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다수를 좋아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대로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무엇을 하려해도 수가 많아야 한다.


그러나 현자(賢者)들은 그와같은 것을 중우정치라하여 다수의 어리석음을 따라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그것을 폭민정치라고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빈민정치라고 했다.


성경에서도 다수가 힘을 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바벨탑의 사건을 일으켰고 그로 인하여 아직도 언어가 나뉘어지는 고통을 온인류가 당하고있다. 하나님은 그와같은 어리석은 인간의연합을 흩으시는 것으로 대응하셨는데 그들을 흩으시기 위해서 언어의혼잡을 이용하심으로 언어가 나뉘게 된 일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를 단체로 관계하시지 않으셨다.

사람을 단체로 상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을 값싸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도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관계하고 개인적으로 만난다.

인간세상에서도 단체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상대를 가볍게 여기고 경히 여길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은밀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다르게 표현하면 개인적인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이 그의 신을 사람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과 일대일의 개인적으로 관계를 가지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인간들끼리 연합을 하고 힘을 합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들이 서로 뭉치고 힘을 합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조직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죄인들은 조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 성령을 받은 사람은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좋아한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가지기를사모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소원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속성이요 그가 원하시는 것이며 그가 그렇게도 기뻐하시는 것은 나한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다.

그말씀은 제자들이 구원을 얻는 이가 적으냐고 물은데 대한 답으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주님은 마태복음에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길이 넓어서 들어가는 이가 많지만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도 적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교회를 말씀하시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라기 보다는 두세사람이 내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중에 있느니라고 하셨다.

교회는 크고 작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수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교회는 주님이 게셔야지만 교회이다.

그리고 교회는 두사람만 합심을 해서 기도를 해도 다 들어주시는 기도응답이 있는 곳이다.


(마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말씀에서 가리키는 교회다운 교회는 다음과 같다.


-두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함으로 아버지께 응답을 받는 사실이 있는 것이다.

-두세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말함)

-주님이 함께 계시는 곳

 

이와같은 것이 없이 많이 모이기만 하는 다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멸망을 받는 사람들이다.


(고전 10: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모세도 백성들에게 권면했다.


(출 23: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많다는 것은 없다는 말이 될수 있다.

많다는 것은 멸망길로 가는 사람들일수도 있다.

많다는 것은 주님이 가신 길과 역주행하는 길일수도 있다.


언젠가 두어달 전에 기도중에 주님은 나에게 구원받지 못하고 성령받지 못한 가짜들이 많이 모이는 대형교회를 보여 주시면서 그것은 "영적인 쓰레기 종합처리장"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심판에 들어갈자들을 모으는 집합소와 같기 때문이다. 그와같은 교회가 한둘이겠는가? 이마지막 때에 그런 교회를 요한은 바벨론 교회(바벨론 성과 같이 웅장하고 우뚝 서있으나  세속화된 교회를 요한계시록 17장 18장에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바벨론 교회)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여기서 너희는 개인이 아니다.

이말씀은 개인의 믿음을 시험하라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너희는 고린도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안에 그리스도가 계신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고린도교회는 버림받은 교회라는 것이다.

그이유는 고린도교회안에 주의 이름으로 두세사람이 모여서 주님이 함께 계시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안에 다수가 가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사람이 주님이 중심이되시는 모임의 일원이 되는 교제권이 있어서 바벨론 교회가 아니라 참교회인지를 확증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리운자로 발견될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다수에 들기보다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소수에 들어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로 가는 주의 제자가 되는 은혜를 받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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