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제에 무슨 전도를 하겠니”라는 내 딸의 말에 처음으로 전도여행에 온 스무 살 먹은 어느 집사님의 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누나도 그래요?”라고 질문을 하더란다.

“그럼, 내주제에 전도는 무슨 전도,  다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하는 것이지.”

그런 딸이 사복 경찰에게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기로 하고 그가 건넨 명함을 들고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전도를 할수 없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무지함과 무능함을 고백하고 주님을 따르기 조차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모습 앞에 애통하며 마음을 깨뜨리는 역사가 일어난, 지나간 서른다섯 번의 전도여행과는 사뭇 달랐던  제36차 전도여행이었다. 전도여행을 하기 전에 나에게도 주님이 하신 말씀은 “전도는 무슨 전도를 하겠느냐?”, “너희들이 무슨 전도냐?”, “그냥 순종이라도 잘하면 되지”라는 음성을 들려주시곤 했다. 


이번에 전도여행이 끝이 나고 주님이 나에게 떠 올려 주신 영어 문구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Right Place, Right Time, Right Person” 이었다. “바른장소, 바른시간, 바른사람”이라는 뜻의 이문구가 이번 전도 여행을 한마디로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이 말은 “바로 거기서, 바로 그때에, 바로 그 사람이”라는 뜻이 더 실감이 나는 번역이 될 것이다.


이번 전도 여행을 치르면서 있었던 일들과 일어난 사실을 나는 다 알고 있지 못하다. 또 다 알 수도 없다.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달리 대별로 전도 보고만을 하고 전체 전도 보고회를 하지 않았다. 그냥 오가면서 식당에서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들은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 가운데서 나름대로 연결해주시는 주님이 알게 하시는 사실들만을 연결해서 전도 보고를 하고자 한다.


1. 바른장소(Right Place)


인간들이 중심이 된 교회생활에 빠져가는 나를 교통사고를 통해서 만나주시고 병원 대기실에서 불러 내주신 주님의 은혜로 주일마다 교회 밖에서 전도를 시작을 하면서 때마다 내가 전하는 복음에 반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개닫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내가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나누는 이 복음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일 년에 한번 있는 여름휴가를 주께 드리고자 1982년에 처음 시작된 전도여행은 1988년에는 전국의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데리고 참석을 하는 전국적인 규모의 전도여행이 되고 주님은 이를 통해서 전도보다도 자신들의 영혼이 황폐화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목사와 교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회개하면서 심령이 회복이 되고 가정이 교회가 회복되는 역사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다. 길거리에서 준비된 영혼을 만나는 기쁨도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으나 이미 오래전에 준비하신 나의 영혼을 방치하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주의 제자로서 살지 못한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것이 힘이 되어 1990년부터는 목회자 전도훈련을 시작을 하고 제직 전도훈련도 하는 가운데 참석한 사람들이 주님의 십자가 은혜 앞에 굴복하면서 그들이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많은 목회자들과 제직들이 전도훈련을 받기 위해서 온 사람들까지도 그들 안에 없는 영생을 선물로 주시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전도여행은 1994년에는 참석자가 2,400명에 이르는 일들도 일어났다. 그러나 1998년부터 마귀는 자기의 종들을 통해서 이 전도를 훼방하고 성결교와 장로교 두세 교단에서 회개하지 못하게 하고 전도를 못하게 하면서 자기들의 교단의 관계된 교회에 공문을 보내어 참석을 금지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사실을 외면하고 불법적으로 진리를 대적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전도의 열기가 급속히 식어 버렸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는 경찰 관계자들까지도 고마움을 전할 정도로 해마다  범죄율이 내려갔는데 그때 이후로 이 세상은 그리고 이 나라는 범죄가 가득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자살률이 전세계에서 높은 나라가 되었고 온갖 흉악한 범죄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흉악범에 경제사범들이 교인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목사가 교회를 팔고 목사직을 프리미엄을 받고 사고팔며 그것을 중개하는 목사들도 생기고 수십억을 퇴직금으로 챙기는 세상 죄인들도 받아들이기 힘든 비상식적인 범죄가 교회 안에서도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유명한 목사들이 횡령죄로 법정에 서기도 하며 이름만 장로인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범죄에 연루되고 그로 인하여 지난 20년 동안은 불신자들이 교회를 비방하는 차원에서 지나서 이제는 악의가 가득하여 교회를 공격하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이루 필설로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이 나라의 교회가 파수꾼의 사명을 포기하고 새로 신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젊은 목사들이 교회를 개척한다 하면 열이면 열이 다 말리는 일들이 현실이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열 개를 개척하면 그보다 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교회마다 복음전도는 꿈도 못 꾸고 예배당 외부에 상업적인 광고를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인들을 모집하는 추한 일들도 적지 않이 눈에 띄는 현실이다.


