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요한계시록 사경회를 참석하고 나서

인천 아멘교회 박진성 목사


먼저 이 글을 쓰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세례요한이 요3:30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한 것처럼 저는 쇠하여야 하고 주님은 흥해야 하기에 저는 글 쓰는 재주도 없고 표현력도 부족한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씁니다.


이번 2012년 3월19일부터 22일까지 있었던 요한계시록강해를 참석하고나서 충격적인 사실중의 하나는 요한 계시록말씀도 역시 순종할 말씀이라는 것과 계시록에도 영적인 실제가 있는 말씀 앞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눈물 없이 강해한 죄를 회개 합니다.

영적인 실제가 없이 지식만을 전달한 죄를 회개합니다.

저희 교회에서 계시록을 강해하면서 한 번도 눈물을 흘려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 말은 그동안 영적인 실제가 없이 강해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저희 교회에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이른바 대하 설교라는 명제아래 강해를 하고 있으며 현재 로마서를 강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3번 강해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학교시절에 천년왕국제설에 관하여 논문을 쓴 적이 있고,  1992년에 강도사고시에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루었으며 1992년 10월 28일 휴거 때문에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제가 담임하고 있던 시골교회에서도 여 성도님 한분이 미혹이 된적이 있습니다. 그는 광주에 딸이 있어서 1992년 10월28일 휴거 된다고 딸이 다니는 교회로 갔다가 망신살만 뻗치고 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내가 교인을 잘 못가르쳐서 그랬거니 하는 책임감에 교회안에 종말론을 견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방면으로 책을 많이 보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예수전도협회를 만나고 나서 은혜를 받고 영적인 실제가 있는 말씀을 접하면서 지식만을 말하는 지적인 것들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요한계시록 책만 이 백여 번 정도 읽었고 국내주석과 강해집, 손기태목사, 이광복교수, 민병석목사강해, CTS에 노우호목사의 마지막바벨론과 요한계시록강해 성경강좌 그리고 그와관련된 MP3를 수없이 듣고 참고하여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계시록강해를 정리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강해를 했는데 눈물없이 강해하는, 실제가 없이 강해하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번에 기대를 가지고 등록을 하면서 지난번 집중코스 때 요한 계시록을1장부터 3장까지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4장부터 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1장부터 강해를 시작하길래 내심 저으기 실망을 하면서 “ 아, 이번에도 3장을 넘어가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4장을 넘어 5장까지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1장부터 3장까지의 말씀도 지난번 했던 것보다 훨씬 새로운 업그레이드된  말씀을 전하는데 영적인 실제가 있는 말씀 앞에 숨을 죽이고 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론적으로 배경과 숫자의 의미와 계시록의 7복 등이 전하여졌으며 계시록 1장에서 사도 요한이 계1:10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라는 말씀을 전하실 때 지금도 내 뒤에서 주님은 나팔같은 큰소리로 끊임없이 말씀하시는데 세상 소리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내 모습이 보여 졌습니다. 또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를 보고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는 말씀을 전하실 때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임에도 그동안 썩어질 세상것 때문에 주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내 모습이 보여져서 회개하고 울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번 요한 계시록 사경회는 그야말로 성경한절 한절을 말씀으로만 풀어주시고 또한 순종할 말씀으로 받게  해주셨습니다. 그동안의 요한계시록 주석과 강해가 말씀으로도 풀었지만 어떤 것들은 사람의 생각으로 억지로 풀은 것들도 더러는 있었음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말씀은 교리나 신학의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말씀으로만 풀어서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글로 다 표현할수 없는 영적인 감동과 주석에도 없는 새로은 말씀에 대한 충격은 말로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2장-3장까지 일곱 교회를 통해서 우리삶의 실생활에 정확히 연결해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볼수 있도록 은혜를 주심으로 순종하고 살아야 할 말씀으로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하루전에 3장을 마치고 마지막날에 4장을 하게 되었는데 드디어 하는 마음으로 기대가 되었습니다. 또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4장 1절을 어떻게 풀어주실까?


왜냐하면, 세대주의 전 천년설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4장 1절을 교회의 휴거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손기태 목사의 책과 이광복 교수로부터 그렇게 배우지 않았지만,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이 4장 1절을 교회의 휴거로 배우고 또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어떻게 하시나 궁금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강의안을 나누어 주는데 받아 보니까 성경대로 요한이 올라간 사실을 말씀하면서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는 장면을 본 것을 기술하지 않았다면 4장 이후에 말씀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사는 것이 영적인 실제였습니다.

그동안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사는 내 모습이 보여지고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분의 얼굴을 보고 사는지의 여부를 회중들에게 물어보실 때 강한 찔림이 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실제를 말해주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4장을 통해서 날마다 보좌 앞에 나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날마다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뵈옵고 살고 있습니까? 하고 질문할 때에 계시록의 말씀도 내가 실생활에서 살아야 할 말씀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장 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를 말씀해주실 때 우리의 마음에 평온함이 있느냐? 를 말씀하시고 보좌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때에 마음에 평온함이 있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5장에 가서 사도요한이 어린양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어린양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믿음이라는 사실을 말씀해주셨고

8절에서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할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를 게을리 함으로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지연시킨 내 모습이 보여지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음 6장을 어떻게 풀어주실지 어디에서 영적인 실제가 있는 말씀을 전해주실지 궁금하고 영적인 실제를 말하지 못하던 저에게 계시록에 있는 말씀도 읽고, 듣고, 지키어 순종할 살아야 할 말씀으로 받게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갈수록 그 풍성함을 더해가는 요한계시록강해가 진지해지고 4월 23일부터 있는 다음 2차 계시록 사경회가 기대가 되며 더욱 더 기다려 집니다.

(*.8.21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