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주일날 미국 LA에서 마지막 집회가 오후 두시에 있었다.

1시 45분에 호텔로 오기로한 김헌용간사가 웬지 오지를 않았다.

벨맨들이 와서 물었다.

"택시?"

"노"

그리고 나를 픽업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고 그들에게 설명했다.


김간사에게 줄 가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호텔앞에서 기다리던 택시가사들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차를 가지고 와서 타라고 하는 일이 두번이나 일어났다.

평상시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는 사람이 오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십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무슨 사고가 났나하는 생각도 해보고 아니면 길거리에 무슨 행사가 있어서 주일인데도 차가 막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다른 벨맨이 와서 무슨일이냐고 물으면서 전화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전화를 빌려 준다고 했다.

나는 평상시에도 집회 때는 전화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화번호도 알길이 없었다.

방에 올라가서 전화를 해볼까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어떻게 이렇게 마냥기다리느냐고 내가 측은해 보이는듯 싶었는지 말을 걸어 왔다.

그래서 그에게 그냥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에게 말해주면서 반드시 온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후로는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면서 십오분이 지나서 집회시간인데도 오지 않았다.

이십분이 지나가고 삼십분이 지나면서 아마도 이쯤되면 세상사람들은 속에서 욕이 나올법도 하겠다는 생각도 들어 왔다.

한편으로는 이게 무엇인가 내가 강단에 서있을 시간에 여기 서있다니하는 생각을 하니 허리도 묵지근하니 통증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슨일이 있나하는 염려가 들어 오는데 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기다리는 교인들가운데에라도 자기들끼리 연락을 하고 오겠지하는 생각에 그냥 기다렸다.  

숲속에 참새한마리도 보고계시는 주님이 내가 호텔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시고 지금 김간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아시리라 생각을 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에 찬송을 부르면서 서 있었다.

 

삼십오분이 지나서 삼십칠분이 지난 두시 이십이분에 다른 집사님이 차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황황히 교회로 갔더니 김간사가 거기에서 죄송해 죽는 표정을 지으면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전화기도 오전예배때에 무음으로 해놓아서 잠을 자다가 두시 오분에 일어났다고 하면서 자기가 시간을 맞추기에는 불가능한 시간이라 다른 집사님에게 연락을 했다는 말을 했다.


"괜찮아 다 주님의 뜻이야. 감사해"

".........."


그리고 두시반이 넘어서야 강단에 올라갈수 있었다.


말씀을 전하면서 그시간 말미에 다음 말씀을 인용하게 되었다.  


(계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이 말씀에서 일곱눈은 일곱영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스가랴서의 말씀도 인용을 했다.


(슥 3: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한 돌은 산에서 뜨인 돌(단 2: 34,45)인 예수를 말씀한다.

그래서 서양사람들은 이름을 "한돌"이라는 이름인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어떤 이들은 예수를 가리키는 또 다른 말인 "산 돌"이라는 뜻인 "리빙스톤"도 좋아한다.


예수이신 한 돌에 일곱눈을 새긴것은 일곱영을 말하는 것이다.

일곱은 완전수고 영은 성령을 말하는데 그것은 성령의 온전한 역사로 이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도 모르시는 것이 없다는 말을 했다. 이땅에 개미한마리 죽는 것까지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심을 말하면서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말씀의 말미에 조금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제가 호텔문에서 사십이분을 기다리면서도 마음에 넘치는 평강과 기쁨이 있었던 것은 일곱눈을 가지신 성령의 역사를 신뢰하고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여기 호텔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시고 계시는 주님이 김헌용간사가 자고 있는 모습도 보고계셨습니다. 그리고 시편 127편 2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는 말씀과 같이 주님은 그시간에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무 사정도 알지 못하는 나에게 주님은 자신만을 신뢰함으로 감사하게도 하셨습니다."


그날 오후에 어떤 교재보다도 더 확실한 실물교재가 된 사건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말씀보다도 더 큰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알지 못하고 불평하고 사람에게 화를 낸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임을 다시한번 기억하고 알게 되었다.


그날 오후에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로스엔젤레스 공항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북한의 위협때문인지 비행기가 중국만주로 돌아서 비행을 하는 바람에 비행시간이 다른때부다도 한시간이나 더 걸려서 12시간 50분이나 걸렸다. 열한시간 삼십분을 잠을 자고는 거뜬한 몸으로 인천공항을 빠져 나왔다.   
 

집에오자마자 김간사에게 도착감사 메일을 보냈더니 "주의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답장이 왔다.

사소한 일까지도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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