이전에는 도시마다 교회마다 전도여행을 와서 해달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어느 도시도 문제를 일으킨 교단만이 아니라 다른 교단들도 눈치를 보면서 아무도 어디서도 전도여행을 해달라는 요청이 없어진 지가 십 년이 넘었다. 그리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우리는 천안에서만 전도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의 역사는 지금 전도여행을 하는 K교회에서 지난 육 년간 우리를 받아 주고 있다.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래서 금년에도 천안에서 전도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2. 바른 시간(Right Time)


이번 전도여행을 하기 전에 K 교회를 장소로 쓰기가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이유는 교회의 외벽공사와 우리가 늘 쓰던 교육관의 기초를 더 든든히 하여야하는 필요에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한가지 제안을 해왔는데 천안의 근교에 기도원을 하나 잡아서 전도여행을 하면 대형 천막 세 개를 지어주고 천안시내로 전도하기 위해 이동하는 대형버스를 다 지원하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협회 간사가 답사를 가서 기도원을 보았는데 전도여행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를 않는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그 이후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기도하는가운데 그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깜짝 놀랄 제안이 왔다. 그것은 공사를 중단하고 장소를 빌려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님이 일하시고 계신 까닭이다.


한편으로는 장소가 어려운 형편이 생길 때마다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장소가 안되는데 삼십삼 년 동안 해온 전도를 이제는 그만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이제는 ‘나도 편히 쉬어 보자’하는 악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일에 주인이신 주님은 그렇지 않았다. 악한 종인 나는 주의 일을 그만두려고 했지만 이것마저도 없어지면 안되는 것이, 그것은 우리 주님에게는 가장 급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시 33:15)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는 주님이 그의 종인 그 목사님의 마음을 움직여 이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바른 시간에 우리가 정하고 기도했던 시간에 주님은 한치의 착오도 없이 주님의 일을 추진하시고 이루신 것이다. 이일의 주역은 사람이 아니다. 주님이 다 연출하시고 우리는 그냥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도구들이 쓰임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 악하고 게으름에 정해진 일을 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주님의 마음 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3. 바른 사람(Right Person)


이번에는  근 이십 년 전에 참석을 했던 집사님의 가정이 참석했다. 이 글에 첫 머리에 말했던 이제는 스무 살이 된  재수하는 아들과 고등학생인 딸이 어렸을 때에 엎고 안고 전도여행을  해마다 참석을 하여 은혜를 받으면서도 ‘내가 나이 들면 이것을 그만해야지 언제까지 전도를 하고 다니겠나’하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현실이 되어 그동안 발길을 끊고 지냈었다. 그런데 참으로 우연하게도 우리 딸이 피아노를 사면서 연결이 된 그 집사님의 동서를 통해서 최근에 몇 번 만났는데 나는 그에게 전도여행에 오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주님의 전적인 역사에 내가 누가 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가족을 다 데리고 전도여행에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자신은 여름 전도여행에 오기로 굳게 작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머지 식구들은 올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의 아내가 전도여행 오기 며칠 전에 스무 살 난 아들에게 “얘, 우리 이렇게 살면 안 되잖니? 이렇게 계속 살고 싶니?”라고 말하니까, 그 아들이“엄마,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라고 대답을 하기에 “그럼 우리 이번에 전도여행 가자”라고 했더니 선뜻 가겠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생인 딸은 그때 즈음에 사고를 많이 쳐서 여름에 어디를 가고 아니 가고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권이 없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 식구가 전도여행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근 이십 년 만에 나타난 집사님의 가정이 많이 힘들어하는 가운데 아이들의 표정이 좋을리가 없었다. 시간마다 서로 대화를 하고 중간에 물어 봤더니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셋때 날에는 딸이 아빠와 안고 우는 모습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 집사님이 “아들도 딸도 내년에 다시오자”고 했다며 기뻐했다.  이렇게 어떤 모습으로 왔던지 주님이 아시는 바에는 꼭 와야 할 사람, 곧 “Right Person”이 오게 된 것이다.


