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부부싸움을 하고 분을풀지 못해서 자식을 붙잡고 자기 아픔을 알아 달라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때로는 자기의 편이 되어 달라고  그 아이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자식앞에서 훼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수가 없다.

부모들도 감당이 안되는 짐을 아직 자라지도 못하고 연약한 자식에게 지우는 것이다.

또 건강한 판단력을 베우기도 전에 부모를 미워하는 마음부터 생기게 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말할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것이다.


집안에 어른들도 그와같은 것을 함께하기 어려운 일인데 자식들이 어떻게 감당을 하겠는가?

그것은 자식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중에 가출을 하는 이유가 부모들의 이와같은 어리석음때문에 일어나느 것도 상당수이다.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은 되지 않을지라도 그 고통이 밑바탕이 되어 감당할수 없는 일을 당할때에 부모가 자기에게 마음의 우산이 되지 않을 것을 알 때문에 집을 나가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이 부모에게 하소연을 하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엄마나 아빠가 자기를 위로해 달라고 하니 어찌 감당할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와같은 어리석음이 자식을 망하게 하고 다시는 돌아킬수 없는 길을 가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은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도 가당하지 못하는 교회문제를 아무 생각없이 자식들앞에서 말을 해 버림으로 자식들을 망하게 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부모의 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교회일을 말하면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수 있겠는가? 

그 아이는 자기의 죄를 깨닫기도 전에 먼저 어른들의 문제를 다루는 교만에 들어가게 된다.

그아이는 결국 믿음을 배우기도 전에 남을 판단하는 것과 정죄하는 것을 배움으로 자기이 인생을 망하게 하는 자리에 들어 가는 것이다.

자기도 불행해지고 남도 불행하게 하는 자리에 들어 가는 것이다.   


아비의 허물을 형제들에게 말함으로 자기의 막내아들 가나안으로 저주를 받게 한 함의 모습이 그것이다.

함은 허물을 덮어주기보다는 정죄하고 드러내고 흉을 보았다.

그것도 자기 아버지의 허물을 말하고 다녔다.

그것을 형들에게 말했는데 자기 집에서는 아니 말을 했겠나?

자기 집에서 아내에게 아버지의 허물을 말할 때에 가나안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형제들보다도 가나안에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함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허물만을 본다.

율법주의자는 자기 허물을 자복하고 회개하지 않고 남의 죄를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남에게 말하다 보면 자기 자식이 듣게 된다.

자식이 들으면 남을 정죄하는 죄에 쉽께 빠져 들어 간다.


그래서 하나님은 함의 율법주의 적인 행실로 그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함은 미련한자가 되어 자식을 망하게 한 것이다.   


누가 그런 일을 행하였으면 자식앞에 자기의 죄를 처절하게 회개하고 자복을 구해야 그자식을 저주로부터 해방시킬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식들의 장래가 뻔해 지는 것이다.

만일 그런 죄가 있다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고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적어도 자기가 낳은 자식을 불행하게 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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