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하는 다이어트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한참이나 와서 목적지를 두 시간쯤 남겨 놓고 있을 때에 서비스를 하는 사무장이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뱃살이 걱정꺼리라며 뱃살을 빼야한다고 말을 했다.


“아니 그만하면 날씬한데 왜 그러세요?”


한눈에 봐서 지독하게 짧은 다리여서 몸의 중심이 아래로 심하게 쳐진 것 외에는 군더더기 살이 없어 보였다. 사무장을 하면 40이 넘은 나이일 텐데도 비교적 뱃살이 없는 편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자랑인지 넋두리인지 모르는 말들을 쏟아 내기 시작을 했다.


운동은 빠짐없이 한다는 말과 다이어트도 하고 언젠가 병원에 가서 체지방 측정을 했는데 자신의 근육량이 동년배들에 비하면 30%가 많다느니 하며, 그래도 뱃살이 문제라며 한참을 떠들어 댔다. 나는 그에게 나이가 먹으면 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을 해도 자신은 꼭 뱃살을 빼야 한다고 몇 번이고를 거듭해서 말을 했다. 그리고 이다음에 뵙게 되면 꼭 뱃살이 없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인사를 하고 갔다.

 나는 마음속으로 ‘저게 무슨 걱정인가?, 자랑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침식사를 서빙하기 위해서 다시 나타난 그에게 내가 말을 했다.


“뱃살보다 더 먼저 빼야 되는 것이 있어요.”

“예?, 그게 뭔데요?”

“마음의 살을 빼야 해요.”

“마음의 살이요?”

“예, 맞아요, 사람들은 몸무게를 줄이고 날씬해지려고 뱃살을 빼려고 온갖 다이어트를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

“사람이 행복하고 불행한 것을 결정하는 것은 뱃살이 아니라 마음의 살이기 때문이지요.”

“……”

“마음의 살이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정욕과 욕심이 다 거기로부터 나와서 사람으로 죄를 짓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거예요.”

사무장의 표정이 아까의 명랑하고 자신감이 있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표정이 무거워졌다.

“마음의 살이 빠져야 마음의 평정이 찾아오고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에요.”

“……”

“뱃살을 빼면 몸의 모양이 보기 좋아지고 건강에 좋지만 마음의 살을 빼면 마음이 건강해 지는 거예요.”

“……”

“그래야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안 되고,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어요.”

“……”


그리고 나는 41년 전에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아서 그 때까지 23년 동안을 살면서 온갖 악한 마음으로 살던 마음에 살이 빠진 것과 주님이 나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면서 이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평안한 마음으로 산 것들을 간증했다. 그리고 예수를 믿으라고 했다.

그가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예, 노력을 해 보겠습니다.”


내가 손을 강하게 저으면서 예수를 믿는 것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했더니, 놀란 눈을 크게 뜨고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믿어야지 되는 거예요.”

“……”

“믿음은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믿음이지요.”


그는 다음에 혹시 만나면 더 자세히 말씀을 듣고 싶다고 말을 하면서 황황히 자리를 떴다.


문제는 그 사람은 불신자지만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마음의 살이 과체중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말씀도 모르고 은혜도 잊어버리고 교만하고 불순종하며 진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기 전과 같이 여전히 마음의 정욕대로 말하고 행하며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을 다하면서 옛날의 순수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가는 길을 가지 않고 그 길을 더디 가기도 하고 역행하기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 안에도 생명이 없는 사람은 육신의 다이어트만을 하게 마련이다.

무덤 속에 있는 시체가 뱃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영적인 다이어트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날마다 말씀으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산다.

생명이 있는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말씀으로 마음의 군살들을 빼는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하면서 산다.


그래서 날마다 인격과 생활에 변화가 일어남으로 주께로 더 가까이 가는 생활을 사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생활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찬송가에 있는 대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오늘부터라도 생명이 있는 우리 주를 믿는 성도들은 그렇게 살게 해달라고 은혜를 구하자.

 

(*.139.12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