다른 때와는 달리 누구를 만나도 전도여행에 오라는 말을 나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성령께서 온전히 인도해주시기만을 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각 교회 목사님들도 하나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의 맡기고 각 사람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올수 있도록 강권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지난해까지 보였던 사람의 눈치와 사람 때문에 왔던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단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지난해에 왔던 수보다도 지지난해에 왔던 수보다도 더 많이 왔다. 항상 수가 줄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주님이 꼭 필요한 사람들을 모아주신 것이 삼 년 전의 참석자 수로 회복이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전도여행은 시작 시간 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기도제목 하나 찬송하나가 다 새로 주시는 것들이었으며 주님이 끌고 가시는 그것도 아침이면 아침에 낮이면 낮대로 저녁이면 저녁에도 순간순간 세밀하게 끌어가시는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게 되었다.   


첫날 오후에 시작된 첫 시간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니 받았는지의 문제이며 에베소 교회와 같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말씀을 전하면서 요한의 세례밖에 모르는 회개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과 요한의 세례도 거절을 당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같은 행위의 회개로는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성령이 내안에 계시는 것이 구원받고 아니 받은 것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임을 말씀을 전하고 각각 자기들의 영혼이 구원받은 사실이 있는지를 주님 앞에서 살피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시간에는 우리가 구원받았느냐 아니 받았느냐를 따질 수 없으며 구원받았는지 아니 받았는지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단지 하나님이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지 아니받았는지를 분간할 수 있는 식별법을 주셨는데 “나무는 실과로 안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그 사람의 생활과 열매를 볼  때에 분간할 수 있음을 전했다. 그리고 “나다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가지고 헬라어 문법으로 볼 때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것”은 현재 시제이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미래 시제이다. 그러므로 지금 주여 주여 하면서 지금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라도 들어갈 천국이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현재 시제인데 들어간다는 말은 원어에는 없고 행한다는 말과 한단어로 그 또한 현재 시제이다 그러므로 지금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지금 천국 안에 있는 자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는 자는 지금도 천국이 없고 나중에 들어갈 천국도 없는 자라는 말이다.  이 말씀을 전하며 들으면서 자기가 정욕대로 행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죄를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달리 세 번의 새벽 기도회를 세분의 목사님들이 한 시간씩 담당하게 하였는데 첫 새벽 기도시간을 맡은 목사님이 자기가 율법주의에서 해방이 되었다며 그동안에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정죄를 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가 된다고 말씀을 전했다.  그러자 그와 같은 형편에 있던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고 웅성거리기 시작을 했다. 어떤 목사님은 “최고의 은혜를 받았다”라며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 목사님를 제외한 대부분의 목사님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목사님이 어떤 목사님과 싸우고 다투면서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직 그대로 있는데 그렇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우리들끼리 교제하는 시간에 어느 분이 그 목사님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목사님이 운동하다가 싸워서 운동도 금하고 전도여행 대장도 못하는 징계를 받은 사실을 말하면서 사실 새벽에 말씀을 전하려면 “나는 이모임에 방해꾼입니다. 내가 그목사님과 싸워서 징계도 받고 전도여행 대장을 그도 못하게 하고 나도 못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어야 했다며 많은 목사님들 앞에 엄히 꾸짖었다.


그날 말씀을 전하고 기도회를 하고 두 번 전도를 나갔다. 전도를 마치고 밤에 숙소에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주님이 그와 같은 일의 실상을 보여 주셨다.


“얘, 그 목사가 아직도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거야”

“......”

“왜, 그러냐 하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머리로 깨달은 것이고 그 깨달음을 말한 것이지 은혜가 아니야.”

“......”

“그것은 ‘어찌 그럴 수 있느냐’의 주체가 성령이 아니라 그 사람이고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의 주체도 그 사람이기 때문이야.”

“......”

“왜냐하면 은혜는 이 사람에게는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럴 수 없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참으로 하나님의 지혜는 오묘하고도 놀라웠다.


