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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전도여행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유 (2006년 생명샘 7.8월 특별기고)
이유빈장로 / 예수전도협회
어느날 기도하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얘, 오늘날 목회가 안 되는 일반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니? 그 이유는 지금 목회를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사가 되기 전에 증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리스도의 증인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사람이다. 그의 말과 행실에, 인격 속에 그리스도가 살아 있는 사람이다. 주님을 닮은 사람이요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다. 주님과의 오랜 교통으로 인해 주님을 닮은 인격이 된 사람이다. 생활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 '어쩌면 저렇게 주님을 닮을 수가 있을까' 자문해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생활 속에 주님의 형상이 보여지는 사람이다. 주님이 살아계신다면 저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증인이라는 말은 법정 용어이다. 쉽게 말하면 증거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사람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인격과 생활 속에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에 나타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짜이다.
그리스도의 증인은 권능을 받은 자이다. 그 권능은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권능이다. 권능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가 없다. 사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아무나 맘만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요 어느 누가 증인이 되라고 해서 사람이 인정을 하거나 사람이 명령을 해서 되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증인이 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야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훈련으로 되는 것도 아니요 연습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다른 힘과 권능이 많이 있고 또한 다른 권능은 많이 구해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권능은 구하지 않는 것이 요즈음 교회 안에 있는 이들의 어리석은 공통된 모습이라 하여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 권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권능을 우리에게 어떻게 주시는가? 오직 성령으로 주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성령을 받음으로 권능이 임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교회의 일꾼들의 오류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을 공부하고 배워서 하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공부가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배우는 것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하면서 성령을 구하지 않고 성령을 받지 못하고 성령으로 살지 못하고 성령으로부터 오는 권능을 구하지도 못하고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가까운 예로 오늘날 교인들이 전도를 못하는 것이 배우지 못하고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전도를 하는 것, 전도의 열매를 맺는 것 이전에 증인이 되는 권능을 성령이 임하심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다. 증인이 되지 못한 사람이 전도를 한들 열매가 있겠는가? 전도를 할 수나 있겠는가? 그러니까 열매와 상관이 없는 전도를 하고 열매에 대한 부담이 없는 전도를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전도를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고 이벤트로 생각하며 전도를 교인들을 늘리고 교회를 크게 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원수된 생각들을 하는 이들이 아직도 이 교회에 많은 것이다.
어느 농부가 일도 할 줄을 모르는 대여섯살되는 어린이들 수백 명을 데리고 농사를 짓고 밭일과 논일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일꾼이 안된 아이들이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말이다. 농기구가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찌 일을 하겠는가? 힘도 없는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겠는가? 오히려 일을 훼방하고 방해하지 않겠는가? 도움이 되겠는가?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 이와 같지 아니한가? 증인이 안 된 사람이 어찌 전도를 하고 주의 일을 하겠는가? 증인의 권능을 받지 못한 사람이 어찌 전도를 하겠는가?
문제는 증인이 되지 않고 교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증인이 되기 전에 신학을 한다. 증인이 되지도 않은 채 신학을 졸업하고 교회 일을 한다. 증인이 되지 않은 사람이 목사안수를 받고 증인이 아니된 사람이 설교를 하고 심방을 한다. 증인이 되지 않은 사람이 집사가 되고 증인이 되지 않은 사람이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된다. 증인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 당회에 참여하여 교회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한다.
