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처를 생각함

   

 

몇몇 목사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느 목사님이 한 말이다.

우리 사모는 말을 너무나 잘 합니다

그 사모님은 말수가 적은 분이었기에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놀란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누가 그래요?”라고 반문을 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의 대답이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상처를 주는 말을 너무나 잘 합니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에 그 사모님에게 내가 이렇게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목사님이 사모님에게 꼼짝 못하지요?”

그러자 돌아 온 대답은 이러했다.

아니에요 요새는 역전됐어요. 오히려 제가 꼼짝을 못해요.”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있었던 말들을 서로 연결해 보면서 그렇게 한 가정을 변화시켜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지금까지 사역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집안 식구들이 장애가 되고 원수가 되어 주의 일을 하지 못하고 방해를 받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지 모른다.

오래전에 동역을 하던 어느 장로에게는 그가 아내의 영향을 하도 많이 받아서 사역에도 지장을 주기에 좀 심한 마음으로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장로님은 아내에게 안수를 받으신거지요?”

“……”

그는 유구무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모님의 영향 때문에 주의 일을 그르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오래전에 내가 알던, 어느 목사도 교회를 건축하면서 사모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많은 교인들을 떠나게 하는 쓴 뿌리의 근원이 되고, 지금은 치매에 걸려서 지하실에서 하루 세 번씩 밥을 넣어주면 받아먹는 짐승처럼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소문도 들린다. 어떤 이는 사모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여 자식에게 교회를 물려주려고 온갖 억지와 불법을 일삼다가 감옥까지 갔다 오고, 평생의 목회를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킴으로 주와 그의 나라를 배반한 목사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것은 오늘날 세상의 불신자들과 악인들까지도 익히 알고 비방하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로 인하여 복음의 진리가 훼방을 받는 것은 물론 교회 안의 심령을 다 병들게 만들고 신실한 일군들을 떠나가게 하고 방황하게 만들은 일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또 내 주변에 적지 않은 분들은 은혜로 변화를 받기 전에 남편에게나 아내에게 강포를 행했던 것이 미안한 나머지 앞에 말한 사모님과 같이 전세가 역전되어 오히려 꼼짝하지 못하는 치우침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것이다. 이전 것이 십자가에서 청산된 것을 잊어버리고 이전 것에 매여 자유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주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이전에 식구에게 못한 것을 잘해주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신 것은 함께 주님을 반듯하게 따라가라고 하신 것이다. 온 가족과 온 교회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고 변화시켜 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이다. 과거의 미안함에 매여서 상대방에게 잘해주는 것은 진리도 아니고 은혜도 아니며 육신적인 것이다. 더구나 그와 같은 상대방의 제안이 상당히 육신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인데 그것을 육정 때문에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주님 앞에 또 다시 죄를 짓는 것이며 부르심의 뜻을 저버리고 주를 배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들을 통틀어서 말하자면 롯의 처의 콤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아브라함 때문에 믿음의 길을 떠난 의인이었으나 마누라 때문에 그 믿음을 망치고 패가망신한 사람이다.

 

이번에 창세기 사경회를 하면서 하나님이 롯을 사랑하셔서 여러 번 위기에서 건져 주셨으나,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할례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는 들지 못하고 배제된 길을 스스로 간 사람이 롯임을 알게 하셨다.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을 부르심으로 시작된 아브람 교회의 창립준비는 하나님이 부르심과 언약을 주셨으나, 부르심의 소망을 저버리고 그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한 아브람은 육신적인 이유, 곧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남방으로 갔다가 애굽으로 건너가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수치와 낭패를 당한다. 13장에서 바로가 육축과 은금을 풍성히 주어서 그것을 가지고 나오지만, 그 재물은 아브람이 거짓말쟁이이며 아내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는 비방의 꼬리표가 그에게 항상 따라 다니게 만든 것이 되었다. 결국은 사람에게 받은 그 더러운 재물 때문에 조카 롯이 아브람을 배신하고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가는 단초가 되었다. 그와 같은 과정에서 롯의 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한 것은 그가 나중에 소돔에서 나올 때에 의인인 그의 남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고 구출이 되지만 뒤를 쳐다보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소금기둥이 되는 결과를 보아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17:32, 33)

