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음


11월에 일정이 잡혔던 광주집회가 갑자기 12월로 연기가 되었다.


호텔방이 없어서 급히 예약을 한 방이 취소불가 조건이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방값을 날리게 될 형편에 이르게 되었다. 예약을 한 여행사에 취소를 해달라고 여러 번 간청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불가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1박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심정에 오랜만에 함평에 있는 집사님을 심방하기로 하고 같이 갈 목사님들을 구했지만 다들 금요일이라고 기도회 때문에 못 간다고 손사래를 쳤다. 요즈음 함평 갯벌 낙지가 제철이라 보신을 하러 가자고 유혹을 해도 아무도 꿈쩍하지 않았다. 또 어떤 분은 너무나 멀어서 안 간다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광주에 계신 노충기 목사님과 호젓이 심방이 아닌 심방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 부친상을 당한 집사님은 그동안 이십 년 동안의 관계 속에서 내놓지 않고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말들을 하기 시작을 했다. 간증을 하면서도 하지 못했던 마음속 깊은 곳의 물을 길어 올렸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상처를 받은 일들과 그로 인하여 사고를 치고 유치장을 드나들고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새어머니를 미워했던 일들은 우리들 주변에서 항상 있어서 보아 왔던 광경들이었다. 새어머니는 아들을 넷을 낳아서 기르면서 방어본능에 아버지에게 이 맏아들을 미워하고 불신하도록 종용하였으며 그와 같은 일들은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미워하게 하고 이집에서는 ‘내가 마음을 붙일 공간이 없구나’라는 결론에 때로는 반항하고 때로는 행패를 부리면서 아버지의 마음속에 골치 아픈 아들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고, 이 아들은 친구밖에는 자기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항상 밖으로만 돌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계모와 함께 그런 아들을 미워하고 또 미워하였다.


성남에서 건설현장 운전기사로 있으면서 지방의 명문여고 출신인 현재 부인에게 대기업 건설사의 정규직원인 것처럼 속여서 결혼을 했다. 그리고 두 남매를 낳고 살던 중에 예수전도협회에 오게 되었고 훈련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고 함평 읍내에서 노방전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단이라는 소리도 듣고 일이고 무어고 다 집어치우고 전도를 하는 바람에 아내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으며 어린 아이들에게 자기 믿음을 강요하다 시피 하여 이제는 가족들에게 믿음으로 많은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함평 장에서 외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면서 “누가 무어라 해도 내 아들같이 변화된 사람이 없다”며 사람들에게 은근히 자랑도 하고 내심 기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전에 도박을 하고 아버지에게 대들고 반항하던 그 아들의 심중이 변화된 것을 그 아버지는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아들과 이전의 아들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만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 손자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세뱃돈을 주면서도 계모가 난 자식의 아이들에게는 돈의 가치를 알지도 못하는 어린 나이지만 만 원짜리를 주면서도 중학생이 된 집사님의 아들과 딸에게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주어서 명절 때마다 아이들이 아픔에 떨었다고 했다. 딸은 지금 외국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뒤늦게 할아버지는 그 손녀딸을 그렇게도 예뻐했다고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뵈었을 때에 손녀딸 사진하나 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겠다고 집에 와서는 딸이 절대로 사진을 주지 말라고 할 정도로 할아버지에게 대한 상처가 깊고 아픈 감정이 많았다고 한다.


주님은 여러 가지 환난으로 연단을 하면서 이 집사님을 믿음으로 길렀다. 전도여행을 갔을 때에 태풍이 불어서 수박밭이 엉망진창이 되고 하나도 건지지 못하는 일도 당했다. 허리수술을 한 부인집사가 축사 문을 닫다가 강풍에 문에 부딪혀 수술한 허리가 골절되는 일도 당했다. 때로는 전도에 미쳐서 전도하다가 동네에 세워둔 트럭이 홍수에 떠내려가기도 했다.


