에 말 몇 마디로 사과를 한다고 사람들이 교회를 인식하는 것이 달라지리라고 믿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말 몇 마디로 세상에 사과를 할 힘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회개를 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이고 고침받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으면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일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옛날에 광주의 어느 교회에서 목회자세미나를 할 때의 일이다. 

그 목사님 방 출입 문 위에 "목양일념"이라는 나무로 조각한 패가 걸려 있었다. 

주님의 양을 목회하는 데에 만 마음을 쏟고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그걸 보는 순간에 조금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정중히 말씀을 드렸다.

  

"목사님 저 패는요 문밖에 걸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문안에 걸어 놓아서 목사님이 항상 볼 수 있도록 해야지요."

  

그 목사님은 적지 않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사실 밖으로 보이게 그 패를 걸어 놓은 것은 교인들은 보시요 나는 목양에 일념하는 목사올시다라는 선전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교인들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고 하자.

 

사실 그 목사님이나 누구나 목양일념으로 사는 것은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한 일인데 혹여 교인들이 그것을 보고 아 우리 목사님은 양떼를 생각하는 것 한 가지만 생각을 하는 분이구나라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외식하는 죄를 짓는 것이고 교인들을 속이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안으로 보이게 걸어 놓으면 그 표어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무익함을 하나님 앞에서 아파하며 항상 부르짖어 기도하는 제목이 될 것이다.

  

그 옛날 바리새인들이 서기관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하는 모든 것은 외식하는 것이요 그것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이다.

  

세상에서 사람들 앞에 뉘우치고 사과하는 것이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여 고침을 받는 것이 교회이다. 

하나님이 언제 사과하라고 하셨나? 회개하라고 하셨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고침을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구하는 것이 교회이다.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게 되어야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것인데 그동안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이 기뻐할 수 없는 교회가 되어버린 모든 과정과 일들을 아파하고 회개해야 한다. 


교회세습을 비롯하여 세상에 노출된 수없이 많은 교회지도자들의 부도덕한 사건들과 교인들의 상식이하의 일들로 인하여 세상 죄인들에게까지 손가락질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함을 받게 한 죄들을 다 회개해야 한다.

 

코로나 방역을 잘 못한 것만이 죄가 아니다.

 

코로나 방역으로 교회의 치부가 세상에 드러날 정도로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13:22)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13:26)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임하였는가? 교회의 죄악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수치를 만방에 드러내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고 사람의 환심이나 사려고 면피성 사과나 하고 사람들의 비난만을 피해가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얄팍한 것이며 참으로 악한 것이다.

 

사과하고 고치지 못하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침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두 번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도 두 번 속이고 사람들도 세상도 두 번 속이는 짓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과보다도 더 급한 것은 교회가 회개하여 하나님께 고침을 받고 변화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중뿔나게 누군가 교회를 위해서 사과를 한다는 이상한 일을 하는 거짓된 사람들이 다시는 아니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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