 

14장은 하나님이 동방의 네 왕들을 일으킴으로 소돔과 고모라를 치는 가운데 다른 세 왕이 협력하여 대항하여 싸우지만 패배함으로 세 왕의 군사들은 산으로 도망을 하고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은 역청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소돔의 백성들과 재물들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가면서 롯과 그의 재물도 탈취를 당한다. 자기 삼촌을 배반하게 했던 재물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가 오래전에 떠났던 지역으로 돌아가서 종살이를 하게 될 위기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전쟁으로 롯을 징계하시고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인 소돔과 고모라를 징책하시는 것이다. 이 전쟁으로 하나님은 아브람을 높이시는데 그동안 아브람을 멸시하고 조롱했던 아홉 나라 왕을 단번에 아브람에게 굴복시키신다. 그리고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에게 세워줄 교회의 네 가지 조건을 말씀하신다. 그 네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방금 있었던 승리하는 것이다. 교회는 아무나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교회생활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만이 진정한 교회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을 이기지 못하는 교인들이 교회 안에 많은 것을 이번에 말씀을 전하면서 그것은 성도도 교인도 아니고 세상 잡족들이라고 주님이 일러 주셨다. 그리고 16장에서는 아브람이 또 심각한 죄에 빠진다. 이스마엘을 생산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의 죄와는 상관없이 그의 교회를 세우시는 일을 하신다. 죄를 이기는 것이 교회요, 죄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강물이 범람을 해서 둑이 무너졌다고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무너졌어도 강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둑을 쌓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람의 수없이 많은 연약함과 불신앙 그리고 죄를 짓는 가운데서도 죄의 강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둑인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 새 찬송가에는 없고 기존의 통일 찬송가에 있는, 494장의 나 죄중에 헤메며 다녔지만 날 버리지 않으심 믿습니다 나가는 길 주께서 지키시며 늘 동행해 주시네 주 언제나 나 함께 늘 동행해 주시네 주 날마다 내게 이김 주고 늘 동행해 주시네라는 찬송을 여러 번을 반복해서 부르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

범람하는 강물이 문제가 아니라 둑이 없고 부실한 것이 문제이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문제인 것이다. 죄가 범람하는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거룩한 둑인 교회가 부실하고 터지고 무너진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16장의 아브람의 죄에 방해를 받지 않으시고 17장에서 할례의 공동체인 아브라함의 교회를 세우시고 그 축복으로 교회의 후사인 아들, 이삭을 약속하신다.

 

교회가 세워지면 세상이 망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워지고 세상이 망하는 대조를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빛이 떠오르면 어둠은 물러가는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떠난 롯의 결국의 대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18,19장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망하는 것이다.

의인인 삼촌 아브람을 떠나 교회가 세워져가는 과정에서 소돔으로 간 롯은 성도의 교제가 아니라 여호와 앞에 큰 죄인들인 소돔 사람들과 교제를 함으로 버림을 받는다.

그것이 그의 처의 악함과 그의 우유부단함 때문이었다.

그의 처의 간섭의 영은 아주 더러운 영이다.

 

우리에게는 사람의 간섭의 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필요하다.

진리의 영은 자유케 하는 밝고 명랑한 영이지만 간섭의 영은 더럽고 어둡고 멸망시키는 것이다, 사람은 다 거짓된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신 것이다.

가정마다 교회마다 사람이 사람을 어거하고 간섭하고 어리석은 훈수를 두는 더러운 영이 떠나가기를 기도한다. 그래야 세상의 죄의 범람을 막는 강 둑과 같은 교회가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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