그 다음날에 그 말씀을 전하면서 은혜는 남을 향해서 “어찌 그럴수 있느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세워 놓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하며 아파하고 애통하면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은혜라는 말씀을 전했다. 사람들의 분위기가 남의 허물을 보는 데에서 자기의 허물을 보는 것으로 확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회개의 영이 임했다. 자기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에 티끌을 빼겠다고 했던 자기들의 모습을 각자 아파하며 부르짖는 역사가 일어났다. 전체 기도회를 하면서 전도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 전에 나와 같은, 꼭 나를 닮은 사람 한 사람만 보고 오게 해달라고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축호전도를 나가서 자기 모습을 보고 왔는데, 어떤 목사님은 “내 맘대로 할 거예요, 날 내버려 두세요”라고 부르짖는 어느 청년을 만나서 주님 앞에 옛날뿐 아니라 지금도 자기 맘대로 하고자 고집하는 자기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는 역사도 일어났다. 그다음 날은 전도를 나가기 전에 기도회를 하면서 내가 심령이 팍팍하고 준비되지 않았고 기도가 부족해서 간절한 마음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운동을 하다가 어느 청년에게 코 뼈를 팔꿈치로 맞아서 다친 사실을 말하면서 아직도 얼굴이 부어 있는 내 모습을 보이면서 이것이 기도가 부족하고 심령이 병들어서 주님이 이일에 날 쓰시기 위해서 준비시킨 일 중에 하나임을 고백했다. 지난 주간에 청소년 집회 때에도 첫 시간에 목이 아프게 하심으로 나를 도중에 준비를 시키시는 주님을 말하면서 이 상처가 전도여행이 끝남과 동시에 아문 것은 이 전도여행을 위해서 주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이와 같이 준비되지 않은 나라 할지라도 이렇게 주님 안에 있으면 주님이 코 뼈를 쳐서라고 인도해가시는 은혜를 말했다. 그리고 각자가 이렇게 주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을 전하면서 부르심과 따름과 주안에 거함의 제자의 일생을 전하고 이제 이 시간에는 길거리에 나가서 전도하기보다는 내가 주안에 있어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가를 확인하고 돌아오자고 기도했다. 그러자 전도현장의 분위기가 어제와는 사뭇 달라졌다. 어제는 누가 와서 말하기를 “전도자들이 전도는 안하고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있습니다”라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했는데 이제는 단 한 사람도 쉬는 사람이 없이 전도했다. 그리고 밤에도 같은 장소로 노방전도를 나갔다. 마지막 전도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전체 보고회 시간이 잡혀 았었으며 교회 공사준비를 위해 열 두시까지 비워주어야 했기에 마지막 날은 전도할 시간이 없었다.


그날 밤에 숙소에서 주님이 나에게 한자를 가르쳐 주셨다

그냥 공책에 자기 부인이라는 말을 한문으로 썼는데 ‘인’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인(認)자는 인정한다는 말인데 말씀, 언에 칼, 도자가 있고 마음, 심자가 있다. 칼자 옆에 점은 움직인다는 뜻을 가진다. 말씀이 칼과 같이 마음을 베고 짜르는 것이 인정하는 것이다. 시인(是認)의 시(是)자는 가로, 왈에 아래, 하 그리고 사람, 인이다.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에 인정하는 것이 시인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말하는 것인데 윗사람 중에 윗사람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 시인이다. 부인, 부(否)자는 아니 불자 아래에 입구자로서 입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가지고 시인과 부인 말씀을 시인하는 것과 자기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다.  아울러서 빗자루만 들고 있는 부인(婦人)과 존경받는 부인(夫人)의 차이를 말하고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요한복음 21장에 말씀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실패한 자리에 찾아오시는 주님의 사랑하심과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심을 말씀하면서 베드로를 처음 부르셨을 때와 똑같이 여전히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을 말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 속에서 우리들 모두의 모습을 보았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했을 때에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셨던 주님의 사랑은 그동안 주님에게 수없이 책망을 받으며 사단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그, 그래서 여러 번 주님을 떠나가고자 했던 그 부자 청년을 보내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하셨을 때에 “그런즉 누구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요”라고 질문하면서 낙심했던 그, 가야바의 뜰에서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그,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이나 자기의 눈으로 보고도 주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고기나 잡으러 간다”고 하고 갈릴리에서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 했던 그, 어느 때나 항상 그리고 어느 것이나 하나도 주님하고 맞지 않았던 그를 주님은 포기하지 않고 찾아오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음성조차도 변하지 않고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사랑 앞에 목놓아 울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치기 전에 의례히 “천국에서 만나보자”라는 찬송을 부를 줄로 알고 있었다. 나도 ‘그  이상 대안이 있겠는가’하고 생각을 하면서도 시작부터 예민하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살피고 있었다.  마지막 기도회를 눈물로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 내 마음에 “예수  나를 오라 하네”라는 찬송소리를 조그 맣게 들려주셨다. 그래서 즉시 그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천국 문은 나중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지금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회중이 통곡하며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그냥 가만히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축도를 시켜야 하는데, 십 년 만에 오신 목사님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님이 그를 시키라고 강력히 말씀하셨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규례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지시하시는 말씀에 순종을 했다. 그 목사님은 나와서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잘못 산 것과 영혼을 고치지 못하고 시험에 들게 한 것 등, 여러 가지를 회개하면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렇게 끝이 나고 각각 주님과 함께 살기로 은혜를 구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33.164.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