주님은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지 성령을 받으면 목사가 되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성령을 받으면 목회를 하라든지 교회를 개척하라든지 하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성령을 받으면 장로가 되리라든지 교회일을 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곧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권능이 임할 것을 말씀하셨다. 일단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증인이 되고 전도하고 주의 일을 하고 목회를 하며 설교를 하는 일이 쉬워지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증인이 되는 권능을 성령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람이 설교를 한들 그 설교 속에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나타날 수가 있겠는가? 거꾸로 불신자들에게 땅 끝까지 곧 말이 안 통하는 자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권능이 나타나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설교할 때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설교 속에 나타나지 아니하겠는가?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사람이 믿는 형제들에게는 얼마나 더 그리스도가 강력히 증거되겠는가? 교회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완악하고 교만한 죄인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일꾼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닌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배움만을 추구하고 단지 배우고 읽고 들은 지식으로 설교를 하고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교인들도 변화될 리가 없고 교회가 부흥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옛날에도 선지학교에 많은 생도들이 있었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예외없이 다 쓰셨는가? 아니다. 오히려 쓰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지 아니한가? 엘리야의 생도 중에 하나님이 누구를 쓰셨는가? 엘리사를 쓰시지 않았는가? 엘리사와 다른 생도들의 차이가 무엇인가? 엘리사는 지식을 구하지 않았다. 표적을 구한 것도 아니다. 일을 구하거나 방법을 구한 것도 아니다. 그는 자기 선생님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감이 갑절이나 임하기를 구하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는 구한대로 받았다.
엘리야가 겉옷을 말아 물을 칠 때에 요단강이 갈라지고 엘리야와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널 때에 요단강가에 서서 구경만 하던 오십인의 생도들은 그동안 엘리사와 같이 엘리야를 따라 다니고 배웠지만 주님이 쓰시지 않으신 사실을 기억하라. 구경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배우는 사람, 아는 사람, 남의 설교와 목회를 흉내 내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권능으로 요단을 같이 건너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다. 권능을 받은 사람, 권능을 체험한 사람, 그 권능으로 살고 요단을 건너는 사람이 하나님이 구하고 찾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이와 같은 사람이 되겠는가? 그것은 오직 성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의 내주하심과 동행하심으로 사는 사람이 권능 가운데 있고 권능으로 살고 그 권능을 날마다 체험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복잡하게 살고 주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과는 달리 주님의 말씀은 오히려 간단명료하다.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증인이 되는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교회 밖에서 전도를 해도 열매가 있는데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일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보여지고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성령을 어떻게 받았는가?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받을 때에 성령이 임하시고 내주하신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며 친구같이 교통하고 대화하시며 같이 사신다.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다. 모든 일에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능히 이기게 하시는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권능도 없고 증인도 없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은 것이요 증인이 된 것이다. 어디를 가도 증인의 구실을 하고 역사가 나타나는 인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가? 성령은 받았는데 왜 권능이 아니 나타나고 전도가 안 되고 증인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가? 그것은 성령으로 사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음으로 임한 권능은 성령으로 살 때에 지속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나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신 이유는 성령으로 살게 하기 위함이지 일회적인 체험을 위함이 아니다. 성령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씻으신 구속의 목적도 성령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살기 위함이다.
성령으로 사는 것을 실패하는 이유는 성령을 받았을 때의 구속의 은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성령은 내 안에 거하시고 나를 떠나시지 않고 계시지만 성령을 받았을 때의 그 은혜를 상실하고 구속의 은혜와 죄인을 정결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렸기 때문에 성령으로 살지 못하고 구원 받기 전에 살았던 육신의 삶을 살고 애굽의 삶을 사는 것이다. 성령을 받고 그 하나님의 영이 내게 내주하시는 것이 중요한 만큼 시초에 성령이 내게 임하실 때의 은혜가 더더욱 중요한 것은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아니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방자히 행한 이유 곧 구속을 받지 못한 백성들처럼 살았던 이유를 하나님은 강한 손과 편 팔로 그들을 구원해 내시던 날을 기억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곧 구속의 은혜를 상실한 것이다. 구속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구속함을 받은 것처럼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를 잊어버린 사람은 성령은 받았어도 성령으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능을 받았지만 그 권능이 나타나지도 역사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성령이 역사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없는 것이다. 이전에는 전도를 했었는데 지금은 못하고 있으며 이전에는 기도를 열심히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아니하며 이전에는 영혼을 사랑했으나 지금은 그 영혼 사랑이 사라져 버렸으며 이전에는 역사가 나타났으나 지금은 역사도 권능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전에는 눈물과 감격 구속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예배를 드렸지만 지금은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구속의 은혜를 상실하고 성령으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하고 목회를 한다고 하여도 성령의 권능과 상관이 없는 사역들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하나님의 개입이나 간섭하심이 없는 그래서 아무런 역사나 열매나 기쁨도 없는 힘든 사역 곧 세상일보다 더 힘들고 지겨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고 하는 일들이 지금 이 시대에 어디라고 할 것도 없이 누구라고도 할 것 없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권능이나 증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권능도 지속되어야 하고 증인의 역사도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으로부터 오는 권능이나 증인의 역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을 때의 구속의 은혜가 지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을 때의 권능과 증인의 역사가 지속되는 구속의 은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죄로 자기의 영혼을 더럽혀서는 아니된다. 그리고 죄로 더럽혀졌을 때에 즉시 영혼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정결케 하는 경건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되는 것이다.