그 때에 교회 목사가 와서 위로한답시고 히브리서 12장 5절의 말씀을 읽고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에게 잘못해서 벌 받은 것이라는 말을 하고 갔다고 한다. 그분은 목사 말 안 듣고 교회일은 안하고 전도만 하는 것을 책망했지만, 그러나 주님은 6절 이하의 말씀을 풀어 주시면서 사랑하시는 그의 자녀에게 징계를 주시는 이유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거룩함에 참예케 함이라고 말씀해 주심으로 위로를 해 주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군청 공무원의 실수로 구제역이 왔다고 오판을 하여 기르던 소를 3억 원 어치나나 땅에다 묻는 기가 막힌 일을 당하면서도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떨어지는데 이렇게 덩치가 큰 소를 죽게 하는 데에 왜 하나님의 뜻이 없겠냐며 부부가 함께 붙잡고 울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군청에 가서 담당공무원을 만나고 잘 처리해달라고 관용함으로 말하자 그는 복도 끝까지 허리를 구푸리고 나오면서 계속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일 원 한 푼도 손해를 보지 않도록 다 보상을 받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여름행사에 빠짐없이 두부부가 참석을 해서 잃었던 은혜도 회복을 하고 다시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점심을 드시고 낮잠을 주무시다 그 자세 그대로 곱게 천당을 가신 것이다. 오래전에 아들에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거듭난 아버지였다. 장례를 치르면서 동네 교회의 장로 집사 등, 종교인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00이가 세상친구들 다 끊어서 부의금이 적어서 적자가 날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동생들이 그런 말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불안해하고 제수씨들의 마음이 동요되기도 했다. 그래서 주일날 장례를 치룰 수가 없어서 사 일장을 지냈는데 그것도 동생들이 걱정을 하면서 셋째 날에 일천만원이 비용이 계산이 되었다며 모자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걱정들을 태산같이 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 부부는 흔들리지 않고 생전에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에게 대접을 한다고 생각하고 풍성히 대접을 하라고 동생들에게 일렀다고 한다. 장례가 끝나니 700만원이나 남아서 동생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주님이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입을 다 막으시는 역사를 하셨다고 한다. 장례식 내내 동네 사람들은 그 가정의 이력을 다 알기에 맏아들인 이 집사님이 가만있지 않고 소동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들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기우에 불과한 일이 되고 말았다. 아들, 딸이 장례를 치루고 떠나가면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인 집사님에게 존경을 표한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하고 돌아갔다고도 했다. 동네 사람들도 되어 가는 일을 보면서 다 함께 놀라기는 마찬가지이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최근에 맏아들에게 마음을 돌리고 계모에게 맏아들을 소홀히 한다고 꾸짖기도 하고 싸움도 해서 어느 날은 계모가 맏며느리에게 전화를 해서 “너의 아버지가 나에게 00이에게 잘못한 일이 많다며 자꾸 무어라고 해서 못 살겠다”고 말하면서 전화기를 붙잡고 울정도로 아버지가 계모에게 서운한 마음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계모는 아버지 앞에서 전화를 걸어 맏며느리에게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아버지는 자기가 새 마누라의 말을 듣고 맏아들을 구박하고 미워한 것이 후회가 되고 회개를 하면서 아파하는 제정신으로 돌아오신 것 같았다. 그리고 육신적으로 잘해준 네 명의 아들이나 그들에게서 난 손자들보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맏아들이 잘되고 형통하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맏아들을 미워했던 자신의 죄를 회개했음이 틀림이 없다. 맏아들만 잘되고 형통하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손자들도 하나는 경찰로, 하나는 외국항공사 승무원으로 번듯하게 길러 낸 것을 보면서 이 아버지는 마음속에 뿌듯한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할수록 과거에 아들을 미워한 것이 그만큼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망나니 같고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던 맏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는 것을 보면서 그 아버지의 마음이 아들에게로 완전히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의 침대 밑에서 고이 숨겨놓은 만 원권으로 일천만 원이 나왔다고 했다. 고인이 없으니 그 돈이 무슨 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디에 쓸려고 마누라 몰래 숨겨 놓고 있었는지 말해 줄 이가 이 세상에는 없다. 그것도 맏며느리의 제안으로 새어머니의 통장에 넣어 드리고 모든 일을 잘 마무리 지었다는 말을 들었다.


교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마도 그 돈은 그동안 섭섭하게 했던 두 손자들이 장가가고 시집갈 때에 할 애비 노릇 한 번 해보려고 몰래 감추어 놓았던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왜 그런 생각이 확신 있게 다가오는지 알지 못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아니 특별히 사랑하지 못했던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다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그렇게도 미워하던 맏아들을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는 아들로 변화시킨 하나님의 사랑이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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