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시작

 

성경을 원어의 문법과 시제를 가지고 읽으면 잘못된 번역이 많이 있다. 그것도 원문의 사상을 무시하는 중대한 오류들도 많이 있음을 본다. 번역이 잘못되다 보니 그에 의지하여 해석을 한 것은 틀리게 마련이다. 그중에 하나를 살펴 보도록 하자.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르아 예호바인데 이르아두려워하다” “어려워하다라는 뜻의 단어이다. 곧 이 말은 여호와를 조심스러워 하고 어려워 하는 것이다.

옛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난지 하루밖에 안되는 강아지가 범을 무서워할줄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어리석고 몽매하여 처신을 잘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말하는 속담이다. 하나님을 어려워하는데서 지혜가 시작이 되는데 오늘날 교회안에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워 하지 않는 것같이 하나님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게다가 아직도 어미의 뱃속에 있는 태어 나지 않은 강아지는 범을 무서워할리 만무하다. 교회안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안에 영생이 없는 사람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못한 생명이 없는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을 모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교회안에 많이 있다보니 구원받은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을 모르는 분위기 속에서 교회가 흘러 가는 것이다.

지혜의 근본테힐라 호크마인데 호크마는 지혜이며 테힐라시작”(beginning) 또는 처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여호와 하나님을 조심스럽게 어려워함으로 대하는 것에서부터 거기서 지혜가 시작이 된다는 말이다.

그 뒤를 이어 나오는 말씀인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는 번역이 아주 틀린 번역이다. “거룩하신 자라고 번역이 된 카도-는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다. 그러므로 그의 거룩함으로 번역을 해야 하며 그의 거룩함은 곧 여호와의 거룩함을 말한다. “아는 것다아트로서체험으로 안다는 뜻인 야다로부터 온 말이다. “명철이니라비나로서 이해력” “통찰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여호와의 거룩함을 체험하여 아는 것이 참된 통찰력이 있는 지식을 가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어려워 하는 것이 지혜가 시작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거룩함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 참된 깨달음이요 통찰력이 있는 지혜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어려워 하지 않는 경솔한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시작조차도 되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시작된 사람도 그의 거룩함을 체험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모르면 거룩함을 알리가 없다. 거룩함을 모르면 하나님을 아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를 원문의 뜻을 살려서 번역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를 두려워 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그의 거룩함을 체험하여 아는 것이 참된 지식(깨달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