영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란 다시 말해서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죄를 이길 수 있는 인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약한 육체를 가졌기에 죄를 짓는 삶을 불가불 살게 되어 있다. 주님도 우리의 이와 같은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도 날마다 죄를 지음으로 자기영혼을 더럽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아시기 때문에 죄를 씻기를 명하신 것이다. 날마다 죄를 씻고 정결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죄를 덜 짓고 안 짓는 사람이 되는 영적성장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성장할 때까지 불가피하게 연약함으로 짓는 죄를 우리는 날마다 시마다 십자가의 피를 의지해서 씻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영적으로 성장한 후에도 우리는 죄로 자기의 영혼을 더럽히지 않고 살 수 없음을 우리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은혜를 유지하고 더하는 비결은 은혜를 날마다 더 받고 또 받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 십자가의 은혜를 날마다 더 의지하는 것이 죄를 씻는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이다. 회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생활이다. 죄를 깨닫는 것도 생활이며, 죄를 자백하는 것도, 용서를 받는 것도 생활인 것이다. 죄를 자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나의 허물과 부족함과 정결치 못함을 고백하는 물이 흐르듯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활의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내가 주님께 평생에 항상 감사하는 것은 나같은 죄인을 만나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우지 못하던 시대에 나에게 믿음의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말씀에 미치게 하시고 내가 말씀을 읽은 것이 아니요 그 말씀으로 나를 읽게 하신 것이다. 내가 말씀을 읽고 들은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날마다 시간마다 나를 읽어 내려갔다. 내 죄와 허물이 말씀의 빛 앞에 여지없이 드러났고 나는 그 앞에 큰소리로 소리 내어 울면서 말씀을 읽었다. 말씀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 깨달아졌다. 그 하나님의 깊고도 심오한 마음 앞에 내 심령이 통째로 녹아져 내려가기를 날마다 시간마다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실제로 인격이 깨끗해지고 행실이 거룩해지고 입술의 말이 거룩해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의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나의 행실과 더러움을 가차없이 지적하시고 보여주셨다. 나를 정결케 하시는 그 하나님의 열심 앞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통곡하고 회개를 하는 것이 어느덧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나를 가장 증오하던 동생이 어느날 내 안에 보여지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형,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변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어."
평생 동생에게 좋은 말을 들은 적이 없었던 나는 그날 밤에 동생들이 잘 때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를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해서 울었다.
나와 같은 종교인이던 그가 나로 인해 주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밑의 여동생도 종교생활만 했었는데 나로 인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사실 남에게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권능은 나부터 변화시키는 권능으로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직장에 들어가서도 내 안에 그리스도가 보여지기 시작했다. 믿지 않는 직원들이 내가 간증하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고 또 듣고 싶어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한두 사람이 변화되기 시작했는데 먼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 곧 교회는 다니지만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신자들이 불교신자들이 죄에 빠져 사는 이들이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 안에서도 고등부가 청년회가 부흥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속회에서도 사람들이 변화되는 일들이 일어났다. 교회 안에서 어느새 인기있는 집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칭찬을 받는 일들과 교회 안에서 재미있는 일들에 기울어져 갈 때에 영적생활의 위기가 찾아왔다. 사람들의 칭찬이 하나님의 그것을 대신할 때에 공허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공허한 마음에 죄의 유혹이 어김없이 밀고 들어 왔다. 죄질 생각이 밀물처럼 몰려 들어오기도 했다. 몸으로 죄를 안 지어도 마음으로 죄를 짓고 남몰래 은밀하게 죄를 짓는 일들도 일어났다. 그때에 주님은 나에게 교통사고를 당하는 일을 허락하셨다.
주님과 계산할 것이 없는 것을 깨닫게 된 나는 사람의 칭찬에 속아 살았던 내가 그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다친 팔을 목에 걸고 내가 가르치던 청년들을 데리고 주일예배만 마치면 전도를 나가기 시작했다. 전도를 나가면서 깨끗하지 않은 영혼은 주님이 쓰시지를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기 시작했다. 주님의 일의 주역은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하신 성령의 역사를 기다린다면 거룩하지 않고서는 쓰임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룩함은 무엇인가? 십자가의 피로 씻은 거룩함이 아닌가? 십자가가 없이는 쓰임을 받을 수가 없다. 날마다 시간마다 죄를 씻지 않으면 영혼의 더러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주님이 쓰실 수가 없는 것이다. 피의 권능을 믿지 않는 사람과 주님이 어찌 동행하시고 살겠으며 그런 사람을 어찌 쓰시겠는가?
일주일마다 한번 전도 나가기 전에 철저히 회개하고 피를 의지하여 정결함의 확신이 없이 전도현장에 나가면 주님이 안 쓰시는 외로움과 전도현장에서 주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기도 하면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영혼을 정결케 함으로 사는 것을 배웠다. 그러면서 날이 더할수록 마음 속에 일주일을 시작하면서 "한 주간 동안 영혼을 더럽히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이 강력해져갔다. 그러면서 날마다 정결함으로 사는 경건생활을 배우고 항상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증인의 권능이 나타나는 은혜를 주님께로부터 받아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해마다 있는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이들이 모여 주님이 자기를 쓰시도록 간구하는 가운데 주님이 각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를 따라 철저히 회개하고 영혼의 정결함으로 자신을 준비할 때에 거룩함을 회복하고 주님이 쓰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을 하든 우선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권능을 받아야 하고 권능은 성령으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성령은 우리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죄로 성령을 근심시키지 않기 위해 전심을 다하는 믿음이 필요하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소멸시키는 우매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날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자백하며 죄를 씻는 정결함이 일상의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여름전도여행에도 이와 같은 역사가 어김없이 일어난다. 참석한 사람들마다 죄를 씻고 그리스도가 보여지는 증인이 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난다.
이 모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더러운 욕심을 채워 달라는 기도가 아니요 영혼을 구원해 달라는 부르짖음과 그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로 자신을 준비하기 위해 자기의 영혼을 정결케 해달라는 부르짖음에 주님이 외면하신 적이 한번도 없으며 반드시 응답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셨다.
영적으로 어두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이와 같은 강력한 은혜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 자기 영혼을 정결케 하는 은혜가 얼마나 간절히 필요한 때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가? 전도를 못해도 내 영혼을 그리스도의 피로 정하게 하신 은혜는 회복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가 몸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부터 정결케 되는 일이 일어나야 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 심기일전하여 정신을 차리고 주변에 전도하던 사람들 중에 길을 잃고 영적인 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권면해서 참석을 하여 주님이 이 나라의 교회들을 먼저 거룩하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시고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서는 주의 일꾼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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